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속 온천 마을…이동 수단이 곧 관광
프리패스로 쉽게 여행하는 탈거리 천국
낭만은 번거로움을 수반한다. 아니, 어쩌면 우리는 번거로움을 기꺼이 감수하는 행위를 낭만이라 부르는 걸지도 모른다. 낯선 곳으로 여행을 떠나는 이유도 비슷하다. 평소라면 귀찮았을 과정 하나하나가 여행에서는 그 자체로 즐거움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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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코네 명승지 오와쿠다니/사진=김지은 여행+ 기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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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 의미에서 일본 하코네 여행은 낭만적이다. 도쿄에서 약 2시간 떨어진 하코네는 1200년이 넘은 온천 마을이다. 오후 6시만 되면 대부분의 상점이 문을 닫고, 여행을 하려면 열차·로프웨이·버스 등 여러 교통수단을 갈아타야 하는 산골 마을. 편한 여행지는 아니지만 그 과정 속에 하코네의 진면모가 서려 있다.
일본 하코네 마을 전경/사진=김지은 여행+ 기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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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코네에 도착하자마자 침대에 드러눕고 싶다는 마음을 참고 짐도 풀지 않은 채 온천으로 달려갔다. 인천공항에서 나리타공항까지 두 시간, 공항에서 도쿄 시내까지 1시간. 다시 기차를 갈아 타고 2시간을 더 달려서야 하코네에 닿았다. 집에서 나온 지 8시간째, 몸은 이미 살려 달라고 외치고 있었다. 한국서부터 데려온 피로를 말끔히 씻어내고 여행을 시작하고 싶었다.
온천마을 하코네에는 400개가 넘는 료칸(일본 전통 숙소)이 있다. 대부분의 여행객들이 료칸에 묵으며 온천 체험을 하지만, 당일 전용 온천도 있고 호텔 내 온천탕에서 당일 고객을 받기도 한다. 홀로 떠난 이번 여행, 료칸은 부담스러워 당일 온천을 택했다. 대욕장은 평균 1500엔~2000엔 (약 1만 4000원~1만 9000원)에 이용 가능하다.
당일온천 시설 하코네 유료온천 대욕탕/사진=하코네 유료온천 공식 홈페이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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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일온천 시설 하코네 유료온천 대욕탕/사진=하코네 유료온천 공식 홈페이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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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애 첫 노천탕은 말 그대로 ‘신세계’였다. 발가벗고 야외에 나가는 경험도 특이하지만 진짜 매력은 입욕 직후 느낄 수 있다. 목 위로는 차가운 바람이 불고 몸은 뜨끈하다. 분명 불균형한 온도인데, 과장을 보태자면 평생을 찾아 헤맨 온도처럼 느껴진다.
이는 단순한 기분 탓이 아니다. 실제로 인간의 몸은 ‘뇌는 차갑고 몸은 뜨거운 상태’를 가장 좋아한다고 한다. 온도의 극명한 대비로 인해 엔도르핀까지 분비된다. “크어어어…” 소리가 절로 나오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게다가 하코네 온천은 유황, 알칼리 등 천연 성분이 풍부해 목욕하고 나면 피부가 매끈해져 있다.
당일 온천이 가능한 료칸 ‘텐세이엔’의 로비/사진=김지은 여행+ 기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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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각지도 못했던 온천의 장점은 ‘디지털 디톡스’다. 당연한 말이지만 휴대폰을 가지고 들어갈 수 없기에 연락이나 SNS는 물론이고 사진도 찍지 못한다. 무성한 나무와 바위, 아름다운 노을이 탕에 반사되는 장면을 눈에만 담아야 한다.
평소 눈동자보다 카메라를 먼저 들이미는 현대인으로서, 천국 같은 이 풍경을 남기지 못한다는 점이 처음에는 아쉬웠지만 아이러니하게도 이곳의 기억이 가장 생생하게 남아있다. 순간을 사진첩이 아닌 감각에 저장하는 법을 배웠다.
온천에서 시작한 디지털 디톡스는 하코네 여행 내내 이어졌다. 하코네는 유명 관광지가 원형으로 이어져 있어 여행 동선이 단순하다. 원하는 방향으로 열차, 케이블카, 유람선을 번갈아 타면서 다음 목적지로 이동하다 보면 어느새 원점으로 돌아와 있다. 보통 이동은 도착을 위한 과정으로 여기기 마련이지만 하코네에서는 이동하는 순간까지 여행이 된다.
하코네 등산열차/사진=김지은 여행+ 기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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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파른 하코네 산을 오르는 붉은색 등산열차가 대표적인 예시다. 하코네에서는 스위스에 있을 법한 산악 열차가 산속을 뚫고 오른다. 실시간으로 변하는 창밖 풍경이 아름다워 이곳에서는 고개를 숙이고 휴대폰에 시선을 고정하는 사람이 없다. 하이라이트는 산과 산을 잇는 철교 위. 열차가 어두운 터널을 빠져나오자마자 조용하던 객실이 탄성으로 가득 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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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시간으로 수증기를 뿜고 있는 유황 계곡 오와쿠다니/사진=김지은 여행+ 기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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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코네에서 가장 유명한 관광지인 오와쿠다니로 향하기 위해서는 로프웨이를 타야 한다. 15분 정도 로프웨이를 타고 해발 1000m를 오르면 발밑으로 유황 계곡 오와쿠다니가 펼쳐진다. 화산활동에 의해 실시간으로 수증기가 뿜어져 나오고 있다. 머릿속에는 이미 인디아나 존스, 쥬라기월드 같은 온갖 판타지 영화의 배경음악이 재생된다. 그만큼 비현실적이라는 얘기다.
