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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2.19 (금)

    H200은 되고 블랙웰은 통제…미국의 '중국 AI 고사' 이중 전략 [AI시대, 한국책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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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8> 미국의 'AI 안보화' 전략

    편집자주

    AI 기술력이 국가 안보를 지키는 핵심 경쟁력이 됐습니다. 국내 최고 전문가들이 AI시대 한국의 안보 전략을 다양한 관점에서 조명합니다.

    H200 수출 승인, 미국의 속내
    中 기술력 막으려는 전략 계산
    첨단물품 교역, 안보논리 필요


    한국일보

    그래픽=이지원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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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트럼프 2기 정부는 2025년 1월 출범하자마자 중국 딥시크(DeepSeek) R1 모델 등장에 충격을 받는다. 이어, 딥시크 중국 AI회사와 중국인민해방군과의 연결이 트럼프 대통령에게 보고되고, 트럼프 대통령은 4월 고대역폭 메모리(HBM)가 탑재된 'H20'이라는 AI 가속기의 수출 통제를 지시한다.

    미국의 AI 반도체 중국 수출통제는 처음이 아니었다. 2022년엔 엔비디아의 A100, H100을 통제했다. 해당 규제의 틈을 노리고 엔비디아가 A800, H800을 개발하자, 바이든 정부는 2023년 추가 조치를 취해 중국의 AI 기술 추격 속도를 늦추고자 했다. 이에 엔비디아는 2023년 H20을 개발하여 중국에 수출하기 시작했다. 그러자 2025년 4월 초 미국 정부가 H20에 대한 추가 제재를 검토 중이라는 보도가 나온다. 정부 규제와 신제품을 통한 기업의 우회는 만화 '톰과 제리' 같은 추격전을 방불케 했다.

    그런데 미국 정부가 돌연 태세전환에 나섰다. H20에 대한 통제에서 4월 말 탈규제로 방향을 바꿨다. 5월부터 사실상 완화 기조를 취하기 시작하더니, 그 이후 유지되고 있다. '웬 변덕인가?'라고 물을 수 있겠지만, 고도의 정치적·경제적 그리고 국가안보적 계산이 깔려 있다. 혹자는 통제 강화의 이유로 딥시크 충격 여파, 중국 인민군의 H20 사용, 공화당 강경파의 대중 강경책 요구 등을 꼽는다. 반면 미국 정부의 통제 완화에 대해서는 엔비디아나 미국 반도체산업협회의 반발과 로비, 트럼프의 무역 관세 중시와 AI 반도체의 ‘협상 레버리지’화 등을 그 배경으로 설명한다.

    그러나 필자는 글로벌 패권 경쟁의 승패를 좌우할 첨단 기술의 결정체인 AI 칩에 대한 정책이 개별 정치인이나 압력 단체의 이익만으로 결정된 것이 아니라고 본다. 오히려 미국의 H20 제한 완화는 중국의 화웨이 반도체 '어센드(Ascend) 910C'의 등장 때문일 가능성이 크다. 910C는 총처리 성능(TPP) 기준으로 보아 H20과 동등하거나 보다 뛰어나기 때문이다.

    실제로 중국 정부는 기술자립에 박차를 가하기 위해 H20의 사용을 금지하기 시작했다. 그러자 12월 8일에는 미국 정부가 H20보다 약 6배 더 강력한 성능을 지닌 H200칩의 대중 수출을 허용한다. 이 칩은 910C보다 약 1.3배 우위의 성능이다. 그러나 여전히 최첨단 블랙웰이나 루빈 시리즈는 수출이 금지되고 있다. 상대적으로 낡은 기술을 수출하여 중국의 국내 혁신 인센티브를 줄이면서, 동시에 첨단 영역에서는 미국의 지배력을 유지하려는 목적을 이루기 위함이다.

    이처럼 첨단 기술에 대한 국가 전략·정책은 고도의 기술적 첩보를 토대로 이뤄진다. 미국에서는 전략물자 수출과 관련, 상반된 입장이 존재한다. 수출로 창출한 수익을 새로운 연구개발(R&D) 투자로 환원하여 경쟁력을 유지하는 방법과 엄격한 수출 통제로 기술 격차를 유지하는 방법이다. 같은 목표지만 서로 다른 방식을 추구하는 것인데, 요즘 기조는 '통제 매파'로 기울고 있다.

    한국은 기술적 복잡성뿐 아니라 미국의 경제적 강압의 위력과 한계를 동시에 인식하며, 최선의 전략을 짜야 한다. 그러려면 우선 전략물자 통제 관련 정부 부처는 지속적으로 주의 깊게 미국의 대중 정책 모니터링을 하며 미국 정책 써클에서의 움직임에 선제적으로 대응하고, 지원책을 기민하게 제공해야 한다. 기술의 발전 속도가 빠를수록 규제의 변화 속도도 가속화되고 있기 때문이다.

    둘째, 관련 부처를 중심으로 '국가안보와 사이버보안에 기반한' 한국 반도체 수출 논리를 개발하고 근거를 확보해야 한다. 한국이 중국에 AI 반도체를 수출하려면, 한국은 물론이고 동맹국 미국의 국가안보에도 지장이 되지 않는다는 신뢰를 확보할 필요가 있다. 동시에, 중국의 보안적 우려도 대처할 수 있어야 한다. 중국의 경우 이미 H20 AI 반도체에 대한 위치 추적 및 원격 차단의 가능성과 같은 보안 우려를 제기한 바 있다.

    한국이 지속적으로 첨단 기술을 수출하려면 경제적 이유뿐 아니라, 우리 국민과 동맹국을 설득시킬 국가안보적 근거를 마련해야 한다. 기술 교역은 더 이상 경제적 이유만으로 정당화될 수 없다. 설득력 있는 국가안보적 근거를 기반으로 실익을 추구해 나가야 한다.

    한국일보

    유인태 단국대 정치외교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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