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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지털투데이 이호정 기자] 한때 소수 마니아들의 전유물로 치부되던 서브컬처가 국내 게임 시장의 핵심 승부처로 떠올랐다.
지난 5일부터 사흘간 열린 'AGF 2025'에 역대 최대 규모인 10만여 명의 인파가 몰리며 서브컬처의 산업적 위상이 입증됐기 때문이다. 이에 따라 내년 국내 게임사들은 다중접속역할수행게임(MMORPG) 등으로 고착화된 포트폴리오를 탈피하고, 충성도 높은 서브컬처 팬덤을 확보하기 위한 치열한 각축전을 벌일 전망이다.
넥슨 '아주르 프로밀리아' [사진: 넥슨]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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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형사부터 중견사까지…쏟아지는 '미소녀' 신작 라인업
17일 업계에 따르면 엔씨소프트, 넥슨, 넷마블 등 이른바 '3N'을 필두로 크래프톤, 스마일게이트 등 주요 게임사들이 2026년 출시를 목표로 서브컬처 신작 개발에 박차를 가하고 있다.
가장 눈에 띄는 변화는 엔씨소프트다. '리니지'로 대표되는 MMORPG 명가 이미지가 강했던 엔씨소프트는 내년 상반기 자사의 첫 서브컬처 게임 '리밋 제로 브레이커스'를 글로벌 출시한다.
빅게임스튜디오가 개발한 이 작품은 애니메이션 스타일의 액션 RPG로, 최근 도쿄게임쇼와 AGF 등 주요 행사에서 시연 대기 시간이 1시간을 넘길 정도로 주목받았다.
서브컬처 강자로 자리매김한 넥슨은 '블루 아카이브'를 성공시킨 김용하 PD 사단을 주축으로 'IO본부'를 신설하고, 신작 '프로젝트 RX' 개발에 집중하고 있다.
여기에 지난 15일에는 '벽람항로'로 글로벌 흥행을 기록한 중국 만쥬게임즈의 신작 '아주르 프로밀리아' 국내 퍼블리싱 계약을 체결했다. 판타지 월드 RPG인 이 게임은 서브컬처 감성을 극대화한 아트워크와 방대한 세계관이 특징이다.
넷마블 역시 2013년 인기작 '몬스터 길들이기'의 후속작인 '몬길: 스타 다이브'를 통해 시장 공략에 나선다. 언리얼 엔진5를 기반으로 한 이 게임은 3인 파티 태그 액션과 몬스터 포획 시스템을 차별점으로 내세웠다.
크래프톤은 '아니메(일본 애니메이션)' 스타일의 수집형 RPG '프로젝트 AA'를 개발 중이며, 이를 위해 전담 조직인 '아테나 디비전'의 법인 분사까지 추진하고 있다.
스마일게이트는 '승리의 여신: 니케'의 아트 디렉터로 유명한 '혈라(김형섭)'가 소속된 컨트롤나인의 신작 '미래시: 보이지 않는 미래'를 퍼블리싱한다.
이 밖에도 시프트업은 텐센트와 손잡고 '프로젝트 스피릿'을 준비 중이며, NHN은 '어비스디아', 웹젠은 '게이트 오브 게이츠' 등으로 라인업을 구축했다.
지난 5일 국내 최대 애니메이션·게임 축제 'AGF 2025'에서 '승리의 여신: 니케' 굿즈숍에 대기 중인 관람객들 [사진: 이호정 기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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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서브컬처인가… '팬덤'이 만드는 확실한 '캐시카우'
국내 게임사들이 앞다퉈 서브컬처 장르에 뛰어드는 배경에는 폭발적인 시장 성장성과 이용자들의 높은 충성도가 있다.
시장조사기관 마켓리서치 인텔렉트에 따르면, 글로벌 서브컬처 시장 규모는 2023년 약 209억달러(약 30조원)에서 2031년 485억달러(약 71조원)까지 성장할 것으로 전망된다. 실제로 2018년부터 2023년까지 서브컬처 게임 시장의 연평균 성장률은 16.7%로, 전체 게임 시장 성장률(5.2%)을 3배 이상 상회했다.
서브컬처 게임은 캐릭터와의 교감을 통해 형성된 팬덤이 곧 매출로 직결되는 구조를 가진다. 이용자들은 단순히 게임을 즐기는 것을 넘어 캐릭터 상품(굿즈), 오프라인 행사 등에 아낌없이 지갑을 여는 경향이 있다.
넥슨의 '블루 아카이브'와 시프트업의 '니케'가 수년간 글로벌 차트 상위권을 유지하며 각각 수억 달러에서 10억 달러 이상의 매출을 기록, '조 단위' 흥행에 성공한 것이 이를 방증한다.
아울러 서브컬처 장르는 지적재산권(IP)의 생명력, 즉 라이프사이클이 타 장르 대비 긴 편이다.
MMORPG가 경쟁 과열로 이용자 피로도가 높아진 반면 서브컬처 게임은 스토리 업데이트와 신규 캐릭터 출시만으로도 '역주행'이 빈번하게 일어난다. 이는 안정적인 '캐시카우' 확보가 시급한 게임사들에게 매력적인 선택지가 될 수밖에 없다.
◆'레드오션' 경고등… "그림만 예쁜 껍데기는 필패"
그러나 전문가들은 서브컬처 시장 진입이 곧 성공을 보장하는 '블루오션'은 아니라고 입을 모은다. 대형 게임사들의 잇따른 진출과 중국산 게임들의 공세로 시장은 이미 '레드오션'화 되고 있다는 지적이다.
실제로 중국 서브컬처 시장 매출이 감소하는 등 성장 둔화 신호가 감지되는 가운데, 국내 시장에서도 단순한 '애니메이션풍 미소녀' 캐릭터만으로는 경쟁력을 확보하기 어려워졌다.
과거와 달리 유려한 일러스트는 기본 소양일 뿐 이용자를 몰입시킬 수 있는 세계관과 서사, 그리고 전략적 전투 시스템 등 내실 있는 차별화가 필수적이다.
특히 서브컬처 게이머들은 개발진이 해당 문화를 얼마나 진정성 있게 이해하고 있는지에 매우 민감하다.
수익모델(BM) 설계나 운영 방식에서 '돈벌이 수단'으로 접근한다는 인상을 줄 경우 팬덤은 순식간에 돌아설 수 있다. 따라서 대형 게임사 특유의 경직된 의사결정 구조를 탈피하고 서브컬처 감성을 유지할 수 있는 개발 및 운영의 독립성을 보장하는 것이 성공의 관건이 될 것으로 보인다.
한 업계 관계자는 "내년은 그야말로 국산 서브컬처 게임들의 춘추전국시대가 될 것"이라며 "이제는 단순히 예쁜 캐릭터를 내세우는 것을 넘어 이용자와의 정서적 유대감을 얼마나 깊이 있게 쌓아갈 수 있느냐가 승패를 가를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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