컨텐츠 바로가기

    12.22 (월)

    '전설의 종군 기자' 피터 아넷 별세…향년 91세

    댓글 첫 댓글을 작성해보세요
    주소복사가 완료되었습니다
    사이공 함락·걸프전 취재 세계적 명성
    1966년 베트남전 보도로 퓰리처상 수상


    한국일보

    종군기자 피터 아넷. 위키피디아

    <이미지를 클릭하시면 크게 보실 수 있습니다>


    1991년 걸프전쟁 당시 서구권 기자로는 최초로 이라크 바그다드 전황을 생중계한 종군기자 피터 아넷이 18일(현지시간) 별세했다. 향년 91세.

    뉴욕타임스(NYT)는 이날 아넷이 미국 캘리포니아 뉴포트비치에서 전립선암으로 사망했다고 보도했다.

    1934년 뉴질랜드에서 태어난 아넷은 고교를 중퇴한 뒤 17세에 언론계에 입문했다. 계약 기자 신분으로 AP통신에서 일했던 그는 라오스에서 발발한 1960년 쿠데타를 특종 보도하면서 이름을 알렸다. 당시 그는 라오스에서 기사를 송고할 수 있는 방법이 마땅치 않자 메콩강을 헤엄쳐 태국으로 건너간 뒤 전보로 기사를 전달했다. 훗날 그는 자신의 저서에서 "최대한 빨리 기사를 보내기 위해 메콩강에 뛰어들었다. 기사와 여권, 10달러짜리 지폐 20장을 입에 물고 헤엄쳤다"고 회고했다.

    아넷은 베트남전 당시에도 전장에 있었다. AP통신에 정식 입사한 그는 미군과 월남군이 승기를 잡았다는 당국의 공식 발표와는 달리 전황이 불리하다는 사실을 보도했고, 1966년 베트남전 보도로 퓰리처상을 받았다. 그는 1975년 사이공 함락 당시에도 미국 대사관의 혼란과 탈출 장면 등을 보도했다.

    아넷은 1991년 CNN방송 특파원으로 걸프전 전장을 생생하게 전달해 세계적인 명성을 얻었다. 1997년에는 이슬람 극단주의 세력인 알카에다의 수장 오사마 빈라덴을 아프가니스탄에서 인터뷰하기도 했다. 다만 말년에는 언론 윤리와 관련된 논란으로 어려움을 겪기도 했다. CNN은 1997년 미군이 베트남전 당시 라오스에서 신경가스를 사용했다는 오보를 내보냈고, 1년 후 아넷은 책임을 지고 사표를 냈다.

    아넷은 이후 프리랜서 기자 생활을 하다 중국 대학에서 교편을 잡았다. 한국계 사위를 둔 그는 지난 2003년 방한해 강연으로 한국인들을 만났다.

    손효숙 기자 shs@hankookilbo.com

    기사가 속한 카테고리는 언론사가 분류합니다.
    언론사는 한 기사를 두 개 이상의 카테고리로 분류할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