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이터 노동'에 투입된 현대인
'AI 슬롭' 가려내는 분별력 필요
'로그 오프'하는 용기도 가져야
'AI 슬롭' 가려내는 분별력 필요
'로그 오프'하는 용기도 가져야
ⓒ게티이미지뱅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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퇴근 후 침대에 누워 스마트폰을 켠다. 유튜브 알고리즘이 추천한 쇼트폼 동영상을 무심코 누른다. 정신을 차려보면 어느새 한 시간이 훌쩍 지났다. 우리는 흔히 이 시간을 휴식이라 부른다. 하루 종일 업무에 시달린 뇌를 식히는 보상의 시간이라 믿는다.
과연 그럴까. 통계는 다른 이야기를 한다. 통계청의 '2024년 생활시간조사'에 따르면 국민 수면시간이 통계 작성 이래 처음으로 감소했다. 주범은 스마트폰이다. 우리는 쉬고 있는 것이 아니라, 잠을 줄여가며 또 다른 노동을 하고 있는 셈이다. 바로 거대 플랫폼 기업을 위한 '데이터 노동'이다.
'데이터 노동'이라는 개념이 낯설게 들릴 수 있다. 하지만 '가상현실'을 처음 고안한 과학자 재런 러니어는 일찌감치 "데이터는 노동이다"라고 주창했다. 우리가 SNS에 올리는 사진과 검색어, 머무는 시간, '좋아요' 클릭 등 모든 행위가 플랫폼의 경제적 이익에 기여하는 불공평한 구조의 노동이라는 것이다.
틱톡이나 유튜브 숏츠를 떠올려보자. 우리는 짧은 영상을 끝없이 밀어 올리며 시청한다. 어떤 영상에서 멈추고, 얼마나 오래 보고, 어디서 건너뛰는지. 이 모든 행동 데이터가 실시간으로 수집되어 알고리즘을 더욱 정교하게 만든다. 조사업체 와이즈앱에 따르면 쇼트폼 콘텐츠의 월평균 사용 시간은 약 52시간 2분에 달한다. 국민의 60% 이상이 하루 1시간 이상 쇼트폼을 시청한다는 조사 결과도 있다. 우리는 도파민이라는 찰나의 보상을 받으며, 플랫폼이라는 공장에서 매일 밤 무급의 야근을 하고 있는 셈이다.
문제는 이 노동이 인공지능(AI) 시대로 접어들며 더욱 교묘해지고 있다는 점이다. 이제 우리는 소셜미디어를 넘어 생성형 AI와 대화하며 데이터를 제공한다. 챗GPT에게 던진 질문과 수정 요청, 피드백은 모두 AI 모델을 개선하는 훈련 데이터가 된다. 과거에는 사진과 텍스트를 제공했다면, 이제는 우리의 의도와 사고방식, 판단 패턴까지 알려주고 있는 것이다.
여기서 필요한 것이 새로운 차원의 '디지털 리터러시'다. AI에게 질문을 잘 던지는 기술을 넘어, AI가 쏟아내는 결과물을 비판적으로 걸러내는 능력이 요구된다. 영미권에서는 'AI 슬롭(Slop)'이라는 신조어가 유행하고 있다. AI가 맥락 없이 쏟아내는 저질 콘텐츠나 엉터리 정보를 뜻한다. 과거의 스팸 메일처럼, AI가 만든 '디지털 쓰레기'가 인터넷을 뒤덮고 있다. 진정한 리터러시는 화려한 생성형 AI 기술에 감탄하는 것이 아니라, 내 앞에 놓인 정보가 '슬롭'인지 아닌지를 분별하고, 나의 질문과 피드백이 거대 기업의 AI를 살찌우는 데 어떻게 쓰이는지 자각하는 데 있다.
우리를 둘러싼 환경은 어느새 알고리즘 기반으로 전환되고 있다. 이제 스스로에게 질문해야 한다. 나는 플랫폼의 주인인가, 아니면 알고리즘을 훈련시키는 부품인가. '데이터 노동'의 굴레에서 벗어나려면 개인의 각성과 더불어 제도적 변화도 필요하다. 유럽의 디지털서비스법(DSA)처럼 플랫폼의 알고리즘 투명성을 강제하고, 이용자 데이터에 대한 정당한 보상 체계를 논의해야 한다. 동시에 우리 스스로 '로그 오프(Log Off)'할 수 있는 용기를 가져야 한다. 알고리즘이 차려 놓은 밥상을 거부하고 능동적인 정보 탐색자가 되자. 그러면, 잃어가던 진정한 휴식을 되찾을 수 있을 것이다.
김경달 고려대 미디어대학원 겸임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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