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3년 '적대적 두 국가' 들고 나온 北…대남무시정책 일관
北, 한국 관여 없이 미·일과 관계정상화가 유리하다고 판단
트럼프, 4월 북 만나 '종전' 관계정상화 담판 시도 가능성
정세 흐름 속 국익 중심 국가전략 및 대외정책 구체화해야
고유환 동국대 명예교수·전 통일연구원장 |
한반도 문제를 풀기 위한 갖은 노력에도 해결의 실마리를 찾지 못했다. 통일은 염원할수록 멀어졌고 북한 핵 문제는 해결하려고 하면 할수록 고도화하는 역설이 형성됐다. 북한과 만든 모든 합의는 사문화됐다. 이제는 남과 북이 ‘평화적’ 또는 ‘적대적’ 두 국가 해법을 공식화하는 국면에 이르고 있다. 2023년 말 북한이 대한민국과 헤어질 결심을 하고 ‘제발 좀 서로 의식하지 말고 살자’며 ‘적대적 두 국가’ 해법을 들고 나왔다. 두 국가를 지향하는 북한은 ‘내란세력들’이 군사도발을 유도했을 때도 꿈쩍하지 않았고 지금은 두 국가 정책을 헌법적·물리적으로 구체화하면서 대남 무시 정책으로 일관하고 있다.
북한이 내놓은 두 국가론은 80년의 남북관계사를 결산한 결과물이기에 다시 과거로 돌아가기는 쉽지 않을 것이다. 이재명 정부 출범 이후 일방적인 대북유화책에도 북한은 마음을 열지 않고 무대응으로 일관하고 있다. 우리 통일부가 ‘통일지향의 평화적 두 국가’ 해법을 모색하며 바늘구멍이라도 뚫으려 하지만 북한은 모든 접촉 창구를 폐쇄하고 정책전환을 구체화하고 있다. 북한이 남북관계의 패러다임을 바꿨기에 기존 해법들을 경로의존적으로 따라가서는 돌파구를 찾을 수 없다. 북한이 두 국가 해법을 들고 나온 의도를 파악하고 대응책을 마련해야 한다.
북한이 ‘통일, 동족, 화해’를 버리고 ‘교전 중인 적대적 두 국가관계’ 틀을 들고 나온 데는 무엇보다 정전체제를 무력화하는 현상 변경을 염두에 둔 것으로 봐야 할 것이다. 분단체제에서의 ‘북한’이 아닌 독립적인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으로서의 국가 정체성을 확립하고 제 갈 길을 가겠다는 의지의 표시로 두 국가 해법을 내놓은 것으로 볼 수 있다. 정전협정의 평화협정으로의 전환 없이 현재의 군사분계선과 새로운 해상경계선을 국경선으로 만들고 독립적인 사회주의 국가로서 자율성을 확보하겠다는 것이다. 북한은 이전에 실패한 대한민국의 중재자·촉진자 역할에서 교훈을 얻어 대한민국을 관여시키지 않고 북·미, 북·일 관계 정상화를 추진하는 것이 유리하다는 판단을 하고 있을 것이다. 수령체제 유지·강화·계승을 위해서는 남측으로부터 올라오는 영향력을 차단하고 자본주의 세계체제로 나가는 것이 유리하다는 생각도 했을 것이다.
북한의 두 국가 정책과 관련한 여러 의도 중에 가장 본질적인 것은 72년 동안 지속하고 있는 정전협정에 기초한 분단질서(정전체제·분단체제)를 해체하려는 시도다. 북한이 두 국가 해법을 들고 나올 수 있었던 배경에는 핵을 보유한 ‘전략국가’로서의 자신감이 있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북한을 ‘핵보유국’(nuclear power)이라고 추켜세우고 김정은 국무위원장과의 만남을 애원할 정도로 김정은의 몸값이 높아졌다. 평화의 사도, 분쟁해결사를 자처한 트럼프 대통령이 내년 4월 미·중 정상회담을 전후해 김정은이 원하는 ‘평화구상’을 들고나와 한국전쟁을 끝내고 관계 정상화를 위한 담판을 시도할지도 모른다.
지금의 미국은 미·중 전략경쟁 구도에서 한반도 문제를 바라보고 있다. 미국이 발표한 2025년 국가안보전략(NSS)에서 북한과 비핵화는 언급조차 없었다. 한반도는 대중국 봉쇄를 위한 제1 도련선(일본 규슈-대만-필리핀-말라카 해협으로 이어지는 방위선)에 인접해 있다. 한국은 일본과 함께 대중국 지역방어의 핵심 역할을 부여받았다. 북한의 두 국가 해법과 미국의 대중국 전략 사이에서 이익의 조화점을 찾을 경우 한반도를 둘러싼 지정학에 대변혁이 일어날 수 있다. ‘선미후남’(先美後南)은 불가피하더라도 페이스메이커에 머물 경우 새로운 질서 만들기에서 우리가 소외될 수 있다. 판이 바뀌는 정세 흐름을 간파하고 국익 중심의 국가전략과 대외정책을 구체화해야 할 결정적 시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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