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현재 문화스포츠부 기자 |
영화 '범죄와의 전쟁' '명량' 등 흥행작에 잇달아 출연했던 충무로 대표 다작 배우 조진웅이 지난 6일 은퇴를 선언했다. 그가 1994년 고교 재학 시절 강도·강간 혐의로 소년보호처분을 받았다는 의혹이 한 언론 보도로 알려지면서다. 배우를 둘러싼 의혹은 논쟁을 촉발했다. 주로 소년범의 재사회화와 사회적 낙인 효과에 초점이 맞춰졌다. 사건 초기엔 그랬다.
하지만 시일이 지나면서 공론장은 싸움터로 변했다. 논쟁의 불꽃이 엉뚱하게 정치권으로 번지면서다. 범여권 인사들은 과거 소년범 이력이 있어도 속죄와 반성을 했다면 기회를 줘야 한다는 취지로 조진웅을 두둔하는 메시지를 잇달아 발신했다. 이는 정치적으로 해석되며 논란을 낳았다. 문재인 정부와 이재명 정부에서 열린 행사와 이벤트에 참여했던 조진웅을 '우리 편'으로 생각하는 진영 의식이 투영됐다는 것이다. 친여 성향 유튜버인 김어준 씨는 "나는 조진웅이 친문 시절에 해온 활동 때문에 선수들이 작업을 친 것이라고 의심하는 사람"이라며 대놓고 진영을 의식하는 발언을 내놓기도 했다.
야권에서는 "좌파 범죄 카르텔 인증" "조두순도 더불어민주당을 지지하면 응원할 건가"라는 원색적 반발이 나왔다. 이후에도 여야는 메시지를 주고받으며 갈등에 불을 댕겼다. 과거 범죄 이력이 있던 한 배우의 은퇴가 좌우 간 전쟁으로 비화된 것이다. 날 선 말들이 오갈수록 이성은 힘을 잃고 적의에 들끓는 대결 의식만 강화된다. 조진웅에 대해 누가 어떤 생각과 주장을 하든 진영 논리로 해석될 판이다.
진영 갈등의 틈바구니에 잊힌 사실이 있다. 조진웅을 용서하는 건 범죄 피해자의 몫이다. 향후 그를 스크린과 브라운관에서 만나고 싶은지는 대중이 선택하고 판단할 문제다. 정치권 인사들이 배우의 범죄 이력을 둘러싼 논쟁을 정치적으로 소비하며 편 가르기를 할 일은 아니다. 필요한 건 범죄가 삶에 어떤 책임을 남기고, 변화와 회복을 어떻게 인정할 것인지에 대한 기준을 진지하게 묻는 일이다. 한 배우의 과거가 폭로된 사건에 한국의 극단적인 분열상이 선명히 투영돼 있는 것 같아 씁쓸하기만 하다.
[최현재 문화스포츠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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