2배속 영상 보며 시간 압축해 사는 젊은세대
정보홍수서 벗어나 마음 챙기는 시간 가져보길
이해가 갔다. 예를 들어 영화 한 장면(컷)의 길이는 20세기에 평균 10초 이상이었지만 2000년대가 시작되면서 5초 내외로 급속하게 줄더니 오늘날 할리우드 액션 영화는 평균 약 2.5초마다 장면을 바꾼다. 이런 빠른 영상에 익숙해진 세대에게 과거의 문법으로 만들어진 콘텐츠는 답답할 수밖에 없을 것이다. 건너뛰기나 빨리보기는 이런 콘텐츠를 현대적으로 소화하기 위한 능동적인 소비 방법일지도 모른다.
김상훈 실버라이닝솔루션즈 대표 |
하지만 속도를 높여 더 많은 콘텐츠를 과식하듯 머리에 밀어 넣다 보면 두뇌에 과부하라도 오지 않을까. 예상과 달리 실상은 반대라는 연구가 있었다. 2022년 미국 UCLA 연구팀은 학생들을 상대로 동일한 비디오 강의를 속도를 달리해 시청시켰다. 일반 속도와 1.5배속, 2배속으로 각각 그룹을 나눠 강의를 본 학생들은 시청 후 진행한 테스트에서 유의미한 차이가 없었다. 즉, 강의에 시간을 절반만 쓰고도 학습 효과는 동일했던 셈이다. 학원에 가기 싫어했던 친구 딸의 생각이 옳았다. 이런 학생들이 실제로도 많다고 한다.
한편에서 시간을 압축해 살아가는 젊은 세대들이지만 다른 편으로 고개를 돌리면 좀 다른 풍경이 보인다. ‘절’ 얘기다. 올해 한국 불교는 절을 찾아 몰려드는 젊은 세대 덕분에 즐거운 비명을 지르는 중이다. ‘부처핸섬’, ‘나는절로’ 등 젊은 세대가 즐길 거리를 만들어 ‘젊은 불교’도 과시한다. 그래서인지 국내에서 템플스테이에 참여한 2030세대는 코로나19 이전인 2019년만 해도 32% 수준이었는데 지난해 처음으로 40%를 넘기면서 템플스테이의 주된 이용자였던 4050 중년층을 뛰어넘었다.
세계적으로 봐도 크게 다르지 않다. 맥킨지앤컴퍼니의 ‘웰빙의 미래(The Future of Wellness)’ 보고서에 따르면 2030세대는 다른 모든 성인 세대보다 훨씬 더 마음 챙기기에 높은 관심을 보인다. 마음을 편히 할 필요는 중년 이상의 세대보다 젊은 세대들에게 더 있다는 뜻으로 읽혔다.
국내에도 번역 출간된 ‘도둑맞은 집중력’은 이런 대조의 배경을 간접적으로 설명한다. 예를 들어 1986년 TV와 라디오, 독서 등을 통해 개인이 얻는 정보량은 대략 40종의 신문을 읽는 수준으로 당시에도 이미 하루에 소화하기 힘든 양이었다. 하지만 한 세대가 지나간 2007년 기준으로 이 정보량은 174종의 신문 수준으로 늘어났다. 물론 지금도 계속 늘어나는 추세다. 빨리보기, 건너뛰기 등의 기술은 이렇게 급증하는 정보량에 적응하기 위한 지금 세대의 몸부림인 셈이다. 정신적으로 자꾸 진이 빠지고, 스트레스가 늘어나며, 지식의 증가에도 불구하고 오히려 창의력이나 판단력의 문제를 호소하는 일이 생기는 이유다.
저자 요한 하리는 집중력의 부족을 비만에 비유한다. 우리는 흔히 비만을 개인의 나태함 탓으로 돌리지만 사실 비만은 사회 문제에 가깝다. 단순히 의지가 약해 운동을 하지 않았다는 이유로 비만이 되는 게 아니라, 패스트푸드의 범람이나 운동하기 힘든 도시환경, 야근으로 인한 불규칙한 수면 등 도시 생활이 주요 원인이기 때문이다.
집중력 부족도 마찬가지다. 정보의 범람, 스마트폰과 소셜미디어로 대표되는 정신을 쉴 수 없게 만드는 환경 등은 단순히 개인의 문제라고 넘겨버릴 문제는 아니다. 연말이다. 1분을 2분처럼 써가며 공부하겠다는 친구 딸도, 쏟아지는 정보 홍수 속에서 잠깐 머리를 좀 씻고 싶어 하는 모든 젊은이도 내년에는 조금 더 여유를 갖기를.
김상훈 실버라이닝솔루션즈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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