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윤경 인천대 동북아국제통상물류학부 교수
美정부·韓기업 합작 제련소 프로젝트
韓경제, 글로벌 공급망 리스크 대응 기회
인공지능(AI), 반도체 등 첨단기술을 둘러싼 국가 간 경쟁이 본격화하면서 그 이면에 놓인 광물 확보가 각국의 최우선 과제로 떠올랐다. 부존자원의 차이뿐 아니라 노동, 환경 등 문제로 인해 광물의 전략적 중요성을 간과하고 중국 중심의 특정 국가에만 의존해 왔던 과거는 현재의 공급망 불균형을 초래했다. 미중 갈등이 고조되면서 희토류 가공의 90%, 갈륨 생산의 98%를 점유한 중국은 수출 통제를 통해 본격적으로 광물을 무기화하고 있다. 풍부한 광산 자원을 보유한 미국이지만 제련·정제 기술의 부재로 원자재를 수입에 의존하는 구조적 취약성을 드러내며 광물 안보는 산업이 아닌 국가 미래 과제로 부상했다.
미국은 인도, 호주, 캐나다 등 주요 광물 생산국과의 광물 안보 파트너십을 통해 생산 안정화를 시도해 왔지만 생산거점 확보와 원천 기술에 대한 접근성은 여전한 문제로 남았다. 이를 극복하기 위한 전략적 파트너십이 고려아연과의 ‘크루서블 메탈즈’ 합작법인이다. 2030년 생산을 목표로 미국 전쟁부(옛 국방부)가 40.1%의 지분을 보유하며 미국 칩스법에 따른 상무부의 보조금과 미국 정책금융 대출 등이 지원된다. 자금조달 구조에서부터 파트너십에 대한 미국의 강한 의지를 찾을 수 있다. 신규 합작법인과 고려아연은 각각 9.99%의 주식을 보유하되 고려아연의 100% 자회사인 크루서블 메탈 홀딩스가 사업 운영의 주체가 돼 핵심 기술은 고려아연이 권한을 갖도록 고안했다.
전략적 파트너십에 대한 미국 정부의 적극성은 통합 제련소 프로젝트에 대한 확신에 기인한다. 한국이라는 기업의 국적만이 아니라 아연·연·구리 등 기초금속 외에도 안티모니, 갈륨, 게르마늄 등 13종의 핵심광물을 통합 생산하는 세계 유일의 고려아연 제련소를 선택한 것이다. 단일 금속 중심으로 운영되는 대부분의 제련소와 달리 제련 과정의 부산물에서 희소금속을 회수해 상업적 규모로 생산할 수 있는 기술력을 입증했기 때문이다. 특히 미국 지질조사국이 지정한 60개 핵심광물 중 11종을 생산한다는 희소금속 시장에서의 대체불가능한 지위가 결정적 이유가 됐다.
한국 기업 중심의 광물 공급망 재편은 세계 공급망 리스크에서 예외일 수 없는 한국에도 전략적 다변화의 기회를 제공한다. 핵심금속 생산거점을 세계 최대 수요처인 미국에 새롭게 마련함으로써 이미 현지에 진출한 다른 한국 기업들에게 안정적 원자재 수급의 통로로 기능할 수 있다. 더욱이 미국 정부와 사실상 동격의 파트너로 참여하는 이번 프로젝트는 기업가치 제고 측면에서 의미가 크다. 지난 7월 미국 정부가 15%의 지분을 인수하며 최대주주가 된 희토류기업 MP머티리얼스는 자체 제조시설 건설 계획을 발표하면서 주가가 1년 사이 두 배 이상 상승했고 지금도 시장에서는 성장주로 평가받고 있다. 기업과 이사의 주주에 대한 책임이 강조되는 가운데 크루서블 프로젝트 역시 경영 전략의 혁신과 신사업 확장의 기준점으로 작용할 수 있다.
불과 몇 년 전까지만 해도 ‘경제와 안보의 연결이 필요한가’를 두고 논쟁했으나 이제는 그 필연성을 전제로 둘을 ‘어떻게’ 연결할 것인가가 고민이 되고 있다. 이번 통합 제련소 프로젝트는 한국 기업과 미국 정부의 파트너십이 한국 경제와 한국 정부 차원의 경제안보 협력으로 확장될 수 있음을 보여준다.
용광로 속 극한의 온도를 견디는 도가니를 뜻하는 ‘크루서블’이라는 프로젝트 이름처럼 앞으로도 핵심 산업과 기술에서 한국경제가 대체 불가결한 위상을 강화해 가기를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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