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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2.24 (수)

    [지금, 여기]소년법정, 문밖에 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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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소년 시절 저지른 범죄가 알려져 은퇴한 한 배우를 둘러싸고 논쟁이 이어지고 있다. 그런데 정작 소년사건을 다루는 법정 안에서는 어떤 일이 일어나는지, 특히 그 속에서 피해자는 어디쯤에 서 있는지에 대한 논의는 미미하다.

    소년보호재판 풍경이 잘 드러나는 곳은 의외로 법정 안이 아니라 문 앞이다. 지적장애 초등학생 여아가 피해자인 성폭력 사건이 있었다. 아이는 온라인에서 한 남성을 알게 되었는데 그는 지속적으로 호감을 보이며 만나자고 했다. 약속에 나온 아이를 아파트 옥상에 데려간 그는 성폭력을 몰래 녹화한 후 그 영상으로 협박까지 했다. 다행히 부모의 빠른 대처로 수사가 시작되었고, 가해자를 잡고 보니 이제 고등학생이 된 ‘소년’이었다. 피해자의 변호사로 심리기일 통지를 받고 소년부 재판정 앞 복도에 섰다. 그런데 문 앞에서 제지당했다. 통지서를 내밀었지만, 사전에 허가를 받지 않았으니 심리에 들어갈 수 없다는 답변이 돌아왔다. 부랴부랴 참여 허가를 구하고 어렵게 법정에 들어갈 수 있었다.

    법정 문을 열자마자 진술을 시작하란다. 어떤 단계인지 살필 새도 없이 피해아동의 상황과 엄벌의사를 서둘러 진술했다. 발언을 마치자마자 퇴정해달라는 판사의 명령에 더 이상의 방청은 불가능했다. 법정 문 근처에서 재판 진행을 엿듣지 말라는 경고까지 들으며 법정을 나왔다. 다음날 재판부에 연락해 어떤 보호처분이 나왔는지 물었으나, 알려줄 수 없다는 답이 돌아왔다. 소년보호재판은 비공개이기 때문이다. 피해자라고 해서 예외는 아니었다.

    사법연감에 따르면, 소년보호사건은 작년 한 해 5만건 넘게 법원에 접수됐다. 전체 소년사건 중 14세 미만 소년의 비율도 점차 높아지는 추세다. 성비행만을 따로 낸 통계는 없지만, 현장에서 체감되는 성범죄 관련 소년사건은 늘고 있다. 오픈채팅방에서 반복적으로 음란한 발언을 하고, 딥페이크 기술로 만든 영상이나 음성을 공유하는 등 범행 양상도 다양하다. 강간·유사강간·집단성폭행 등 강력범죄는 가해자가 14세 미만이 아니라면 대체로 형사법정으로 가지만, 그 외 상당수의 성범죄는 소년보호재판에서 다뤄진다.

    낙인과 여론재판을 막기 위한 비공개 원칙이, 현실에선 피해자의 절차 참여와 알권리를 좁히기도 한다. 사건 진행 상황이나 결과는 피해자에게 별도로 통지되지 않으며, 심리 불개시 결정이 내려져도 피해자는 이를 다툴 수 없다. 최근 소년법에 피해자와 그 대리인의 의견진술권이 명시되면서, 미리 신청한 경우 심리기일을 통지해주기도 한다. 그러나 그 통지가 바로 재판 참여권을 보장하는 것은 아니다. 사건 기록의 열람·등사는 원칙적으로 금지돼 있고, 소년부 판사가 허가한 부분만 예외적으로 허용된다. 허가 범위는 대개 피해자 본인의 진술 부분이나 민사소송을 위해 꼭 필요한 최소한의 인적 사항 정도에 그친다. 결국 피해자는 사건이 어떻게 심리되었는지, 어떤 보호처분이 내려졌는지, 그 처분이 앞으로의 안전과 회복에 어떤 의미를 갖는지 제대로 알기 어렵다.

    지금까지 소년보호재판은 절도나 폭행 등 비교적 전통적인 유형의 범죄가 중심이었지만, 디지털 환경 속에서 증가하는 소년 성범죄 양상을 고려해 피해자의 권리를 생각할 시점이 아닐까. 소년사건의 보호적 성격과 비공개 원칙, 신속성이라는 가치를 훼손하지 않으면서도 피해자의 절차 참여권과 알권리를 넓히는 길은 있다. 심리 개시 판단 기준과 사건 진행 상황에 대한 통지와 의견 청취, 피해자 영상진술 지원, 사건 기록에 대한 보다 넓은 접근권 검토가 그 출발점이 될 수 있다.

    소년은 보호받아야 할 존재이면서, 자신의 행위에 대해 책임을 배워야 하는 당사자다. 피해자 또한 절차 바깥에 서 있는 주변인이 아니라, 권리를 가진 주체다. 소년보호재판이 이 모두를 담아낼 수 있도록, 소년범 법정의 문이 피해자에게도 조금 더 열리길 바란다.

    경향신문

    김예원 장애인권법센터 변호사


    김예원 장애인권법센터 변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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