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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2.16 (화)

    [투데이 窓]첨성대는 '향로'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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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머니투데이

    박동우 (무대미술가/연출가/홍익대교수)



    '첨성대는 ( )이었다'는 지난달 글(아래 2025년 11월19일자 칼럼 참조)에서 필자는 첨성대를 경주의 고분군을 향해 제사 지내는 거대한 '향로'였다고 주장했다. 그 글을 읽고 '한국의 기원을 찾아서'의 저자 백범흠 교수가 "신라인들이 무덤 앞에 제사 지내며 향을 피우는 습속이 있었는지 확인하면 가설이 입증될 듯하다"고 조언해주었다. 그 조언에 답할 겸 지난달 지면 관계로 싣지 못한 향로설의 근거를 이 글에서 추가로 제시하고자 한다.

    1. 신화와 제사

    삼국사기에 따르면 신라 2대왕 남해차차웅은 시조묘를 세우고 계절마다 시조왕 박혁거세에게 제사를 지냈다. 또한 21대 소지마립간이 박혁거세의 탄생지 나을에 신궁을 지었고 22대 지증왕은 신궁에 제향을 했다. 신라 시조왕 박혁거세는 나정에서 발견된 큰 알을 깨고 나왔고 경주김씨의 시조 김알지는 계림에서 발견된 금궤에서 나왔다고 한다. 김알지의 7세손이 왕이 됐는데 그가 김씨의 시조왕 13대 미추왕이다. 경주 시내에 수백 개의 고분이 있고 그 속에 장신구, 무기, 식기류 등이 함께 묻힌 것으로 봐서 신라인들은 죽음과 삶의 공간을 따로 구분하지 않고 죽음 이후에도 삶이 연속된다고 본 듯하다. 신라의 고분 양식은 초기의 널무덤으로부터 덧널무덤을 거쳐 김씨 왕조의 무덤부터는 돌무지덧널 양식으로 바뀌어 불교 전래 이전까지 이어진다.

    2. 불교와 제사

    제19대 눌지왕 때 고구려에서 온 승려 묵호자에 의해 처음 불교가 알려지고 23대 법흥왕 때 이차돈의 순교를 계기로 불교가 공인됐다. 이후 27대 선덕여왕 때 황룡사에 9층목탑을 세우면서 신라의 불교는 정점에 이른다. 그런데 불교를 공인한 법흥왕 때부터 경주 시내가 아닌 외곽에 무덤이 조성된다. 극락왕생, 즉 현세의 몸을 버리고 아미타불이 다스리는 극락정토에 다시 태어나 윤회의 고통을 벗는다는 믿음에 따라 현세가 함께하는 경주 시내를 벗어나 외곽에 무덤을 쓴 것이다. 그리고 굴식돌방무덤으로 양식이 바뀐다. 제사도 불교식으로 바뀌었을 것이다.

    3. 제사와 향

    삼국사기와 삼국유사에 다음과 같은 일화가 전한다. 눌지왕 때 묵호자가 일선군(지금의 선산)에 있는 모례의 집에 숨어지냈는데 어느 날 중국 양나라 사신이 선물로 가져온 향이라는 물건의 용도를 아무도 알지 못해 왕이 전국에 수소문한 끝에 사람을 시켜 향을 묵호자에게 가져왔다. 묵호자가 "이는 향이라는 것인데 불에 태우면 향기가 짙게 퍼져 정성이 신성한 곳에 이르게 된다. 신성한 것으로는 삼보보다 더한 것이 없으니 이것을 태우고 기원하면 반드시 영험이 있을 것이다"라고 했다. 향은 고대 인도로부터 불교와 함께 신라에까지 이른 것으로 보고 있다. 출토된 수많은 신라 향로가 분향이 일반화했음을 증명한다.

    4. 첨성대의 형태와 위치

    첨성대는 봉수대와 그 형태가 같다. 땔감과 공기를 공급하는 구멍이 옆구리에 있고 위로는 연기가 빠져나가는 구멍이 있다. 물리적 기능이 같기에 형태도 같은 것이다. 첨성대의 내부에는 측면 구멍 하단까지 흙으로 메웠다. 향나무를 쌓고 불을 붙이기 좋은 형태다. 그리고 그 구멍은 정남향이 아니라 동쪽으로 19도 틀어져서 왕궁을 바라본다. 분향 주체가 있는 방향에 향입 구멍이 있는 것은 당연한 이치다. 첨성대는 왕궁으로부터 고분군을 바라보는 방향으로 360m 거리에, 고분군의 입구에 있다. 왕궁을 나서서 해자를 건너 계림을 지나면 첨성대가 나타나고 첨성대의 북쪽으로는 김씨 시조왕 미추왕릉이 포함된 대릉원, 인왕리고분군, 쪽샘고분군 등에 수백 기의 고분이 모여 있다.

    국가적 위기를 불교의 힘으로 극복하고자 한 선덕여왕은 불교 전래 이전에 사망한 선조들의 극락왕생을 빌며 그들이 살고 있는 고분군 앞에 거대한 향로를 세우고 외환에 시달리는 국가와 내란에 위협받는 왕권의 안녕을 기원하는 향을 피워올렸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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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5년 11월19일자 [투데이 窓]첨성대는 ( )이었다

    "첨성대는 ( )이었다."

