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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2.19 (금)

    25년 만에 퇴출된 ‘몬샌토 제초제 논문’ [오철우의 과학풍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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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겨레

    다국적 기업 몬샌토의 제초제 ‘라운드업’과 글리포세이트 성분이 인간 건강에 큰 위험이 되지 않는다는 결론을 내렸던 2000년 논문이 25년 만인 최근에 연구윤리 위반 사유로 뒤늦게 철회됐다. 그 사이에 이 논문은 규제 정책에서 과학적 근거로, 학계에서 권위 있는 참고문헌으로, 여러 논쟁에서 기업의 방패막이로 계속 활용되어왔다. ‘규제 독성학과 약리학’ 철회 논문 갈무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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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겨레

    오철우 | 한밭대 강사(과학기술학)



    얼마 전, 널리 쓰이는 제초제 성분이 인체 건강에 큰 위험이 되지 않는다고 밝혔던 논문 한편이 철회됐다. 2000년 학술지 ‘규제 독성학과 약리학’에 발표된 지 25년 만에 맞은 불명예 퇴출이었다.



    문제의 논문은 다국적 기업 몬샌토의 제초제 ‘라운드업’과 주성분인 글리포세이트의 안전성을 다룬 연구 결과였다. 병리학자와 독성학자 3명이 저자로 이름을 올렸고, “현재의 사용 조건에서 라운드업 제초제는 건강에 위험을 초래하지 않는다”는 결론을 제시했다. 이후 논문은 600회 넘게 인용되며 라운드업의 안전성을 뒷받침하는 주요 근거로 활용되었다.



    그런데 2017년, 글리포세이트 성분 때문에 악성 림프종양에 걸렸다고 주장하는 피해자들이 제기한 소송 과정에서 꼭꼭 숨었던 사실이 폭로됐다. 몬샌토의 내부 문서가 공개되면서 문제의 논문을 언급한 몬샌토 임직원들의 이메일이 세상에 드러났다.



    ‘사이언스’와 ‘리트랙션 워치’의 보도에 따르면, 몬샌토는 2015년 국제암연구소(IARC)가 글리포세이트를 ‘발암 가능 물질’로 규정하자 이에 대응해, 학계 연구자들이 자사에 유리한 논문을 발표하게 하는 전략을 논의했다. 한 직원은 이메일에서 “우리가 쓰고 그들이 편집하고 서명만 하는 방식”으로 논문을 발표하자고 제안하면서 이렇게 덧붙였다. “2000년 논문도 그 방식으로 처리했잖아.”



    대필 의혹을 일으키는 강력한 증거가 나왔지만 논문은 철회되지 않았다. 그래도 문제 제기는 끈질기게 이어졌다. 과학사학자 나오미 오레스케스 교수 등은 지난 9월 대필 의혹 논문이 인용 횟수 상위 0.1%에 속하는 권위를 유지해온 실태를 추적해 논문으로 발표했다. 문제의 논문은 학계뿐 아니라 정책 문서와 위키피디아에서도 영향력을 발휘했다.



    늦게나마 논문을 실은 학술지가 움직였다. 논문을 꼼꼼히 살핀 학술지 편집위원회는 몬샌토의 미공개 연구 결과에만 의지해 결론을 내리고 저자 표시와 논문 작성 과정이 투명하지 않다는 점을 들어 결국 논문 철회 결정을 내렸다.



    25년은 너무 긴 시간이었다. 그 사이에 2015년 국제암연구소의 발암 가능 물질 지정, 2018년 미국 법원의 피해 배상 판결이 있었지만, 논문은 규제 정책에서 과학적 근거의 하나로, 학계에서 권위 있는 참고문헌으로, 여러 논쟁에서 기업의 방패막이로 활용되어왔다.



    이번 사건은 과학의 자정 능력을 보여준 사례이다. 끈질긴 관심과 문서 공개, 연구자들의 검증이 결국 부당한 논문의 퇴출을 이끌어냈다. 하지만 2017년 폭로 이후에도 그 과정이 왜 이리 더뎠는가 하는 물음을 남겼다.



    또한 이 사건은 자본력을 가진 기업이 어떻게 과학 논문 발표를 통해 과학 지식을 통제하려 했는지를 보여주는 사례이다. 기업이 과학 증거를 만들어내고, 다시 그 증거가 기업 규제 정책을 좌우하는 나쁜 고리를 끊는 일은 결코 쉽지 않다. 하지만 비판적 질문은 계속 던져야 한다. 위해성 평가 연구는 누가 지원하는가, 저자의 이해관계는 어떠한가, 반대 연구는 뭐라 말하는가. 비판적 질문은 과학 불신을 조장하는 게 아니라 오히려 과학 신뢰를 강화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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