컨텐츠 바로가기

    12.21 (일)

    "40분 설명해도 수가 0원, 누가 할까" 의사 푸념에 방치된 천식 환자들

    댓글 첫 댓글을 작성해보세요
    주소복사가 완료되었습니다
    머니투데이

    천식, 만성 폐쇄성 폐질환(COPD)에 사용되는 흡입기들. /사진=게티이미지뱅크

    <이미지를 클릭하시면 크게 보실 수 있습니다>


    내년부터 55·66세 국민의 국가건강검진에 '폐 기능 검사'가 도입되면서 천식 같은 호흡기질환의 '숨은 환자'를 더 많이 찾아낼 것으로 관측된다. 이들 환자에게 필수적인 치료약은 '흡입기'(흡입형 스테로이드 약물이 든 기기)다. 하지만 정작 흡입기 사용법을 알려주는 데만 20~40분이 걸리는데, 이에 대한 금전적 보상(수가)이 '0원'이라다. "누가 선뜻 흡입기를 처방하려 하겠는가"라는 푸념이 의료계에서 흘러나오는 이유다.

    19일 대한결핵및호흡기학회 유광하 이사장(건국대병원 병원장·호흡기알레르기내과 교수)은 머니투데이에 "천식, 만성 폐쇄성 폐질환(COPD) 환자에게 염증을 조절해주는 흡입기가 우선 권고된다"면서 "환자가 급증하면서 2017년 학회가 '만성기도질환 교육상담료 수가'를 신설해달라고 정부에 강력히 요구했지만 답보상태"라고 언급했다.

    흡입기는 뚜껑을 열고 약제를 입으로 깊이 들이마신 후 숨을 참아 기관지로 약물을 넣어주는 방식의 약제다. 물과 함께 삼키기만 하면 끝나는 여느 알약보다 약물을 투여하기까지 방식이 까다로워, 환자가 사용법을 숙지하기까지 의료진이 설명하는 데만 20~40분이 소요된다는 게 학회 측 설명이다.

    이런데도 학계에서 흡입기 치료를 고집하는 이유는 별다른 부작용 없이 긍정적인 치료 효과를 내서다. 천식·COPD 환자에게 흡입제 사용법을 알려주면 중증·급성으로 악화할 비율은 44%, 입원율은 71%, 재입원율은 75%가 줄어든다는 연구 결과가 나와 있다. 건강보험심사평가원에 따르면 '피할 수 있는 천식 입원율'은 인구 10만명당 한국이 1028명으로, OECD 평균(45.8명)보다 22.5배나 높다는 조사 결과도 있다.

    천식 환자가 흡입기를 사용했을 때 의료비도 크게 아낄 수 있다는 통계 결과가 있다. 핀란드는 천식알레르기 환자를 위해 흡입기 사용법을 제대로 교육하는 전국적 천식관리프로그램을 1994~2004년 운영했다. 이 기간 핀란드 내 천식 유병률은 3배나 늘었지만 연간 천식 관련 의료비는 1987년 2억2200만유로에서 2013년 1억9100만유로로 14%포인트 줄었다.

    김현지내과 김현지 원장은 "(천식인 줄 모르고) 기침, 가래, 호흡곤란 증상을 호소하며 내원한 91세 여성 환자에게 폐 기능을 검사한 후 천식을 진단했는데, 천식 흡입기 약물 기전과 사용법을 교육하는 데만 20분이 넘게 걸렸다"면서도 "이 환자가 그간 호흡기 증상으로 먹어온 약만 15종이었는데, 흡입기 사용 후 6종으로 현저히 줄었다"고 말했다.

    머니투데이

    하지만 2011~2015년 국가별 천식 환자 가운데 흡입기를 사용한 비율은 호주가 94%(경구약은 4%), 싱가포르는 88%(경구약 26%), 인도는 86%(경구약 44%), 중국은 79%(경구약 15%)에 달했다. 반면 한국은 환자의 38%만 흡입기를 사용하는 데 그쳤고, 전체 천식 환자의 대다수(87%)가 경구약을 처방받았다. 이런 배경엔 △1차 의료기관에 천식을 진단하기 위한 폐 기능 검사 장비·인력을 갖추지 못해 천식 진단 정확도가 떨어졌다는 점 △천식의 흡입기 사용 효과에 대한 의료진의 인식 부족 △흡입기 속 스테로이드제에 대한 환자의 불안감 △경구용 약의 '반짝 효과'(증상을 일시적이지만 빠르게 가라앉힘) 등이 원인으로 지적된다.

    서울성모병원 호흡기내과 이진국 교수는 "내년부터 국가검진에 폐 기능 검사가 도입된 후 천식 환자가 급증할 것을 고려해 흡입기에 대한 표준화 교육·상담과 보상체계를 정부가 마련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김현지 원장은 의원급에서 천식·COPD 흡입기 사용법을 환자에게 알려줄 때 정부가 책정할 교육상담료 수가를 △첫 진단 시 △이후 점검·평가 시로 나눠 설정하는 방안을 제시했다. 그는 "진단 시 흡입기 약제 기전과 사용법을 교육(1회)할 때 3만~4만원을, 폐 기능 검사 후 상태가 악화해 흡입기를 바꿔야 할 때(점검·평가) 1회당 2만~3만원씩 연간 최대 3회를 수가로 책정해주면 적당할 것"이라고 주장했다.

    보건복지부 건강정책과 임은정 과장은 "천식·COPD 환자 흡입기 사용에 대한 교육·상담 수가 도입 필요성에 공감한다"며 "구체적 도입 방식은 전문가 의견을 충분히 수렴해 검토하겠다"고 밝혔다. 복지부 보험급여과 유정민 과장은 "천식·COPD 환자가 1차 의료기관에서 적절히 치료받도록 전달체계 강화와 교육·상담을 통한 진료 질 향상이 필요하며, 이는 정부 정책 방향과도 일치한다"며 "교육·상담 수가 도입 방식은 여러 기전으로 열어두고 논의하고 있으며, 적정한 보상체계 마련에 속도를 내겠다"고 덧붙였다.

    정심교 기자 simkyo@mt.co.kr

    Copyright ⓒ 머니투데이 & mt.co.kr. 무단 전재 및 재배포, AI학습 이용 금지.
    기사가 속한 카테고리는 언론사가 분류합니다.
    언론사는 한 기사를 두 개 이상의 카테고리로 분류할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