하코네 해적선/사진=김지은 여행+ 기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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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과 하늘이 끝이 아니다. 하코네에는 물을 가르는 교통수단도 있다. 아시노 호수의 하코네 해적선. 중세 유럽 범선을 본떠 만든 거대한 유람선이 약 30분 동안 호수를 가로지른다. 눈이 시리도록 푸른 호수와 하늘이 펼쳐지고 날씨가 좋으면 후지산까지 조망 가능하니, 움직이는 전망대인 셈이다.
센고쿠하라 갈대밭/사진=김지은 여행+ 기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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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코네의 샛길은 센고쿠하라였다. 모두가 같은 동선으로 움직이는 하코네 투어에서 한 번쯤은 이탈을 하고 싶었다. 계획대로라면 모토하코네항에서 해적선에 탑승해야 했지만 로프웨이를 타고 역에 내리자마자 방향을 꺾어 T라인 버스에 올라탔다.
지도에도 명확히 나와 있지 않고 입구도 크지 않지만 헷갈릴 수가 없다. 창밖으로 금빛의 갈대가 흐드러지고 있으니 말이다.
갈대밭 사이로 보이는 T라인 버스/사진=김지은 여행+ 기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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갈대밭 입구/사진=김지은 여행+ 기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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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코네산 서쪽 산비탈에 위치한 센고쿠하라 갈대밭은 관광객으로 가득한 하코네 관광지와 달리 현지인 비율이 훨씬 높다.
9월부터 11월 말까지 700m의 완만한 언덕을 따라 끝이 보이지 않는 갈대가 펼쳐진다. 바람에 흔들리는 옅은 베이지빛 갈대가 마음 속으로 파도처럼 밀려온다. 이곳에서 가을이 빨강과 노랑만의 전유물은 아님을 최초로 깨닫는다.
센고쿠하라 갈대밭/사진=김지은 여행+ 기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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끝까지 오르면 20분 정도 소요 된다. 함께 오르기 시작했던 이들이 점차 사라지지만 정상까지 오르고 나면 승자의 기분을 맛볼 것이다. 아래서는 볼 수 없는 풍경을 하산하는 이들에게만 선사하기 때문. 갈대밭, 마을, 하코네 산, 하늘이 순차적으로 펼쳐진다. 왕복 40분이면 충분하지만 감동적인 풍경에 자꾸만 발걸음을 멈추게 되므로 여유롭게 방문하는 것을 추천한다. 입장료는 없다.
하코네 로망스카. 통유리로 경치를 볼 수 있다. /사진=김지은 여행+ 기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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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주쿠역에서 하코네에 가는 방법은 크게 두 가지다. 특급열차인 로망스카나 일반 열차 오다큐선. 둘 다 이용해 본 입장에서 조금 더 비싸더라도 로만스카를 추천한다. 로만스카는 환승 없이 한 번에 하코네유모토역까지 간다. 지정좌석제이며 창이 크고 맨 앞자리가 뚫려 있어 가는 길이 지루하지 않다. 맑은 날엔 후지산도 보인다.
티켓은 온라인으로 예약 가능하며 신주쿠역 인포메이션에서도 현장 결제 가능하다. 편도 약 2400엔(약 2만 2700원), 하코네 프리패스 소지시 1200엔(약 1만 1300원)이다.
하코네 여행 필수템은 하코네 프리패스다. 등산열차, 로프웨이, 해적선, 그 외 시내버스 등 8개의 하코네 교통수단을 무제한으로 이용 가능하다. 여기에 온천, 신사, 미술관 등 70개 이상 관광지에서 입장 할인도 받을 수 있다. 도쿄와 하코네를 오가는 기차표 값까지 포함되니 관광지 2-3개만 방문해도 본전은 충분히 뽑는 셈이다.
하코네 프리패스 예약 화면(좌)과 디지털 패스권 활성화 화면(우)/사진=클룩 캡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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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코네 프리패스는 온라인으로 미리 구매 가능하다. 실물 티켓과 모바일 큐알코드 중 택할 수 있는데 분실 위험이 없고 이용이 간편한 모바일 티켓을 추천한다. 하코네 프리패스 모바일 티켓은 현재 클룩에서만 판매한다. 일정에 따라 2일 권이나 3일 권 구매 후 온라인에서 패스를 활성화하면 된다. 탑승 시 QR코드를 스캔하거나 보여줘야 하며 캡처본은 사용이 불가함으로 사이트를 홈 화면에 미리 추가해 두자.
3. 올빼미족은 주의
이르게 찾아오는 하코네의 밤/사진=김지은 여행+ 기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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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코네의 하루는 일찍 끝난다. 시골마을이기도 하고 투숙객 대부분이 저녁에는 료칸을 하며 시간을 보내기 때문에 시내의 상점은 오후 6시만 되면 문을 다 닫는다. 늦게까지 영업하는 식당은 한 손에 꼽고 편의점도 24시간이 아닌 경우도 많다, 저녁 식사 계획은 미리 세워두시길. 산속 마을이라 어두워 밤 산책도 위험하다. 하코네의 긴 밤은 온천욕으로 채우는 것을 추천한다.
하코네(일본)=김지은 여행+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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