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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2.20 (토)

    [김교석의 남자의 물건] [27] 연말 사무실 스타는 루돌프 입은 부장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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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어글리 스웨터

    조선일보

    커다란 금색 리본이 달린 어글리 스웨터를 입은 라이언 레이놀즈의 모습@인스타그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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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중년 남성들이 크리스마스를 즐길 한 가지 방법을 소개한다. 직장에서 크리스마스 파티를 여는 거다. 연차가 쌓일수록 함께하는 동료의 소중함이 새삼 더 크게 다가온다. 거창한 트리는 없어도 좋다. 사무실을 조금 꾸미고, 각자 작은 선물을 준비하면 완성이다. ‘나 홀로 집에’의 케빈처럼 피자를 시켜서 이른 오후 맥주 파티를 열어도 나쁘지 않다. 여느 회식과 다른 포인트는 중후한 코트 안에 입고 온 어글리 스웨터(ugly sweater)다.

    어글리 스웨터란 본디 투박하고 촌스러운 스웨터를 뜻했다. 그런데 영화 ‘브리짓 존스의 일기’(2001)에서 배우 콜린 퍼스가 입고 나오면서 운명이 달라졌다. 밴쿠버의 한 자선 행사를 시작으로 크리스마스 파티 문화로 자리를 잡더니, 2011년부터 북미에서는 12월 셋째 주 금요일을 ‘어글리 스웨터 데이’로 정하고 즐긴다. 우리네 ‘빼빼로데이’와 비슷한 맥락이다.

    서구권의 많은 회사는 이날 사내 크리스마스 파티를 연다. 일부 항공사는 어글리 스웨터를 입은 승객에게 우선 탑승 혜택을 주는 이벤트를 벌이기도 한다. 덕분에 촌스러운 니트를 입은 펀드매니저들의 모습은 월가의 새로운 전통이 됐다. 옷으로 하는 이벤트에 랄프 로렌이 빠질 수 없다. 매년 완판을 기록하는 폴로 베어 시리즈로 이 흐름을 밀어주고, 마이크로소프트(MS)는 윈도우 배경 화면을 픽셀 아트로 구현한 2025년 버전 어글리 스웨터를 선보이며 이과 감성을 사로잡았다.

    조선일보

    누가 더 촌스러운가 12월 셋째 주 금요일인 _어글리 스웨터 데이_를 맞아 미국의 한 사무실 직원들이 기상천외한 디자인의 니트를 입고 있는 장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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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솔직히 어글리 스웨터가 남자만의 전유물은 아니다. 다만 남자 어른이 입었을 때 그 파격이 더욱 빛을 발한다. 평소 보지 못한 순수함, 장난스러운 소년의 모습이 불룩한 배 위로 드러나기 때문이다. 크리스마스 시즌을 즐기는 본질은 결국 소중한 사람과 함께한다는 데 있다. 사무실은 동고동락과 동상이몽이 하루에도 몇 번씩 오가는 공간이다. 각자 프로의 입장에서 펼치는 치열한 삶의 현장이다. 어글리 스웨터의 촌스러움과 터무니없는 가벼움은 경직된 공기를 한순간에 풀어지게 만드는 마법 같은 열쇠다.

    냉철한 피드백 대신 커다란 루돌프 코 니트를 입은 중년의 부장이 건네는 피자 한 조각. 정성 들여 준비한 ‘귀엽고 쓸모없는(Silly)’ 선물을 주고받으며 터지는 피식 웃음. 팍팍한 직장 생활을 버티는 온기이자 한 해를 잘 보냈음을 자축하는 부담 없는 감사다. 다만 경험해 보니, 파티에 참여하는 동료들의 반응은 기대와 다를 수 있다. 그 어색함과 난처함이 바로 어글리 스웨터가 필요한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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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교석 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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