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열 국립암센터 중앙암생존자통합지지센터 책임연구원 (가정의학과 전문의)
김열 국립암센터 중앙암생존자통합지지센터 책임연구원 (가정의학과 전문의) |
국민 20명 중 1명은 암을 앓았거나 치료 중인 암 생존자다. 중앙 암 등록 통계 기준 약 260만 명에 이른다. 더 중요한 사실은 암 치료가 끝났다고 해서 고통이 끝나지 않는다는 점이다. 많은 암 생존자들은 통증과 피로, 체력 저하 같은 신체적 후유증부터 우울·불안 등 정신적 고통, 직업 복귀 어려움, 의료비 부담 등 여러 문제 속에서 또 다른 투병을 이어가고 있다.
지난달 27일 열린 암정복포럼에서 국립암센터는 ‘국가 단위 암 생존자 경험 조사 연구’ 결과를 발표하며 ‘암 생존자가 겪는 어려움의 현황과 해결 방안’을 논의했다. 이번 포럼의 가장 큰 의미는 국가 차원의 체계적 조사가 본격적으로 이뤄지고 그 결과가 공개됐다는 점이다. 지금까지 국립암센터는 국내 암 등록 통계를 체계적으로 수집해 발표해 왔고, 국가 암 빅데이터에는 진단, 치료, 병리, 유전자 정보에 이르는 암 환자 데이터를 방대하게 구축했다. 하지만 암 환자가 치료 후 겪고 있는 피로, 통증, 우울, 경제적 압박 같은 삶의 문제는 통계로 수집되기 어려웠다.
조사 결과 암 생존자 삶의 질 및 정신건강 지표는 여성, 미혼, 저소득층에서 유독 낮게 나타났다. 경제적 고통도 심각했다. 암 생존자들이 보고한 암 치료에 든 평균 의료비 지출이 1655만 원에 달했는데, 28%가 암으로 인한 치료비, 소득 상실 등으로 도움이 필요했다. 약 40%는 암 진단 후 실직하거나 휴직했고, 자영업자의 약 40%가 일을 쉬고 있다고 답변했다. 해외에서는 치료비 생계비 부담으로 인한 ‘암 파산’이라는 표현까지 사용되고 있는데, 한국의 현실도 크게 다르지 않다.
영양 문제도 간과할 수 없다. 위암 환자는 체중 감소, 유방암 환자는 체중 증가 등 암종별로 상반된 어려움을 겪는다. 암 생존자의 52%가 건강식품이나 영양제에 영양 관리를 의존하는 등 문제가 있지만, 체계적 영양 상담 프로그램은 부족한 실정이다.
정책은 데이터가 있어야 움직인다. 암 생존자가 겪는 문제는 의료적 기록만으로는 파악할 수 없다. 환자들의 목소리를 구조화된 조사로 확인해야만 정책 근거를 마련할 수 있다. 포럼에 참석한 한 암 생존자는 “의학적으로는 생존했지만, 사회적으로는 여전히 위태롭다”고 말했다. 이 한 문장이 많은 생존자들이 겪는 현실을 압축해 보여준다.
치료는 병원에서 끝났지만, 생존의 여정은 사회 곳곳에서 다시 시작되고 있다. 사회적 지원 체계가 없다면 그 길은 암 환자 개인의 부담과 고통으로 채워질 수밖에 없다. 암 정복의 진정한 의미는 생존율을 높이는 데서 끝나지 않는다. 암 생존자가 존엄하게 살아갈 수 있는 환경을 만드는 것, 치료 이후의 삶까지 사회가 함께 책임지는 것이다.
김열 국립암센터 중앙암생존자통합지지센터 책임연구원 (가정의학과 전문의)
Copyright Ⓒ 동아일보. All rights reserved. 무단 전재, 재배포 및 AI학습 이용 금지
이 기사의 카테고리는 언론사의 분류를 따릅니다.
기사가 속한 카테고리는 언론사가 분류합니다.
언론사는 한 기사를 두 개 이상의 카테고리로 분류할 수 있습니다.
언론사는 한 기사를 두 개 이상의 카테고리로 분류할 수 있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