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경하 플랫폼유통부 기자 |
“이번에 유출된 정보는 지난 18개월간 발생한 다른 사고보다 범위가 줄어든 것입니다.”
'안녕하세요' 말밖에 못하는 외국인 임시 대표의 이 한마디에서 개인정보 유출 사태를 바라보는 쿠팡의 시선이 읽혔다. 사과는 했지만 중대성에는 선을 그었고, 시스템 개선 의지는 강조하면서 책임 의사는 모호했다.
사태는 한 달이 다 돼 가지만 파장은 오히려 커지고 있다. 대통령은 “무슨 팡인가”라며 제재 필요성을 언급했고, 국회는 국정조사까지 언급했다. 창사 이래 최대 리스크에 직면했다는 평가가 나온다.
진정성 있는 사과 대신 책임에 선을 긋는 차가운 대응이 사태를 키우고 있다. 스스로를 한국의 '혁신 아이콘'이라 자처하던 쿠팡은 어느새 이중적인 '검머외' 기업으로 전락했다.
최근 몇 년간 혁신 플랫폼 민낯을 여러 차례 목격했다. 국내 최대 플랫폼의 한 전무는 공개석상에서도 앉을 때 부하 직원이 의자를 빼줬다. 또 다른 플랫폼의 재무 책임자는 “벌금이 더 싸다”며 사내 어린이집 조성을 무마했다.
공통점은 권위 의식과 효율성이다. 창업자와 경영진의 말 한마디, 행동 하나가 곧 조직의 질서가 되고 기업 안팎에서 매겨지는 숫자만이 모든 판단의 기준이 된다.
사태의 본질은 기술적 결함이 아니라 허술한 보안 의식과 미숙한 기업 문화에 있다. 소비자들이 궁금한 것은 '털린 내 정보'의 법적 의미나 거래 가치가 아니다. 누가, 언제, 어디까지 접근했는지와 쿠팡은 어떤 책임을 질 것인가다. 빠른 사태 파악과 재발 방지 대책, 합당한 보상안, 진정성 있는 사과가 선행돼야 한다.
한 해 반도체 수출로만 수십조원을 올리는 글로벌 기업 총수는 정보 유출 사태 발생 19일 만에 고개를 숙였다. '로켓 신화'를 일궈낸 쿠팡 창업자의 책임 있는 기업가 정신이 필요한 시점이다.
민경하 기자 maxkh@et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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