    1. 위 문장의 ( ) 안에 들어갈 말로 적합한 것은?

    ① 별을 관측하는 천문대

    ② 절기를 관측하는 규표

    ③ 불교의 수미산

    ④ 마야부인의 우물

    최근 경주에서 APEC 정상회의가 열리고 그 축하행사의 일환으로 첨성대 미디어아트쇼가 있었다. 오색 빛이 걷히고 신라의 천문관측관이 사다리를 타고 첨성대 중간에 있는 구멍으로 들어가 그 속에서 다시 사다리를 타고 꼭대기에 올라 하늘을 바라보는 영상이 첨성대에 투사됐다. ①번을 재현한 장면이다.

    사실 한국인이라면 누구나 ①번을 선택할 것이다. 그리고 아마도 정답으로 채점될 것이다. 천문대설은 고려시대 승려 일연이 쓴 '삼국유사' 중 "선덕여왕 대에 돌을 다듬어 첨성대를 쌓았다"는 대목에서 출발한다. 이후 조선조 '세종실록지리지'에서는 "그 가운데를 통하게 하여 사람이 가운데로 올라가게 되어 있다"는 기록이 더해진다. 그리고 첨성대 건립 후 약 900년이 지나 '신증동국여지승람'에는 드디어 "사람이 속으로 오르내리면서 천문을 관측한다"는 내용이 추가됐다. 첨성대라는 이름이 '별을 쳐다보는 높은 단'이라는 뜻이었으니 의심하기 어려운 설이었다.

    그러나 현대에 와서 여러 다른 설이 등장했다. 1964년 전상운 성신여대 교수는 ②번 규표 설을 주장하면서 처음으로 천문대 설에 반기를 들었다. 1973년 이용범 동국대 교수는 불교의 세계관에서 세상의 중심에 있다는 ③번 수미산을 형상화하여 별에 제사를 지내던 제단이라고 주장했다. 그리고 2009년 정연식 서울여대 교수는 선덕여왕의 신성성을 위해 세운 ④번 마야부인 우물 설을 발표했다. 그 외에도 많은 설의 도전이 있다.

    그렇다면 ①번은 왜 이러한 도전을 받고 있을까. 그 이유는 현존하는 다른 천문대들이 반증해준다. 세종 때 만들어진 '관상감 천문대'는 현재 종로구 계동 현대건설 사옥 앞에 보존돼 있다. 지금은 없어졌지만 1913년에 촬영된 사진에는 돌계단이 포함돼 있다. 그리고 창경궁 정원에 있는 '관천대'에도 돌계단이 있다. 건축은 기능을 따르게 돼 있다. 천문대의 핵심업무를 수행하려면 우선 계단을 거쳐 평평한 높은 단 위에 올라서야 한다. 하지만 경주 첨성대에는 계단도, 평평한 단도 없다. 게다가 허리춤에 있는 구멍은 출입구라고 하기엔 너무 높고 좁다. 내부에서 꼭대기에 오르기도 대단히 위험하다. 천문대로 쓰기엔 너무나 불합리한 시설이다.

    그렇다면 첨성대는 무슨 시설이었을까. 경주 위성지도를 펼쳐 놓고 공연예술가의 눈으로 살펴본다. 신라의 궁궐인 월성의 북서쪽 약 700m 지점에는 대릉원이 있다. 거기엔 황남대총, 천마총, 금관총 등 수많은 고분이 있다. 그 옆 동쪽에는 발굴 중인 쪽샘지구 고분군 유적지가 있고 이어서 그 옆에는 인왕리 고분군이 있다. 경주에는 일제강점기에 확인된 고분만도 155기에 이르고 지금도 계속 발굴 중이다. 앞으로 얼마나 더 발견될지 모른다. 경주는 도시 전체가 수백 개의 고분으로 이뤄진 하나의 거대한 신전이다. 신라 궁궐 월성에서 바라본 그 고분군 바로 앞에 첨성대가 서 있다. 첨성대는 그 신전 앞에 세워진 '향로'가 아니었을까.

    향로는 정성껏 향을 피워 하늘에 닿게 하는 제기이자 불보살에게 향을 공양하는 도구다. 향을 피워 연기를 올리려면 하부에서 공기가 공급되고 상부는 열려 있어야 한다. 사다리를 타고 올라가 첨성대 허리에 난 구멍에 향나무를 넣고 불을 붙인 후 내려와 사다리를 치우면 연기가 상부의 구멍으로 피어 올라간다. 향로의 규모가 커지면 봉수대와 그 구조가 같아진다. 남산의 봉수대를 보면 첨성대와 구조가 똑같다. 둘 다 연기를 피워 올리는 시설물이기 때문이다. 3D프린터로 첨성대를 출력하고 그 속에 향을 피워 보았다. 완벽한 향로였다. 수백 개의 고분으로 이뤄진 거대한 신전, 그 앞에 세워진 첨성대.

    ( ) 안에 들어갈 또 하나의 항목을 감히 제시해본다.

    ⑤ 향로

    박동우 무대미술가·연출가·홍익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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