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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2.22 (월)

    총성에 멈춰 선 ‘지성의 전당’… 브라운·MIT 연쇄 총격·살인에 하버드 ‘캠퍼스 봉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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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미국 아이비리그를 대표하는 브라운대와 세계적인 공학 명문 매사추세츠공대(MIT)에서 며칠 사이 총격·살인 사건이 잇따르면서, 동부 명문 대학가가 연말 학사 일정까지 중단하는 초유의 사태를 맞았다. 범인이 특정되지 않은 채 수사가 길어지자 하버드와 MIT는 캠퍼스 출입을 엄격히 통제하기 시작했다. 브라운대는 기말고사를 전면 취소하고 학생들을 귀가 조치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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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7일 미국 브라운대학교 캠퍼스에 캠퍼스 총격 용의자에 대한 정보를 요청하는 포스터가 붙어있다.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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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7일(현지시각) 보스턴글로브와 AP 등 현지 외신을 종합하면 지난 13일 브라운대 캠퍼스 내 배러스 앤드 홀리 건물에서 발생한 총격 사건 용의자는 사건 발생 후 5일이 지난 이날까지 잡히지 않았다. 수사 당국은 사건 현장 인근 CCTV 영상을 분석해 용의자 동선을 추적 중이지만, 신원 파악에 난항을 겪고 있다.

    프로비던스 경찰은 이날 용의자와 가까운 거리에 있었던 것으로 추정되는 인물 사진을 추가로 공개했다. 공개된 영상 속 용의자는 짙은 색 겨울 모자와 재킷, 검은 바지를 입고 마스크로 얼굴을 가린 채 주택가 초인종 카메라 앞을 서성이는 모습이다. 오스카 페레즈 주니어 프로비던스 경찰서장은 “테라바이트(TB) 분량 비디오를 분석 중”이라며 “시민 제보가 절실하다”고 했다. 당국은 용의자 체포에 결정적 단서를 제공하는 제보자에게 현상금 5만 달러(약 7300만 원)를 지급하겠다고 밝혔다.

    브라운대 사건 충격이 가라앉기도 전인 15일 밤, 인근 매사추세츠주(州) 브루클라인에서는 MIT 소속 누노 로레이로 교수가 자택에서 총에 맞아 숨지는 사건이 발생했다. 로레이로 교수는 플라즈마 물리학 및 핵융합 분야 권위자로, MIT 플라즈마 과학 및 퓨전 센터(PSFC)를 이끌던 인물이다. 샐리 콘블루스 MIT 총장은 성명에서 “충격적인 상실감을 느낀다”며 애도했다. 경찰은 이 사건 용의자 역시 특정하지 못했다. 연방수사국(FBI)은 두 사건 사이 직접적인 연관성은 확인되지 않았다고 선을 그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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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피살된 매사추세츠 공과대학(MIT) 누노 교수 자택 밖에 촛불을 들고 모인 군중들.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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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일반적으로 미국에서 일어나는 대형 총기 난사 사건 범인은 현장에서 사살되거나 스스로 목숨을 끊는 경우가 많다. 2023년 FBI 총기 난사 사건 통계에 따르면 인구 밀집 지역에서 총기 난사를 한 범인 가운데 25%는 경찰에 사살되고 14%는 자살했다. 나머지 61%는 현장에서 체포됐다. 브라운대 사건처럼 현장에서 상황이 종료되지 않는 경우는 극히 드물다.

    범인이 잡히지 않은 미제(未濟) 상태가 이어자 공포는 미 동부 대학가 전체로 번졌다. 뉴욕타임스(NYT)는 “주요 총격 사건에서 범인이 도주해 며칠간 잡히지 않는 것은 드문 일”이라며 “과거 보스턴 마라톤 테러 당시 범인 도주가 길어지자 이 과정에서 경찰관이 추가로 희생되기도 했다”고 언급했다. 전문가들은 무차별 총격을 가한 범인이 살아있고, 어디에 있는지 모른다는 사실 자체가 공포를 증폭시키는 핵심 기제라고 지적했다.

    불안감이 커지자 브라운대는 남은 기말고사를 전면 취소했다. 단순 휴강이 아니라 학사 일정 자체를 중단하고 학생들을 집으로 돌려보내는 조치를 내렸다. 미국 대학가에서도 극히 이례적인 대응이다. 통상적인 총기 위협 시 대학은 하루 이틀 휴교에 그치는 경우가 많다. 이번에는 ‘범인 미검거’라는 특수성이 작용했다. 만약 시험을 강행하다 추가 피해가 발생할 경우 대학이 짊어져야 할 법적 책임론이 제기될 수 있다는 우려도 반영된 결정으로 풀이된다.

    총격 사건 현장에서 80km 떨어진 하버드대는 캠퍼스 경계를 대폭 강화했다. 평소 일반인에게 개방하던 사이언스 센터 등 주요 건물은 출입 시 신분증 확인을 의무화했다. 예일대는 기말고사 기간에 맞춰 학내 보안 요원을 추가 배치했다. 일부 수업은 학생들 요청으로 온라인으로 전환됐다. 온라인 커뮤니티에서는 대학 측에 더 강력한 보안 대책을 요구하는 목소리가 높다. 데이비드 데밍 하버드대 학장은 “브라운대는 우리의 자매 캠퍼스”라며 “많은 구성원이 친구와 가족으로 연결돼 있다”고 연대감을 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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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4일 미국 브라운대학교에서 발생한 총기 난사 사건 다음 날, 기말고사가 취소되자 한 브라운 대학교 학생이 짐을 들고 캠퍼스를 떠나고 있다.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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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보안 강화에 따른 비용 증가와 연구 차질도 가시화되고 있다. MIT와 하버드 등 연구 중심 대학들은 기업 연구원이나 해외 방문 학자들과의 교류가 잦다. 이번 봉쇄 조치로 외부 연구 인력 출입이 통제되면서 고가 장비를 활용한 실험 일정이 연기되거나, 연말 예정됐던 학술 교류 프로그램이 축소되는 등 파장이 커지고 있다. 대학 보안 전문가들은 아이비리그급 대학이 출입 통제 시스템과 고해상도 CCTV, 24시간 보안 인력을 상시 운영하려면 연간 최소 1000만 달러(약 146억 원)가 넘는 추가 예산이 필요할 것으로 추산했다.

    연이어 벌어진 두 사건은 ‘캠퍼스 안은 안전하다’는 미국 명문대 신화에 균열을 냈다. 과거 아이비리그 캠퍼스 내에서도 총격 사건은 벌어졌지만, 이번 브라운대 참사처럼 무차별적으로 불특정 다수에게 총기를 난사한 전례는 없었다.

    전문가들은 “그동안 아이비리그 소속 대학들은 그간 개방성과 자유를 핵심 가치로 삼았지만, 이번처럼 총기 범죄가 상시화되면 캠퍼스 보안 강화와 출입 통제라는 상충된 선택을 강요받게 된다”며 “학문의 자유와 안전 사이에서 미국 고등교육이 직면한 구조적 딜레마를 압축적으로 드러낸 사례”라고 평가했다.

    유진우 기자(ojo@chosunbiz.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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