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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2.18 (목)

    위안화 국제화의 머나먼 길 [세상읽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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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겨레

    중국 정부가 지난 10월 발표한 국가 중장기 발전 계획인 ‘15차 5개년 계획’(2026~2030)에는 “위안화 국제화를 추진하고, 자본계정의 개방 수준을 높이고, 자주적으로 통제할 수 있는 위안화 국제결제 지불 시스템을 건설한다”는 문구가 등장한다. 위안화 국제화를 추진하는 중국 정부의 어조가 차분해졌다.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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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겨레

    최필수 | 세종대 중국통상학과 교수



    12월1일 원화-위안화 직거래 시장 설립 11주년 기념식이 서울에서 열렸다. 중국이 한국의 최대 교역 상대국이고 그만큼 거래액도 많으니, 굳이 달러로 거래하지 말고 자국 통화로 결제하면 환차손도 없고 좋지 않겠냐는 생각이었다. 2014년 12월의 일이다. 그 후 11년이 흐른 오늘 두 나라는 무역할 때 어떤 통화를 쓰고 있을까? 여전히 달러 위주이다. 위안화 결제의 비중은 꾸준히 늘었지만 11%에 불과하다. 생각보다 더딘 위안화 국제화의 한 사례이다. 왜 이럴까?



    중국이 위안화 국제화에 나선 것은 글로벌 금융위기 직후인 2009년부터다. 당시 미국발 금융위기로 전세계가 고통받는 가운데 미 연방준비제도(Fed·연준)가 양적완화를 시행하면서 달러 가치가 많이 떨어진 상태였다. 수출대국으로 부상하며 막대한 달러를 축적하고 있던 중국이 이러한 미국의 정책에 불만을 표하며 선보인 화두가 위안화 국제화였다. 미국의 무책임한 화폐정책에 대한 불만을 공유하는 동시에, 좀 더 자주적인 금융주권을 확립하고 중국의 대외 영향력을 키울 수 있는 복합적인 전략이었다.



    그러나 현실은 생각처럼 쉽지 않았다. 위안화가 국제통화가 되려면 여러가지 까다로운 조건들을 만족시켜야 했다. 가장 기본적인 조건인 발행국의 강건성은 만족시킬 수 있다. 중국은 세계 2위의 경제규모를 지닌 크고 강한 나라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다음부터의 조건들은 만족시키기 어려웠다. 위안화를 운용할 수 있는 금융시장도 부족하고, 정부가 환율에 개입하는 이상 투명성도 부족하다. 무엇보다 외국인들이 위안화를 자유롭게 태환(다른 화폐로 교환)할 수도 없다. 이런 조건이 만족되지 않는 이상 위안화 국제화는 공염불에 가깝다.



    그럼 이러한 조건들을 충족시켜나가면 되지 않을까? 이미 계획경제에서 시장경제로 거대한 방향 전환을 했던 중국 정부는 자신감이 있었던 모양이다. 시진핑-리커창 체제가 출범한 직후인 2013년 가을에 열린 제18기 3중전회에서 “위안화 자유태환을 조속히 실현한다”고 선언한 것이다. 위안화를 자유롭게 태환할 수 있게 하려면 환율도 자유변동 체제로 이행해야 할 터이고, 위안화 금융시장도 국내외에서 활발하게 형성될 터였다. 2014년 말 한국과의 통화 직거래 시장 설립도 이런 맥락에서 이뤄진 일이었다. 이제 중국이 제조대국을 넘어 금융대국으로 부상한다며 세계가 호들갑을 떨었다. 그러나 앞서 살펴봤듯이 10여년이 지난 오늘까지도 위안화의 국제적 위상은 미미하다. 무슨 일이 있었던 것인가?



    그 사건은 2015년 여름에 벌어졌다. 2015년 봄 ‘중국제조 2025’ 등 장밋빛 산업정책의 힘을 받아 과열 조짐을 보이던 중국의 증시가 폭락했다. 이에 따라 증시에 스며들어 있던 외국 투자자본이 먼저 빠져나갔고 외환통제를 우려한 국내 자본도 뒤따라 빠져나갔다. 이러한 패닉의 결과 당시 몇개월 사이에 유출된 달러화는 무려 약 1조달러였다. 이에 따라 4조달러가 넘었던 중국의 외환보유고는 3조달러대로 급락했다. 시진핑 지도부 최대의 위기라고 부를 만한 사태였다.



    이 사태와 함께 위안화의 자유태환과 국제화에는 급제동이 걸렸다. 자유태환이 아직 시행되지 않은 상황에서 이 난리가 났는데 만약 시행했더라면 어쩔 뻔했는가? 이 사태 이후 자유태환이란 말은 중국의 정책 담론에서 금기어가 됐다. 금융개방을 주도했던 리커창 총리도 급격하게 힘이 빠졌다. 흔히 비운의 총리로 일컬어지는 리커창의 무력화에는 이러한 본인의 실수도 한몫을 했다.



    다시 현재로 돌아오자. 이제 리커창 없이 홀로 서 있는 시진핑은 위안화 국제화의 꿈을 접었는가? 지난 10월 발표된 15차 5개년 계획(2026~2030)에는 다음과 같은 문구가 등장한다. “위안화 국제화를 추진하고, 자본계정의 개방 수준을 높이고, 자주적으로 통제할 수 있는 위안화 국제결제 지불 시스템을 건설한다.” 2013년에는 뭔가를 단번에 해결할 기세였던 중국 정부의 어조가 차분해졌다. 위안화 국제화를 포기하지 않되 그 선결 조건들을 차근차근 채워나가겠다는 것이다. 안전한 선택이다. 섣부른 개방으로 2015년 시즌2를 겪을 수는 없다. 대신 가까운 시일 내에 위안화가 달러 패권을 대체하는 일도 없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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