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재 대상 석유 운반선 봉쇄 명령 ‘선제적 자위권 행사’ 명분 해석
마두로 정부 “트럼프, 약탈 목적 국제법 어겨…유엔에 문제 제기”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베네수엘라 정권을 외국테러조직(FTO)으로 지정했다. 니콜라스 마두로 베네수엘라 대통령 개인뿐만 아니라 정부 전체를 마약 밀매에 가담한 조직으로 보겠다는 뜻으로 풀이된다. 국가를 운영하는 특정 정권을 외국테러조직으로 지정한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트럼프 대통령은 16일(현지시간) 트루스소셜에 “우리(미국) 자산 절도와 테러, 마약 밀수, 인신매매 등 여러 이유로 베네수엘라 정권을 외국테러조직으로 지정했다”고 밝혔다.
앞서 트럼프 행정부는 마두로 대통령을 마약 카르텔의 우두머리라고 지목하며 5000만달러(약 740억원)의 체포 현상금을 내걸었다. 이번 조치로 마두로 행정부 관료 전체를 테러 조직원으로 간주하려는 것 아니냐는 해석이 나온다. 그간 미국은 이슬람 극단주의 조직이나 반군 등 비국가 단위의 조직만을 외국테러조직으로 지정했으며 이란, 북한, 시리아, 쿠바 등 적대국은 테러지원국(SST)으로 별도 분류해왔다.
이 같은 움직임을 두고 향후 대베네수엘라 군사작전을 위한 포석이 될 수 있다는 우려도 커진다. 미국은 과거 알카에다나 예멘 후티 반군 등 외국테러조직을 상대로 ‘선제적 자위권 행사’를 명분으로 군사 공격에 나선 바 있다.
트럼프 대통령은 “베네수엘라는 남미 역사상 최대 규모의 함대에 완전히 포위됐다”며 “그 규모는 더 커질 것이며 그들이 받게 될 충격은 지금까지 경험하지 못한 수준일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마두로 정권이 석유 판매 자금을 마약 밀매와 살인, 인신매매, 납치 등에 사용했다고 주장하며 “베네수엘라를 오가는 모든 제재 대상 유조선에 대한 전면적이고 완전한 봉쇄를 명령한다”고 밝혔다.
트럼프 대통령이 베네수엘라산 석유를 ‘미국으로부터 훔친 것’이라고 표현한 것은 1970년대 우고 차베스 당시 베네수엘라 정권이 엑손모빌, 셰브런 등 미 기업 유전 시설을 몰수한 사건을 지목한 것으로 해석된다. 차베스 정권은 당시 주권을 회복하겠다며 민간 유전 시설을 국영 석유회사(PDVSA)로 편입시켰다.
트럼프 대통령은 마두로 정권을 지탱하는 자금줄인 원유 문제를 지속 언급하며 마두로 대통령을 압박하고 있다. 미군은 지난 10일 베네수엘라 연안에서 제재 대상 대형 유조선을 나포했다. 이 유조선은 가이아나 국기를 달고 있었지만 미등록 선박이었다. 다만 트럼프 대통령에게는 공해나 다른 나라 영해에서 유조선 통행을 통제할 권한이 없다.
전날 트럼프 정부가 마약류인 펜타닐을 대량살상무기(WMD)로 지정한 데 이어 이번 조치까지 발표하며 양국 간 군사적 긴장감은 한층 고조됐다. 미국은 외국테러조직의 WMD 사용 역시 ‘선제적 자위권 행사’의 명분으로 삼아왔기 때문이다.
베네수엘라 정부는 이날 성명에서 “미국 대통령은 우리 국부를 약탈하려는 목적으로 지극히 비이성적인 방식으로 해상 봉쇄를 하려고 한다”며 자유무역과 항행의 자유 등 국제법을 어긴 이 사안을 유엔에 문제 제기하겠다고 밝혔다.
미국은 마약 단속을 명분으로 지난 9월부터 카리브해와 태평양에서 민간 어선을 향한 공격을 이어가고 있다. 이로 인해 사망한 민간인은 최소 95명이다.
윤기은 기자 energyeun@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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