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마다 10월쯤 달력 사는게 습관
‘火요일→小자’ 표기로 업체 사과
SNS선 불평보다 위로·응원보내
실수 때 ‘슬기로운 대처법’ 훈훈
대학 진학과 함께 서울로 독립하면서 달력은 내게 명절 때 고향에 가야 볼 수 있는 소품이 됐다. 스마트폰 속으로 들어온 달력으로 인해 종이 달력과 자연스럽게 멀어져서다. 고향집에서 달력은 여전히 다양한 용도로 사용되고 있다. 엄마는 부침개 깔개용으로, 포장지 충전재로 달력을 요긴하게 사용하신다. 물론 기록용으로서도. 달라진 게 있다면, 그 사이 ‘아빠의 제삿날’ 표기가 새로 생긴 것. 그리고 아들딸이 고향에 내려오는 날이 엄마의 달력에 특별한 날로 등장했다는 점이다.
정시우 대중문화 칼럼니스트 작가 |
각설하고. 5년 전쯤부터인가. 매해 10월만 되면 다음 해 달력을 구매하는 게 일종의 습관이 됐다. 갑작스럽게 달력의 중요성을 느껴서는 아니다. 준비성이 철저해서도 아니다. 순전히 마음에 드는 달력 구매처를 발견해서인데, 선명한 색감이며 경쾌한 숫자 폰트며 빈티지한 종이 질감이며, 인테리어 소품으로 이만한 게 없었다. 예뻐서 구매하기 시작한 일이 연례행사가 된 것이다. 올해 10월에도 어김없이, 해당 디자인 업체로부터 2026년 달력을 구매했다.
2026년 판 달력은 이제껏 구매해 온 달력과 디자인이 달랐다. 영문으로 쓰였던 요일이 한자로 바뀌었고, 서체도 변형됐다. 아, 새로운 시도를 하셨구나. 변화에 적응이 늦은 인간이라 어색하긴 했지만, 믿고 구매해 온 곳인지라, 곧 익숙해지겠지 하며 주문했다. 그렇게 달력을 받고 열흘쯤 지났을까. 장문의 문자가 왔다. 발신인은 구매처. 내용인 즉, 화요일의 ‘화(火)’자가 ‘소(小)’자로 표기되는 하자가 발생했음을 뒤늦게 발견해서 연락했다는 것이다. 자세히 보니, 그렇다. 정말로 월‘소’수목금토일이네?
디자인 업체는 ‘반품’을 포함한 3가지 옵션을 제안하며 불편드려 죄송하다고 양해를 연신 구했는데, 전혀 불편하거나 기분 나쁘지 않았다. 오히려 ‘어쩌나’ 싶었다. 아마도 달력은 이 업체의 1년 농사에서 중요한 수익을 담당하는 주력 상품일 텐데, 오기 하나로 큰 피해를 보게 된 셈이니 어쩌나. 위로의 말과 함께 오랜 시간 팬이었음을 커밍하웃하며 응원을 보냈다. 그런데 이런 반응이 나만이 아니었던 듯하다. 아니, 대부분이 이런 반응이었던 것 같다. “비록 26년 달력은 이렇게 보내야 하지만, 힘 나는 말들과 응원 덕에 마음은 넘 행복하다”는 말을 SNS로 전한 걸 보면 말이다.
누구나 실수를 한다. 그러나 실수로 인한 대가는 사람마다 크게 갈린다. 여기엔 크게 두 가지가 결부되는 것 같다. 하나는 실수가 일어났을 때의 대처 법이다. 이번 사건에서 해당 업체는 사과 타이밍이든, 상대와 소통하려는 의지든, 재발 방지에 대한 약속이든 뭐 하나 어긋나는 게 없었다. ‘실수’를 통해 오히려 ‘신뢰’를 쌓은 셈이다. 또 하나가 어쩌면 핵심인데, 그건 실수가 일어나기 전까지 그 사람이 걸어온 행보다. 한 사람의 인생은 어느 한 가지 실수만으로 무너지지 않는다. 여러 가지가 지뢰처럼 숨어 있다가 결정타가 터졌을 때 무너지는 경우가 많다. 이는 역도 가능하다. 그 사람에 대한 신뢰가 알게 모르게 쌓여 있는 경우라면, 그것이 실수에 대한 방어막이 되어 주기도 한다.
여러 구매자가 이번 사건에 보낸 반응을 보면, 해당 업체는 후자로 잘살아온 듯하다. 큰 브랜드는 아니지만 오랜 시간 꾸준히, 묵묵히, 실력으로 걸어온 행보가 이번 실수에서 구원투수로 기능했다. 오기가 있는 제품이라고 구매하고 싶다는 의견에 해당 업체는 이 달력에 [하자제품]이라는 안내를 달아 반값으로 판매되고 있는데, ‘하자’가 그 하자가 아닌, ‘뭐든 (열심히) 하자’로 읽힌다. 월‘소’수목금토일 달력이 내게 준 큰 깨달음이다.
정시우 대중문화 칼럼니스트 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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