즉, 서민들 지갑 걱정이 지구 온난화 걱정을 압도하고 있다. 지난달 필자가 이 지면에서 이야기한 빌 게이츠의 태도 변화 역시 기후 변화 정책을 경제나 복지 정책보다 앞세울 필요는 없다는 미국 사회의 분위기 변화를 보여주고 있다.
도널드 트럼프 미 대통령은 진작부터 기후 위기가 ‘사기(hoax)’라고 말해왔다. 그가 유능한 과학자라서가 아니라 유능한 대중 정치인이기 때문이다. 트럼프는 늘 대중의 속마음을 대변한다. 지난달 발표된 트럼프 백악관의 국가안보전략(NSS)에도 이런 내용을 명확히 담았다. “‘기후변화’와 ‘넷제로’라는 재앙적인 이데올로기는 유럽을 해치고, 미국을 위협하고, 우리의 적들에게 도움을 주기 때문에 우리는 이를 거부한다.”
이런 분위기에서 미국 정부는 올가을부터 전기차 판매 보조금 지급을 중단했다. 반대로 휘발유 가격은 낮추려 애쓴다. 포드차도 대형 전기차 개발을 중단한다고 월요일 발표했다. 전기차 투자금 약 30조원을 회계 손실로 처리하고 다시 내연기관과 하이브리드 자동차 개발에 집중하겠다 한다.
대서양 건너 유럽에서도 기후 정책은 이번 주 한 발 후퇴했다. 유럽연합(EU)은 당초 2035년까지 내연기관 차량의 판매를 전면 금지하고 친환경 차량으로 100% 전환한다는 목표를 갖고 있었다. 그런데 그 목표를 ‘2035년까지 배기가스 90% 감축’으로 낮췄다. 또 내연기관 차량도 ‘계속 역할을 할 것’이라고 덧붙였다.
90% 감축도 어려운 목표이나, 한 번 낮춘 기준은 언제든 또 낮출 수 있는 법이다. 글로벌 기후 정책의 선도자로 자리매김하려 했던 EU가 체면을 구기면서 방향을 수정한 배경에는 역시 경제 문제가 있다. 전기차 전환 속도가 기대 이하인 데다, 괜히 서두르다가 유럽의 자동차 산업 전체가 흔들릴 수 있다는 위기감이 컸다. 친환경차 분야의 압도적 강자는 중국이다.
우리나라는 어떨까. 친구, 가족, 지인들과 대화할 때 기후 위기가 화제에 오르는 일은 거의 없다. 진심으로 걱정하는 사람을 본 적도 기억에 없다. 우리도 기후 위기보다 경제와 물가 걱정을 훨씬 많이 한다. 그런데 정부 차원에선 다르다. 지난 10월부터 환경부가 산업부의 에너지 기능을 가져오며 부처 이름을 기후에너지환경부로 바꾸었다. 상징적으로 에너지나 환경보다 ‘기후’를 앞세운 것이다. 내년 전기차 구매 보조금 예산도 올해보다 늘렸다.
최근 미국 트럼프 정부는 에너지부에 국가 AI 프로젝트 ‘제네시스 미션’을 맡겼다. 비슷한 시기 한국은 기후환경 부처에 에너지 정책을 맡겼다. 두 정부의 다른 선택은 수년 후 어떤 다른 결과를 가져올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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