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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2.20 (토)

    휠체어 체험이 문제인가요? [삶과 문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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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국일보

    안산 신길초등학교 박병찬 교사가 전화로 업무를 처리하고 있다. 사단법인 무의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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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휠체어를 타는 딸은 학교에서 하는 장애인식교육을 대체로 싫어했다. 무엇보다 '휠체어를 갖고 와서 타 보는 체험'을 매우 싫어했다. 휠체어에 탄 아이들이 "어 재밌는데?"라며 웃으며 단 몇 분 타 보는 것만으로는 휠체어러(휠체어를 타는 이들이 본인들을 부르는 말)인식 개선이 안 된다는 거다.

    내가 운영하는 사단법인 무의에서 올 가을 진행한 '모모탐사대' 활동 기획 단계에서도 딸이 내놓았던 이 말들이 마음에 걸렸다. 당시 모모탐사대는 학교 휠체어 접근성 정보를 모으기 위해 학생들에게 휠체어를 타고 장애인화장실 내부를 측정하는 활동을 기획하고 있었다.

    "휠체어로 시간 측정이요? 그럼요. 할 수 있죠. 수동휠체어, 전동휠체어도 다 빌려서 따로따로 해볼께요." 초등학교 담임을 맡고 있는 박병찬 선생님이 이렇게 말했을 때 물어보지 않을 수 없었다. "선생님. 진짜 괜찮을까요? 그냥 수박 겉핥기 체험이 될 수도 있다고 해서."

    "아뇨. 아이들에게 좋은 경험이 될 겁니다." 그는 17년차 초등 교사이자 그 스스로가 휠체어를 이용한다. 그의 말을 믿지 않을 수 없었다.

    리서치에 참여한 25명의 학생 중 몇 명을 학교에서 직접 만나봤다. 이 날 장애인화장실에는 공교롭게도 청소도구가 있었다. 아이들 둘이 낑낑대며 청소도구를 치웠다. 두 번째 리서치를 한 아이들에게 소감을 물었다. "휠체어를 타면 이렇게 힘들다는 걸 처음 알았어요." 익히 예상한 반응이다. 이 때 박 교사가 아이들에게 물었다. "그러니까 어떻게 바꾸면 좋을까?" 아이들은 아이디어를 쏟아냈다. "청소도구를 장애인화장실에 두지 못하게 해야 돼요." "장애인 관련 시설이 어디에든 다 있어야 해요."

    박 교사가 "장애이해교육을 하더라도 동영상이나 발표 자료만 보는 것과는 교육 효과가 다르다"고 힘줘 말했다. 그가 말하지는 않았지만 나는 아이들이 휠체어 눈높이에서 비로소 담임선생님의 어려움을 이해하고, 이에 그치지 않고 학교에서 작은 규칙이라도 바꿔 보겠다는 생각을 아이들이 잠깐만이라도 할 수 있었다는 데 기뻤다.

    요즘은 장애가 다양성이고, 특징이며, 개성이라는 주장, '장애 프라이드'에 대한 담론이 많다. 물론 그렇게 생각하는 장애당사자들도 있지만 여전히 장애를 가진 삶이 좀더 불편하다는 사실이 흐려지지는 않는다. 휠체어 탑승 체험이 휠체어가 '또다른 이동의 방법'임을 인지하게 하는 것도 중요하겠지만, 그런 공감에 그치지 않고 '또다른 이동의 방법'이 불편하지 않도록 하려면 어떻게 해야 할지 함께 고민해 보는 게 더 중요하다.

    변호사이자 무용수인 김원영 작가는 자신의 책 <온전히 평등하고 지극히 차별적인>에서 이렇게 말한다. "(몸을 다르게 쓰는) 장애인 무용수가 있다면 그가 얼마나 좋은 춤을 출 수 있는지의 여부는 주변 사람들에게, 그가 속한 공동체에 달렸다. 그 공동체는 춤을 위한 접근성을 얼마나 다채롭게 상상할 수 있는가? (중략) 좋은 춤에 대한 편협한 기준을 성찰하고 (중략) 중증장애가 있는 이들도 자기를 표현할 훈련 기회를 얼마나 얻을 수 있는가?"

    장애 체험이 동정, 연민, 재미로 끝나지 않고 진짜 인식의 변화를 일으키려면 이렇게 체험이 '다채로운 상상'으로 이어져야 한다. 궁극적으로 현장을 바꿀 수 있길 바란다. 모든 학교의 장애인식교육이 진짜 체험으로 바뀌길 바란다. 진심이다.

    한국일보

    홍윤희 장애인이동권증진 콘텐츠제작 사단법인 '무의'이사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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