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승주 전쟁기념사업회장(왼쪽)이 김용선 예비역 육군 대령과 함께 벨기에 6·25 전쟁 참전용사인 고(故) 레이몽 베르(1933∼2024)의 사진을 든 채 기념 촬영을 하고 있다. 베르의 유족은 과거 주벨기에 한국 대사관 무관을 지낸 김 대령을 통해 고인의 생전 사진을 전쟁기념관에 기증하기로 했다. 전쟁기념사업회 제공 |
<이미지를 클릭하시면 크게 보실 수 있습니다> |
6·25 전쟁 당시 벨기에군은 연인원 약 3500명의 장병을 한국에 보냈다. 그들이 맹활약을 펼친 전투로 먼저 경기 파주 임진강 전투(1951년 4월)를 꼽지 않을 수 없다. 서울을 다시 점령하려는 중공군 3만여명의 공세에 맞서 영국 등 영연방 국가들과 벨기에 군대가 사투를 벌였다. 엄청난 인명 손실을 입은 중공군은 결국 물러났다. 강원 철원 잣골 전투(1953년 2∼4월)는 또 어땠나. 휴전이 임박한 가운데 한국 및 유엔군과 북한 및 중공군 간에는 한 뼘의 땅이라도 더 차지하려는 다툼이 치열했다. 잣골 일대에는 철수령이 내려졌음에도 벨기에·룩셈부르크 연합군이 이를 거부하고 2개월 가까이 버티며 적을 격퇴한 끝에 우리 영토를 지켜낼 수 있었다.
벨기에 청년 레이몽 베르(1933∼2024)는 19세이던 1952년 11월 처음 한국 땅을 밟았다. 6·25 전쟁 참전을 자원했기 때문이다. 잣골 전투에 직접 참여한 베르는 정전협정이 체결되고 한참 지난 1953년 12월에야 본국으로 돌아갔다. 이후 2012년부터 10년 넘게 벨기에 6·25 전쟁 참전용사협회장을 지냈다. 그는 국내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한국에 가서 우정을 쌓으며 한국인들을 도왔다”고 회상했다. 그러면서 한국인의 친절함을 거듭 칭찬했다. 문재인정부 시절인 2019년 필리프 벨기에 국왕의 방한에 동행한 베르는 서울 용산 전쟁기념관에서 열린 6·25 전쟁 참전용사 추모식에 국왕 부부와 나란히 참석하기도 했다.
2019년 서울 용산 전쟁기념관 내 벨기에 6·25 전쟁 전사자 명비 앞에서 레이몽 베르 참전용사(맨 오른쪽)가 방한 중이던 필리프 벨기에 국왕 부부(오른쪽 세 번째, 네 번째)에게 6·25 전쟁 당시 벨기에군의 희생에 관해 설명하고 있다. 전쟁기념사업회 제공 |
<이미지를 클릭하시면 크게 보실 수 있습니다> |
2024년 9월 90세를 일기로 별세한 베르의 생전 사진이 전쟁기념관에 기증됐다. 이는 평소 6·25 전쟁 참전을 자랑스럽게 여긴 고인의 뜻을 받든 유족의 결단에 따른 조치다. 2018∼2021년 주(駐)벨기에 한국 대사관에서 무관으로 일한 김용선 예비역 육군 대령이 유족과 기념관 사이에서 가교 역할을 했다고 한다. 사진 속 고인은 벨기에 육군 군복을 갖춰 입은 채 거수경례를 하는 당당한 모습이다. 기념관 운영 주체인 전쟁기념사업회 백승주 회장이 “벨기에 참전용사들의 희생과 연대를 기억하고 계승하기 위한 자료로 소중히 활용하겠다”고 밝혔다니 참으로 다행스러운 일이다. 한국와 벨기에의 우정을 상징하는 기념물로 영원히 기억되길 소망한다.
김태훈 논설위원
ⓒ 세상을 보는 눈, 세계일보
이 기사의 카테고리는 언론사의 분류를 따릅니다.
기사가 속한 카테고리는 언론사가 분류합니다.
언론사는 한 기사를 두 개 이상의 카테고리로 분류할 수 있습니다.
언론사는 한 기사를 두 개 이상의 카테고리로 분류할 수 있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