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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2.19 (금)

    [우분투칼럼] 아프리카 알고보면⑿ 운명을 가르는 보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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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은별 박사

    연합뉴스

    이은별 박사
    [이은별 제공. 재판매 및 DB 금지]



    [※ 편집자 주 = 연합뉴스 글로벌문화교류단이 국내 주요대학 아프리카 연구기관 등과 손잡고 '우분투 칼럼'을 게재합니다. 우분투 칼럼에는 인류 고향이자 '기회의 땅'인 아프리카를 오랜 기간 연구해온 여러 교수와 전문가가 참여합니다. 아프리카를 다양한 시선으로 바라보고 분석하는 우분투 칼럼에 독자 여러분의 많은 관심을 기대합니다. 우분투는 '당신이 있어 내가 있다'는 뜻의 아프리카 반투어로, 공동체 정신과 인간애를 나타냅니다.]

    다이아몬드, 금, 은. 이름만으로도 반짝이는 이 광물들은, 아프리카 어느 곳에서, 누구에 의해 어떻게 다루어지느냐에 따라 한 국가가 걸어갈 길을 바꾸기도 한다. 그중에서도 다이아몬드는 세실 로즈(Cecil Rhodes)가 설립한 드비어스(De Beers)의 광고 문구인 '다이아몬드는 영원하다'(A Diamond is Forever)로 남아프리카공화국 킴벌리 광산에서 벌어진 아프리카 노동력과 천연자원 착취의 역사를 교묘하게 가려왔다. 이후 드비어스는 전 세계 다이아몬드 유통을 사실상 독점해 가격을 통제했고, 거대 자본에 의해 굳어진 '자원의 저주'는 아프리카 대륙의 숙명처럼 여겨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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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프리카 보츠와나 지도
    [제작 양진규]



    이러한 흐름 속에서 그 운명을 비극으로 끝내지 않으려 한 나라가 있다. 바로 1966년 영국 보호령 베추아날란드(The Bechuanaland)에서 독립한 보츠와나다. 독립 당시 세계 최빈국 중 하나였던 보츠와나는 독립 이듬해 대규모 다이아몬드 광산을 발견하자 거대 기업인 드비어스에 주도권을 뺏기지 않았다. 대신 50 대 50의 합작 투자 회사인 데브스와나(Debswana)를 설립해 채굴과 유통 과정에 직접 참여했다. 그리고 세금과 배당을 통해 확보한 막대한 수익은 국가 재정의 핵심 축으로 성장했다. 광물 자원의 이익이 일부 기득권의 잇속이 아니라 국민 전체의 교육·보건·인프라 개발에 재투자되도록 국가 주도의 자원 관리 시스템을 구축했다. 이는 사하라 이남 아프리카에서 비교적 안정적인 복지와 민주주의를 갖춘 국가로 성장하는 토대가 됐고, 지금도 모범 사례로 자주 거론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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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보츠와나 다이아몬드 광산
    [AP 연합뉴스 자료사진. 재판매 및 DB 금지]



    하지만 보츠와나 정부가 그렇게 공들인 다이아몬드의 가치도 변화를 겪고 있다. 2020년대 들어 실험실에서 제작한 '랩그로운'(Lab-grown) 다이아몬드가 빠르게 확산했다. 이에 따라 영원할 것 같던 천연 다이아몬드 가격은 2022년 이후 큰 폭으로 떨어졌다. 여기에 가치 소비를 중시하는 엠지(MZ) 세대를 중심으로 비교적 저렴한 합성 다이아몬드가 예물 시장까지 파고들면서 다이아몬드의 상징성도 흔들리고 있다. 최근 보츠와나는 드비어스와 재협상을 통해 다이아몬드 세공 거점을 런던에서 수도 가보로네로 이전하는 등 산업 재편에 나섰다. 하지만 아무리 견고한 거버넌스를 갖춘 보츠와나라 하더라도 원자재 가격 급변이라는 세계 다이아몬드 시장의 흐름을 거스르기는 쉽지 않은 상황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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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랩그로운 다이아몬드
    [로이드 제공. 재판매 및 DB 금지




    반면 국경을 맞대고 있는 이웃 짐바브웨의 상황은 사뭇 다르다. 금, 백금, 크롬, 리튬, 니켈 등 40여 종의 광물을 보유한 대표적인 자원 부국인 짐바브웨는 최근 몇 년간 천연 다이아몬드 가격이 하락하는 와중에도 국제 금값 급등의 수혜를 입었다. 그러나 그 이면에는 불편한 진실이 있다. 2023년 알자지라(Al Jazeera)의 '골드 마피아' 탐사보도에서 드러났듯, 금은 정권 차원의 외화 조달과 자금 세탁의 핵심 통로로 활용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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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프리카 짐바브웨 지도
    [제작 양진규]



