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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2.13 (토)

    [사설]150조 성장펀드, 정권 끝나면 폐기되는 ‘관제 펀드’ 넘어서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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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국 경제의 차세대 성장동력 육성을 목표로 하는 150조 원 규모 ‘국민성장펀드’가 11일 닻을 올렸다. 이재명 정부는 이 펀드를 인공지능(AI)·반도체·로봇 등 첨단산업 분야에 집중 투입할 계획이다. 각국 정부의 첨단산업 육성 ‘국가대항전’이 치열한 만큼 의미 있는 시도라는 평가가 많다. 다만 과거 역대 정부의 ‘관제 정책펀드’들이 정권 교체 후 흐지부지됐던 전철을 피하기 위해선 최대한 정치색을 배제하고 수익성과 지속성을 높여야 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국민성장펀드는 정부보증 채권으로 조성하는 첨단전략산업기금 75조 원과 금융권 등의 민간 재원 75조 원을 합해 총 150조 원 규모다. AI에 30조 원, 반도체 20조9000억 원, 전기·수소차 등 모빌리티 15조5000억 원 등 11개 차세대 첨단산업에 5년간 투자된다. 지분 투자 등을 통해 유망 스타트업을 기업가치 10조 원 이상 벤처기업을 의미하는 ‘데카콘’으로 키워내는 것도 목표라고 한다.

    주요국 기업들은 이미 정부의 보조금·세금 지원과 함께 정부 출자 기금의 지원을 받고 있는 만큼 이번 펀드 조성은 오히려 늦은 감이 있다. 중국 정부는 2014년 이후 3차례나 ‘빅 펀드’를 조성해 반도체 한 분야에만 144조 원을 쏟아 붓고 있다. 일본 정부는 도요타·소니·키옥시아·소프트뱅크 등 대기업이 출자한 반도체 기업 라피더스에 27조 원을 투자하고 있다.

    그럼에도 우려되는 건 역대 정부 관제 펀드의 뒤끝이 좋지 않았기 때문이다. 원금 손실을 정부 재정에서 보전해주기로 한 문재인 정부의 ‘뉴딜펀드’들은 대부분 수익을 거의 내지 못하거나 손실을 봤다. 박근혜 정부의 ‘통일펀드’는 사실상 이름만 남아 있는 상태다. 이명박 정부 때 활성화된 ‘유전펀드’는 많은 투자자에게 손실을 안겼다. 사업성을 엄밀히 따지지 않고 정권의 단기적 목표 달성에만 초점을 맞춘 탓이다.

    취지가 아무리 좋더라도 수익을 못 내는 펀드는 결국 실패작이다. 정부가 보증해 국책은행 등이 발행할 75조 원의 채권은 이자까지 물어야 하는 광의의 나랏빚이다. 금융권과 국민에게서 조달할 나머지 75조 원도 적정한 수익을 내지 못하면 더 필요한 곳에 가야 할 돈을 잘못 잡아두는 셈이 된다. 관제 펀드 실패 사례 목록에 이번 펀드가 추가되는 일이 없도록 정부는 무엇보다 엄정한 투자 대상 선정, 투명한 운영에 유념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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