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한 요양원에서 노인이 창 밖을 바라보고 있다. 백소아 기자 thanks@hani.co.k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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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여년 전 2차 병원 재직 당시 말기 환자 진료로는 수익이 나지 않아 요양원 촉탁의를 겸한 적이 있었다. 6년간 매주 수요일 오후, 방문 간호사 한명과 함께 지역의 요양원들을 돌았다. 촉탁의 업무는 입소 노인들의 건강 상태를 살피고 의학적 자문과 위임받은 요양원 직원에게 대신 처방전을 발급하는 것이었다. 요양원은 노인장기요양보험, 진료는 국민건강보험 관할이기에 요양원에서 의료행위가 일어날 경우 보상 체계가 복잡해져 단순 진찰 이상은 허용하지 않는다.
하지만 현장 상황은 단순하지 않았다. 호스피스에 가야 할 말기 암 환자부터 뼈가 드러나는 욕창으로 덮인 파킨슨 환자, 중환자실에 옮겨 놔도 어색하지 않은, 기관절개에 호흡곤란을 겪는 사지마비 뇌졸중 환자까지 요양원에 모여 있었다. 가족들은 비용 부담으로 병원 대신 요양원을 선택했고 요양원은 정원을 채울 욕심으로 덥석 입소를 받았다. 그러다 감당이 안 되면 병원으로 옮겨야 하는데 보호자가 입원을 거부하거나 연락을 피하기도 하고 심지어 귀찮게 한다며 화를 내는 경우도 있었다. 그러다 보니 요양원 자체적으로 해결하려는 비전문적인 의료 행위가 난무했다. 연고, 해열제, 항생제 등을 비축해 두기 위해 대리 처방전을 받으러 오는 요양원 직원은 노인들의 증상을 부풀려 추가 약 처방을 요구했고 나는 늘 그들과 실랑이를 해야 했다.
통계청에 따르면 2006년 800여개에 불과했던 요양원은 2024년에는 6200여개로 16년 새 8배 증가했고 입소 정원은 24만명을 넘어섰다. 이는 같은 해 한국 신생아 수 23만8천명보다 많고, 사망자 수 35만8천명의 67%에 달한다. 한해 요양원 이용자 수에 대한 통계는 없지만 2014년 서울시 요양원 수요자는 정원의 2배라는 발표를 참고해 단순 대입하면 이용자는 한해 50만명 이상일 것으로 추정된다. 이런 수요에 부응해 요양원은 해마다 가파르게 늘고 있지만 돌봄 환경은 존엄과는 거리가 멀다.
내가 촉탁의 방문을 했던 40여개의 요양원들은 대부분 도로변 상가 건물 한편에 위치했다. 야외 산책 등 바깥 공기를 쐴 수 있는 기회는 없었다. 지난해 한겨레 기자가 요양보호사를 취득해 한달간 요양원에 취업한 후 작성한 기사의 제목은 “숨 멈춰야 해방되는 곳…기자가 뛰어든 요양원은 감옥”이었다. 기자는 인력은 적고 일은 많은 요양원에서 노인들을 효율적으로 관리하는 요령을 매일 터득해 나갔다. 요양원 업무의 기본은 식사와 용변이다. 두세명의 요양보호사가 20여명의 노인들을 돌봐야 하는 상황에서 느린 식사 속도와 산발적인 용변 처리는 가장 큰 난관이었다. 기자는 결국 요양원 종사자들이 자신의 생존을 위해 인간적인 감수성을 접어두고 비인간적인 효율을 택할 수밖에 없는 현장의 한계를 전달했다.
내가 목격한 현장도 그랬다. 요령을 부리는 한 요양원 원장은 스스로 식사가 어려우면 사레 들림 사고 예방을 구실로 보호자들을 설득해 어김없이 콧줄을 넣었다. 가축 사육을 하듯 콧줄을 통해 매번 애먹이던 식사가 간편하게 해결되었다. 나아가 콧줄은 신체 구속의 정당한 구실이 되었다. 콧줄을 잡아 빼지 못하도록 손에는 벙어리장갑이 씌워지고 팔을 침대 난간에 묶는 일도 허다했다. 또한 기저귀 사이로 용변이 새어 침대보와 이불이 오염되는 것을 막기 위해 매트 위에 비닐장판을 까는 것은 요양원끼리 공유하는 은밀한 요령이었다. 이불을 들치면 암모니아 냄새가 코를 찔렀고, 건조한 몸에서 떨어진 각질 부스러기가 침대보에 가득했다. 반면 집으로 가겠다고 소리를 지르거나 문을 차거나, 불만이 있으면 물건을 던지고 때리는 등 의사 표현과 거동이 가능한 노인이 많을수록 요양보호사들의 업무 스트레스는 컸다. 특히 낙상사고는 전적으로 시설 책임이라는 판결이 나온 이후 병원과 요양원은 신체 구속을 더욱 선호하게 됐다. 요양원 촉탁의 경험은 도시에서의 늙어감과 삶의 마지막에 대한 한국 사회의 구조적 문제를 고민하는 계기가 되었다. 치열한 각자도생 사회에서 자녀들은 생계를 접고 부모를 돌볼 수 없고, 사회가 제시한 대책이란 병원과 요양원에 노인을 격리하는 것이었다. 그걸 깨닫게 되자 나 또한 요양원이 내 마지막 집이 될 것임을 받아들여야 했다.