    고위 정치인, 기업인, 그리고 종교 지도자가 얽힌 네트워크를 통해 짐바브웨산 금괴가 해외로 유출되고, 제재를 우회해 달러로 세탁되는 과정은 짐바브웨 국민에게 큰 충격을 안겼다. 주요 광물의 이익이 국민이 아닌 소수 권력층에 집중되면서, 만성적인 정치 불안과 경제적 양극화를 더욱 심화했기 때문이다. 거버넌스가 무너진 공간에서 천연자원이 어떻게 부패의 연료가 되는지를 보여주는 사례라 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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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패트릭 마브로스 하라레 본점의 크리스마스 장식(2023년 11월 16일 필자 촬영)
    [이은별 제공. 재판매 및 DB 금지]



    이처럼 '국가 주도의 자원 경제'가 양국에서 극명히 달라지는 동안, 금에 비해 상대적으로 저평가되는 은(silver)에 새 생명을 불어넣은 짐바브웨인이 있다. 바로 주얼리 브랜드 창립자인 '패트릭 마브로스'(Patrick Mavros)다. 1978년 아내를 위해 만든 귀걸이 한 쌍에서 출발한 그의 작업은 은을 주력 소재로 삼은 주얼리 제작으로 이어졌다. 현재는 수도 하라레 시내에서 약 25㎞ 떨어진 움윔시 협곡(Umwimsi Valley)에 본점과 세공 스튜디오를 두고 있다. 2004년 이후에는 영국 런던을 시작으로 케냐 나이로비, 모리셔스, 나미비아 빈트후크, 그리고 남아공 케이프타운까지 해외 지점을 확장하며 하이엔드 주얼리 브랜드로 성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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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패트릭 마브로스 하라레 본점의 은으로 만든 촛대와 코끼리 장식
    [이은별 제공. 재판매 및 DB 금지]



    일반적으로 금보다 상대적으로 낮은 가치를 지닌 광물로 인식되는 은도, 어떻게 가공하고 어떤 의미를 부여하느냐에 따라 전혀 다른 가격과 위상을 갖게 된다. 패트릭 마브로스 본점을 한 번 들러보고 나면 '아프리카산 은 장신구는 저렴할 것'이라는 편견이 얼마나 무지한지 실감하게 된다. 단순한 패턴의 은귀걸이 가격이 미화 70달러(약 10만3천원)에서 시작한다. 정교한 수공예 디자인의 목걸이와 팔찌는 수백 달러를 훌쩍 넘는다. 짐바브웨산 은의 희소성에 장인의 손길이 더해져 소재 이상의 가치를 만들어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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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패트릭 마브로스 하라레 본점에 판매 중인 귀걸이(2024년 2월 2일 필자 촬영)
    [이은별 제공. 재판매 및 DB 금지]



    이 브랜드가 국제적 주목을 받은 결정적 계기는 케이트 미들턴(Kate Middleton) 영국 왕세자빈이 공식 석상에서 패트릭 마브로스 귀걸이를 착용한 순간이었다. 특히 세계적인 자연 다큐멘터리 제작자이자 환경 보존 활동가인 데이비드 애튼버러 경(Sir David Attenborough)을 만나는 자리에 멸종위기종인 천산갑(pangolin) 디자인 귀걸이를 선택한 것은, 야생동물 보호에 대한 상징적 메시지로 해석된다. 패트릭 마브로스 역시 천산갑을 모티브로 한 시리즈를 통해 천산갑 보호 단체인 티키 하이우드 재단에 기부하며, 실제 구조와 재활 활동에 사회적 책임을 다하고 있다. 이처럼 금에 비해 저평가되어 왔던 은에 짐바브웨 장인의 세공 기술과 자연 보호라는 서사가 더해지며 '은'은 더 반짝이게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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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멸종위기종인 천산갑(pangolin) 짐바브웨 야생동물 보호소
    [이은별 제공. 재판매 및 DB 금지]



    이처럼 보츠와나의 다이아몬드, 짐바브웨의 금과 은을 보면, 국가의 운명을 가르는 것은 결국 보석 그 자체가 아니라 이를 둘러싼 거버넌스와 가치 부여라는 사실을 알 수 있다. 투명한 정부 시스템으로 다이아몬드를 관리해 온 보츠와나의 노력, 소수 집단의 사금고로 전락한 금이 다수의 삶을 흔들었던 짐바브웨, 그리고 은에 아프리카 고유의 스토리텔링과 디자인, 자연 보호라는 무형의 가치를 담아내며 또 다른 가능성을 선보인 사례 등이 이를 웅변한다. 다시 말해 아프리카의 운명은 채굴할 수 있는 광물에 달린 것이 아니라, 그것을 선용하고 창조해내는 작업에 달린 것이다.

    아프리카 알고보면, '메이드 인 아프리카'(Made in Africa) 주얼리 브랜드가 있다.

    ※외부 필진 기고는 연합뉴스의 편집 방향과 다를 수 있습니다.



    현 성균관대 컬처앤테크놀로지융합전공 초빙교수, 고려대 언론학 박사(학위논문 '튀니지의 한류 팬덤 연구'), 한국외대 미디어외교센터 전임 연구원, 경인여대 교양교육센터 강사 역임. 에세이 '경계 밖의 아프리카 바라보기, 이제는 마주보기' 외교부 장관상 수상, 저서 '시네 아프리카' 세종도서 선정 및 희관언론상 수상.

    eunbyully@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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