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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2.13 (토)

    [시론]고속철도 통합에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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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난 12월8일 정부는 코레일이 운영하는 KTX와 SR이 운행하는 SRT의 통합을 2026년 말까지 완료한다고 발표했다. 늦었지만 매우 잘된 처사라고 생각한다.

    현재의 이원화된 고속철도 체계는 이명박·박근혜 정부에서 강하게 추진하던 철도민영화가 국민적 저항에 부딪히자 그를 우회하는 과정에서 탄생한 기형물이다. 이원화로 인해 SR은 핵심 업무의 대부분을 코레일에 의존하면서도 알짜 노선 운영상의 혜택은 독점하고, 반면 코레일은 수많은 비인기 노선과 적자 사업까지 운영하는 데 따른 손해를 감수해야 하는 비정상적 운영구조가 지속되었다. 문재인 정부에서 이를 시정하기 위해 통합을 시도했지만 지지부진했고, 윤석열 정부에서는 통합 논의를 중단하고 이원체제를 그대로 유지했는데, 지난 대선에서 이재명 후보가 고속철도 통합을 공약으로 내세웠다. 신정부 출범 6개월 만에 통합의 첫발을 내디뎠다.

    철도산업에는 단순한 시장경쟁 논리를 적용하기 어렵다. 철도산업은 막대한 고정투자비용으로 인해 시장 규모가 커질수록 평균비용은 줄어들고 수익은 증가하는 산업이다. 경제학에서는 이러한 산업을 ‘규모에 따른 수익 증가 산업’이라고 하는데, 이 경우에는 여러 기업이 시장을 분할해 운영하는 것보다 하나의 통합된 기업이 큰 규모의 시장에서 영업할 때 비용 절감, 수익 증가, 혁신 유발 등 경제적 이익을 더 많이 누릴 수 있다. 이러한 산업은 종종 ‘자연독점’ 산업이라고도 하는데 이는 독점적 지위가 인위적 진입장벽에 의한 것이 아니라 생산기술의 특징에 기인한 것이라는 뜻이다. 규모에 따른 수익 증가 산업은 철도뿐 아니라, 대규모 투자를 요구하는 네트워크 산업이나 중화학 공업 등 우리 주변에 매우 많다. 우리나라의 경제개발이 성공할 수 있었던 것도 결국 선택과 집중, 그리고 수출을 통한 시장 규모의 확대라는 똑똑한 개발전략을 통해 규모에 따른 수익 증가라는 이점을 적절히 활용했기 때문이다.

    철도산업에서는 여러 기업이 시장을 분할해 경쟁하면 (별다른 꼼수를 부리지 않는 한) 가격은 하나의 통합된 기업이 운영하는 경우보다 더 높아진다. 더욱이 철도산업에서는 노선에 따라서도 평균비용이 크게 다르다. 인구가 많은 노선에서는 평균비용이 매우 낮은 반면, 인구가 적은 노선에서는 평균비용이 매우 높다. 따라서 이러한 산업에서는 노선별 전체 비용을 감안한 평균비용을 이용해 가격을 책정한다. 인구가 많은 지역의 노선에서 발생한 잉여로 인구가 적은 지역의 노선에서 발생한 적자를 보전하기 위해서이다. 이러한 방식을 ‘지역 간 교차보조’에 의한 가격 책정 방식이라고 한다. 전통적으로 민영화나 이원적 분할체제를 옹호하는 측은 SR이 더 낮은 가격과 더 좋은 서비스로 소비자들에게 혜택을 돌려주었다고 주장한다.

    하지만 이는 알짜 노선 운영으로 발생한 잉여의 일부를 SRT 이용자에게만 돌려준 것으로 진정한 의미의 가격 인하가 아니고 지역 간 교차보조도 아니다. 오히려 국민 전체가 공유해야 할 혜택을 자기들끼리만 나눈 것으로 비난받을 여지가 있다.

    이번 통합으로 이원화된 분할체제가 낳은 노선과 시간대의 제약을 상당히 완화할 수 있으리라 기대한다. 아울러 인구소멸지역이나 비인기 노선의 경우에도 철도 운영이 정상화될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전 국민에게 평등한 교통접근권을 제공함으로써 철도의 공공성이 강화되고 철도산업의 경쟁력도 높아질 것으로 기대한다.

    하지만 통합 과정에서 필연적으로 발생할 우려사항들도 존재한다. 첫째, 현재 SR노조 측이 통합에 따른 공공성의 확보에는 찬성하면서도 통합에 많은 우려를 표하는 이유 중 하나가 바로 인력 구조조정 우려 때문이다. 노동자들의 희생을 강요하는 통합이 되지 않도록 노력하길 바란다. 둘째, 적정한 철도서비스의 가격 책정에 대한 방안이나 노선 운영에 따른 경제적 비용편익에 대한 면밀한 연구와 분석을 진행해 철도경쟁력을 높이는 방안을 신속히 강구할 필요가 있다.

    셋째, 적절한 인력 배치 문제와 적정 급여 체계에 대한 연구와 개선도 빠른 시일 내에 진행해야 한다. 넷째, 자연독점도 독점이니만큼 독점의 여러 가지 문제점에 대한 대비책과 감시 시스템 마련이 필요하다. 잘 준비된 통합으로 현재에도 세계 최고 수준의 서비스를 제공하는 대한민국의 철도산업이 한 단계 더 도약하는 계기가 되기를 바란다.

    경향신문

    이우진 고려대 경제학과 교수


    이우진 고려대 경제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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