이는 서구 선진국도 마찬가지이다. 영국의 노년내과 의사인 데이비드 재럿은 영국의 노인들 역시 홀로 지내다 결국은 요양원으로 가게 되고 섬망 등의 이유로 신체 구속을 피할 수 없다고 말한다. 요양원에서 건강이 악화하면 응급실을 거쳐 중환자실에서 생을 마감한다. 운 좋게 회복되더라도 다시 요양시설로 돌아와 또다시 섬망, 신체 구속, 응급실의 사이클을 반복하게 되는데 이는 현대인의 가장 흔한 ‘최빈도 죽음’의 모습이다.
한발 늦은 근대화를 이룬 동아시아 국가들은 21세기가 되어서야 서구 사회가 먼저 겪은 사회문제들을 마주하게 되었다. 일본 역시 노인들이 요양원을 거쳐 병원에서 임종하는 비율이 급증하면서 정작 치료받아야 할 사람들에게 의료 자원이 돌아가지 못하는 상황이 발생했다. 일본의 대책은 바로 재택 의료 확대를 통해 병원이 아닌 집과 요양원에서 마지막을 보내도록 하는 것이었다. 1950년대부터 꾸준히 증가해 2006년 78.4%로 정점을 찍었던 일본의 병원 임종 비율은 2020년 72%까지 감소했고 대신 요양시설 임종은 14%까지 증가했다. 물론 일본도 노인에 대한 요양원의 신체 구속 남발이 문제가 되었던 적이 있다. 하지만 1998년 ‘신체 억제 폐지 후쿠오카 선언’을 발표하고 결박 대신 노인들의 자율적인 일상을 최대한 보장하는 인권 요양원과 노인 공동생활 주택들을 확대해 나가고 있다.
현대 사회의 최빈도 죽음에서 일본은 조금씩 탈출하고 있지만 한국은 여전히 진행 중이다. 2019년 건강보험심사평가원의 조사에 따르면 전국 종합병원 중환자실 환자 중 70살 이상 노인이 무려 56.1%를 차지하고 있었다. 정부는 사전연명의료의향서가 존엄한 죽음의 만능열쇠인 것처럼 홍보하며 노인들의 작성을 독려하고 있다. 하지만 이는 생애 말 돌봄 대책은 아니어서 요양원을 거쳐 병원에서 임종하는 쳇바퀴를 끊지 못한다. 마치 청약 가입만 남발할 뿐 집은 공급하지 않는 공수표와 같다. 결국 현실은 아득바득 온전한 정신으로 마지막까지 내가 살던 집에서 버티는 수밖에 없다. 그나마 최근 한국도 재택 의료가 조금씩 확대되고 있어 집에서의 돌봄에 도움이 되고 있다.
70대 중반 인두암 환자는 지방에서 서울을 오가며 항암치료를 받다 결국은 말기가 되었다. 주치의는 호스피스 병원을 권유하며 내게 의뢰하였는데 환자는 단호하게 병원이 아닌 집에서 죽겠다고 선언하였다. 가장 난감한 것은 시골 마을에 함께 사는 아들이었다. 피부 바깥으로 뚫고 나온 암은 소독은커녕 쳐다보기조차 겁이 난 그는 도저히 집에서 모실 엄두가 안 나는데 아버지의 고집은 꺾을 수가 없었다. 시골이어서 가까이 호스피스 병원도 없거니와 지역 병원을 가도 말기 암 환자를 용기 내 진료해주는 곳이 없어 아들은 매달 서울까지 찾아와 진통제를 받아갔다. 아들이 전하기로는 환자는 평소대로 매일 마을회관을 나가고 마을과 집안 대소사에 깐깐하게 간섭하며 어른 노릇을 놓지 않았다. 기운이 빠지자 자리에 눕게 되었는데 그럼에도 병원에 가지 않겠다는 의지는 확고했다. 나는 아들이 난처해지지 않도록 ‘집에서 임종을 준비하는 말기 암 환자’라는 소견서를 써주고 임종 시 119가 아닌 경찰에 신고해야 하며, 이 소견서로 병사를 증명받을 수 있다고 알려주었다.
얼마 전 아들은 마지막 방문이 될 것 같다며 다시 나를 찾았다. 이젠 종일 주무시고 물 몇모금 외엔 아무것도 넘기지 못한다고 하였다. 지난주 김장을 구실로 흩어져 사는 자녀들과 친척들이 모두 모여 아버지를 뵙고 갔다고 했다. 환자는 그 와중에 눈을 떠 군대에 가서 보이지 않는 장손을 찾았고 그는 이번 주에 특별 휴가를 받아 집에 올 예정이라고 했다. 마지막을 평생 살던 집에서 가족과 함께 보내는 것이 특별한 일이 된 대한민국에서 그는 결국 그걸 해냈다. 그가 살던 곳에서 재택 의료나 가정형 호스피스가 가능했다면 더 편히 지내실 수 있었을 텐데라는 아쉬움이 남는다.
박중철 | 연세암병원에서 말기 암 환자와 가족들의 고통 없는 삶을 지키는 호스피스·완화의료 의사이자, 인간 질병의 생물학적 측면을 넘어 사회·문화적 맥락을 종합적으로 탐구하는 인문사회의학 박사이다. 주된 관심사는 젊음과 생동력을 추종하며 삶의 완성인 죽음의 가치를 소외시킨 한국인들이 겪고 있는 ‘생’(生)의 방향 상실이다. 저서로 ‘나는 친절한 죽음을 원한다’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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