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성엽 고려대 기술경영전문대학원 교수/기술법정책센터장 |
지금 우리는 인공지능(AI)이 주도하는 인류문명의 근본적인 변곡점, 즉 AI 대전환(Al transformation·AX)의 시대를 살아가고 있다. 이런 AX의 흐름을 어느 분야보다 앞서가는 것이 금융이다. 개인·소상공인 등의 비재무 데이터까지 활용하는 AI 기반 신용평가모형, 은행 거래 등에서 실시간으로 이상패턴을 탐지하는 AI 사기 및 이상거래 탐지시스템, 알고리즘이 포트폴리오를 구성하고 리밸런싱하는 로보어드바이저, 고객상담 및 민원처리 등을 하는 AI 챗봇 등이 활용된다. 이처럼 금융분야에 AI가 가장 먼저 도입·확산하는 이유는 금융이 은행 계좌, 신용평가 등 본질적으로 디지털·수학적 구조라는 점, 오래전부터 IT 기반 업무 프로세스를 갖췄다는 점, 거래내역 및 상환이력 등 정형 데이터 비중이 높아 AI 학습용으로 최적이라는 점 때문이다.
금융위원회는 챗GPT가 나오기 전인 2021년 7월에 이미 AI 기반 금융서비스 개발을 위한 '금융분야 AI 가이드라인'을 발표했고 2002년부터는 세계에서 유례가 없을 정도로 빠르게 인터넷뱅킹, 오픈뱅킹, 마이데이터 도입을 통해 디지털 금융혁신을 선도해왔다. 이에 금융 AI 도입과 활용에서도 큰 성과가 날 것으로 기대되고 있으나 몇 가지 규제이슈로 인해 금융 AI 활용이 주춤하다.
첫째, 망분리 규제이슈다. 이는 업무망과 인터넷망을 물리적 또는 논리적으로 분리해 데이터 유출을 방지하는 규제인데 이로 인해 금융사가 외부 AI 모델을 사용할 수 없다.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2024년 8월 금융위는 '망분리 개선 로드맵'을 통해 혁신금융서비스 지정방식으로 외부 AI 모델을 사용할 수 있도록 허용했다.
문제는 혁신금융서비스 제도가 AI 기술의 발전에 비해 너무 느리게 작동한다는 점이다. 혁신금융서비스를 신청하고, 지정되고, 이후 보안점검과 인프라 구축을 완료해 실제 서비스를 출시하기까지 최소 6개월에서 12개월 이상이 소요된다. 이 과정에서 사업자는 신청 시 사용했던 동일한 모델과 아키텍처를 그대로 유지하는데 그사이에 더 성능이 뛰어난 최신버전 모델이 등장하더라도 이를 적용하기 어렵다.
즉, 초기 신청 당시의 기술 스펙에 서비스가 고정되는 구조적 제약이 혁신속도를 떨어뜨리고 있다. 이런 제약은 AI 기반 서비스의 가장 큰 경쟁력인 빠른 실험-학습-업데이트 사이클을 사실상 불가능하게 만든다. 조속히 법을 제정해 알고리즘 검증 등을 사후규제로 전환하거나 기존 사전심사 기간을 대폭 단축해 시장검증까지의 속도를 높여야 할 것이다.
또한 혁신금융서비스 지정을 받아도 가명정보만 사용할 수 있어 실제 이용자의 맥락·행동 기반의 편익을 제공하는 정교한 AI 서비스를 구현하기 어렵다. 개인정보보호법상 원본 데이터 사용특례를 금융분야에서도 도입할 필요가 있다.
둘째, AI기본법과의 규제충돌 이슈다. AI기본법은 모든 AI에 대해 포괄적으로 규제를 적용하고 있어 기존 신용정보법상 자동화 평가, 금융분야 AI 가이드라인 등과 중복될 우려가 있다. 또한 AI기본법상 대출심사 등은 '고영향 AI'로 분류되는데 그 외 어떤 금융서비스가 고영향에 해당하는지 여부도 불투명하다. 다음 금융권은 기존 규제체계 내에서 AI 기반 서비스를 도입·운영해온 상황인데 AI기본법 시행으로 기존 서비스에 일률적으로 규제를 소급적용할 경우 서비스 중단 등 혼란이 우려된다. 중복 가능성이 있거나 불투명한 조항에 대한 지침을 명확히 하고 기존 업무에 대해서는 규제적용의 유예기간을 설정하는 것이 필요하다.
기존 혁신금융서비스 지정을 통한 예외적 AI 활용방식은 현실과 맞지 않다. 지금처럼 집을 조금씩 보수하는 방식이 아닌 새로운 집을 다시 지어 금융 AI가 AI 3대 강국에 결정적인 역할을 할 수 있도록 해야 할 것이다.
이성엽 고려대 기술경영전문대학원 교수/기술법정책센터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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