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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2.19 (금)

    [미디어세상]방송 공정성 심의, 폐지하면 다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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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국회 과학기술정보방송통신위원회(과방위)가 지난주 더불어민주당 주도로 방송심의 관련 방송법 개정안을 만들었다. 이 법안으로 그간의 심의 사항 중 ‘건전한 가정생활 보호’가 ‘사회구성원의 보호 및 다양성 존중’으로, ‘양성평등’이 ‘성평등 및 성다양성 존중’으로, ‘인종, 민족, 지역, 종교 등을 이유로 한 차별 금지’가 ‘차별 및 혐오 방지와 금지’로 바뀌게 된다. 시대에 맞춘 바람직한 변화다. 특히, 그간 문제가 돼왔던 방송미디어통신심의위원회(방미심의위)의 공정성 심의가 폐지된다.

    그런데 공정성 심의를 없앤다면 “방송에 의한 보도는 공정하고 객관적이어야 한다”는 방송법 조항(6조)은 무의미해질 것이다. 물론, 이 조항을 아예 폐기할 수도 있다. 미국도 이미 1987년에 방송에서 “대립하는 양자의 견해에 합리적인 기회를 주어야 한다”는 ‘공평의 원칙’을 없애버린 바 있다. 미국에서 케이블 채널에는 원래부터 공정성 의무가 없었지만, MSNBC나 Fox News가 각각 좌우 편향 방송을 대놓고 할 수 있는 것도 공평의 원칙 폐기로 인한 기조 변화 때문이다.

    그러나 한국 시민 다수는 여전히 방송 공정성을 중요하게 생각한다. 각종 조사를 보면 한국 시민이 방송에 대해 가지는 큰 불만과 기대는 공정성 문제다. 이재명 대통령도 지난주 방송미디어통신위원회(방미통위) 업무보고에서 “방송의 편향성이나 중립성 훼손” 대책에 관해 물었다고 한다. 이에 이 부서 관계자가 그 사안은 방미통위가 아닌 “방미심의위가 다루는 부분”이라고 답했다. 그러나 위의 방송법 개정안이 통과된다면 방미심의위도 담당 부서가 될 수 없다. 아직 공석인 이 위원회 위원장이 보임되면 관련 보고를 받자고 대통령이 결론지었다는데 과방위 개정안에 대해 인지하지 못했거나 동의하지 않는 것 같다.

    모든 방송에 공정성을 요구할 필요는 없다. 신문에도 공정성을 요구하는 법과 제도는 없다. 그러나 공영방송과 지상파 방송, 보도채널, 종합편성채널 등을 이 의무에서 풀어주는 것은 다시 생각해볼 필요가 있다. 공영방송은 국가 자산이거나 수신료 등 공적기금을 쓰는 공공기구이고, 지상파 방송은 한정된 국가 자원인 전파를 쓰는 일종의 위탁 사업체이다. 보도채널과 종합편성채널은 공적 목적을 위해 다른 사업자들의 진입은 막은 채 독과점적으로 사업하게 하는 특혜 사업체다. 이들 채널은 자유재인 신문이나 유튜브와는 다르다. 만약 한국이 공정성 심의를 하지 않는다면 미국과 함께 이례적 ‘방송 편향성 자유국’(?)이 될 것이다. 영국도 공영방송은 물론 지상파 채널과 케이블 뉴스 채널 등에 대해 독립기구인 Ofcom이 공정성 심의를 한다.

    그렇다고 해서 과방위의 공정성 심의 폐기 법안 자체를 되돌리자는 얘기는 아니다. 어차피 현 방미심의위가 공정성을 심의하는 것은 문제 소지가 크다. 현재의 법으로 정부·여당 추천인이 과반(재적 9인 중 6인)인 위원회에서 정치적 사안의 보도 공정성을 심의하는 것은 그 자체로 불공정하다. 더구나 지난 10월 민주당이 주도한 방송법 개정으로 방미심의위 위원장의 지위가 공무원화되어 이 기구는 확실한 국가기관이 되었다. 이런 마당에 공정성 심의를 국가기구가 하는 것은 검열이라고 할 수 있다.

    남은 선택지는 명확하다. 사업자 스스로에게 맡기는 것뿐이다. 물론 그냥 맡겨서는 이 대통령도 걱정했다는 “방송이 중립성을 어기고 무슨 특정 정당의 개입, 사적 유튜브처럼 행동하는” 문제는 해소할 수 없을 것이다. 타협적 해결책이 있다면, 국가가 관리·지원하는 공동 규제 시스템을 만드는 것이다. 자율규제를 하되 국가가 정한 조건과 방법 아래 사업자들에서 독립된 인사들이 심의하는 방법이 가능하다. 나와 학계 동료 몇명은 이와 관련해 2021년 ‘통합형 언론 자율기구 설립 방안’을 발표한 바도 있다.

    경향신문

    강형철 숙명여대 미디어학부 교수


    강형철 숙명여대 미디어학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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