루이즈 루 옥스퍼드 이코노믹스 이코노미스트 |
2025년 한국 경제를 한 단어로 요약하면 ‘2속도 경제(two-speed economy)’다. 반도체와 AI 중심의 수출은 급성장했지만, 내수와 고용은 정체 상태다.
올해 한국은 아시아에서 가장 기묘한 거시경제 성적표를 받았다. AI 붐은 고성능 메모리와 첨단 반도체 수요를 급증시키며 일부 대기업의 실적과 수출을 예상 밖 수준으로 끌어올렸다. 제조업 고용은 팬데믹 이전 추세를 회복하지 못했고, 금융·건설·가계 수요 등 내수 부문은 상승 국면에 합류하지 못했다. 자본집약적 생산 구조와 자동화의 진전 속에서 성장의 확산 경로는 점점 좁아지고 있다.
통화정책의 방향도 바뀌었다. 한국은행은 기준금리를 2.50%로 유지했지만, 정책 기조는 분명히 매파적(긴축 선호적)으로 이동했다. 가계대출 관리와 원화 약세의 물가 전이 효과가 다시 정책의 중심에 섰다. 추가 금리 인하 가능성은 크게 낮아졌고, 인플레이션이나 환율 압력이 재부상할 경우 긴축 재개 가능성도 배제하기 어렵다. 현재의 2.50%가 금리 인하의 최종 수준이 될 가능성이 크다.
시장은 이미 이를 반영하고 있다. 10년 만기 국고채 수익률은 10월 말 이후 약 0.3%포인트 상승했다. 고금리의 장기화와 함께, 향후 경기 대응의 부담이 통화정책에서 재정정책으로 넘어갈 수 있다는 인식이 확산되고 있다. 주택시장은 여전히 불안 요인이다. 거래는 둔화됐지만, 서울 집값은 상승세를 이어가며 가계부채에 대한 중앙은행의 경계심을 자극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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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외 환경도 녹록지 않다. 중국은 관세와 규제 속에서도 수출 경쟁력을 유지하며 시장 점유율을 지켜냈다. 그 결과 중급 전자제품과 기계류 등 한국의 전통적 주력 분야는 중국의 확대된 생산능력과 공격적 가격 전략에 직면해 있다. 이는 기초수지를 악화시키고, 자본 유출 압력을 키웠다. 원화가 달러당 1400원을 넘는 수준을 새로운 기준선으로 받아들여지는 배경이다.
문제의 핵심은 성장률이 아니라 연결의 부재다. AI와 반도체가 만들어낸 성과가 금융·내수·고용으로 퍼지지 못한다면 이 2속도 경제는 구조로 굳어진다. 통화정책은 이미 한계에 가까워졌다. 해법은 재정과 산업정책에 있다. 재정은 단기 부양이 아니라 생산성과 고용을 잇는 데 집중해야 하고, 산업정책은 선도 기업을 넘어 중견·서비스 부문으로 기술 확산의 경로를 넓혀야 한다. 금융 규제 역시 안정이라는 명분 아래 성장을 가로막지 않도록 정교해질 필요가 있다.
한국 경제는 위기는 아니지만, 방향을 바로잡지 않으면 강한 부문과 약한 부문의 격차는 더 벌어질 것이다. 지금 필요한 것은 성장의 혜택이 막힘없이 흐를 수 있는 혈로를 다시 여는 정책적 대전환이다.
루이즈 루 옥스퍼드 이코노믹스 이코노미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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