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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2.21 (일)

    쿠팡 사태가 드러낸 ‘무용지물’ 징벌법 [취재수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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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징벌적 손해배상 제도는 단순히 처벌을 위한 수단이 아니라, 기업들이 사전 예방 조치를 취하도록 만드는 핵심적 유인이다.”

    한 경제학과 교수의 진단이다. 쿠팡에서 대규모 개인정보가 유출된 이후, 소비자 분노가 징벌적 손해배상제 도입 요구로 번지고 있다. 3370만명의 개인정보가 유출됐는데도 현행 법 체계로는 제대로 된 처벌이 어렵기 때문이다. 최근 성인 남녀 1000명을 대상으로 한 여론조사에서는 응답자 10명 중 7명이 개인정보 유출 관련 징벌적 손해배상 도입에 찬성하기도 했다.

    징벌적 손해배상제는 2015년 도입됐다. 이 제도는 기업이 개인정보를 유출하면 손해액의 최대 5배까지 배상하도록 할 수 있다고 규정한다. 하지만 지난 10년간 현실에서 단 한 차례도 적용된 적이 없다. 기업이 “고의 또는 중과실이 없었다”는 입증만 하면 책임을 피해갈 수 있는 구조 때문이다. 집단소송제는 반쪽짜리다. 미국은 피해자 대표가 승소하면 전체 피해자가 동일한 배상을 받는 구조다. 반면 한국은 소송에 참여한 사람에게만 배상 효력이 미칠 뿐이다. 법무법인 대륜이 쿠팡Inc를 상대로 미국 뉴욕 연방법원에 집단소송을 제기한 이유도 여기에 있다. 미국은 기업 과실에 대해 징벌적 손해배상을 광범위하게 인정할 뿐만 아니라, ‘디스커버리(증거 개시) 제도’를 통해 기업 내부 자료까지 강제로 제출받을 수 있다. 미국 법원에서 기업의 보안 경고 무시나 보안 취약점 관리 등 문제점이 드러나면 징벌적 손해배상은 현실화한다.

    한국에서는 이런 소송이 불가능하다. 국민이 해외 법정까지 가서 권리를 주장해야 한다는 현실 자체가 법 제도의 허점을 보여주는 방증이다. 이제 미국 사법 시스템을 참고해 기업이 보안을 ‘비용’이 아닌 ‘책임’으로 받아들이게 만들어야 한다. 제도는 이미 우리 법에 들어와 있다. 정부와 국회는 실효성 있는 제도 개선 방안을 마련해야 한다.

    [조동현 기자 cho.donghyun@mk.co.kr]

    [본 기사는 매경이코노미 제2339호 (2025.12.17~12.23일자)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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