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골든돔 방어체계 현실화
우주서 미사일 공격 탐지ㆍ요격
지구궤도 우주파편 급증하면
GPSㆍ통신위성 등 무력화돼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백악관 집무실에서 '골든 돔(Golden Dome)' 미사일 방어 체계에 관해 발표하고 있다. [로이터=연합]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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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18일 미국 백악관 오벌 오피스. 도널드 트럼프 미 대통령이 흥분한 표정으로 한 서류에 특유의 톱날 같은 사인을 했다. ‘2026 국방수권법’이 공식 발효되는 순간이었다. 국방수권법은 총 9006억 달러(약 1330조 원)에 달하는 내년 미국 국방의 전체 계획을 담은 것으로, 올해 초 트럼프 대통령이 재집권 직후 공식 발표한 ‘골든 돔(Golden Dome)' 프로젝트가 그 핵심 중 하나다. 법안에 담긴 내년 첫 골든 돔 프로젝트의 사업예산은 한국의 1년 연구개발(R&D) 예산과 비슷한 250억 달러(약 33조원)에 달한다. 앞서 지난 10월 말에는 월스트리트저널이 스페이스X가 골든 돔 프로젝트의 핵심인 ‘미사일·항공기 추적 위성망(AMTI)’ 구축 계약을 20억 달러(약 2조8000억 원) 규모로 수주할 것이라고 단독 보도하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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골든 돔, 21세기판 스타워즈
‘21세기판 스타워즈’로 불리는 골든 돔 프로젝트가 현실화하고 있다. 지난해 미국 대선 기간 중 트럼프가 골든 돔 구상을 밝힐 때만 해도 세계는 반신반의했다. 미국 본토를 겨냥한 미사일 공격을 우주에서 탐지·요격한다는 계획이 공상과학(SF) 영화처럼 황당한 데다, 5000억 달러 이상으로 추정되는 천문학적 예산도 비현실적이었기 때문이다. 골든 돔 프로젝트는 최대 수천 개의 인공위성을 지구 저궤도에 띄워 촘촘한 감시망을 구축하고, 이를 통해 적대국의 미사일 발사 원점을 실시간으로 탐지·추적하는 것이 기본 뼈대다. 이에 더해 우주 궤도에 배치된 요격용 미사일이나 레이저 무기를 장착한 위성을 활용해 적국에서 발사된 직후의 미사일을 조기에 격추하는 방안도 포함됐다.
올해 미·중 기술패권 경쟁과 전방위적 관세전쟁으로 지구촌이 혼란스런 와중에도 골든 돔은 차근차근 그 형태를 갖춰갔다. 트럼프는 임기 시작 일주일 뒤인 1월 27일 ‘미국을 위한 아이언 돔’ (The Iron Dome for America)‘이란 이름의 행정명령에 서명했다. 5월엔 총 사업비 1750억 달러 규모의 ‘골든 돔 3개년 구축 계획’ 을 공식 발표했다. 7월엔 우주군 대장 마이클 게틀린이 골든 돔 전담실(Office of Golden Dome) 수석 책임자로 취임했다. 12월 10일엔 미 하원이 골든 돔 계획이 포함된 내년 국방수권법안을 찬성 312표, 반대 112표의 압도적 차이로 통과시켰고, 일주일 뒤 열린 상원도 같은 법안을 77대 20으로 가결했다. 야당인 민주당에서도 러시아와 중국은 물론 북한까지 개발하고 있다는 극초음속 핵미사일 공격 위험에 대비하기 위해선 골든 돔이 필요하다는 데 공감했기 때문이다. 트럼프 대통령은 임기(2029년 1월) 내에 골든 돔 프로젝트의 실전 가동을 목표로 하고 있다.
신재민 기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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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가 간 군비경쟁 촉발할 골든 돔
지난 7월까지 워싱턴 D.C. 한국대사관에서 3년간 국방군수 무관으로 활동했던 김용선 예비역 대령은 “골든 돔 프로젝트는 최근 인공지능, 클라우딩 컴퓨팅, 위성 네트워크 기술 등의 발전 덕에 실현이 가능하다고 평가된다”며 “글로벌 군비경쟁 심화로 이어질 수 있다는 부정적 목소리에도 불구하고, 미국 내 전반적인 여론은 골든 돔에 대한 지지와 찬성이 우세한 편”이라고 말했다.
골든 돔의 명분은 미국의 평화를 위한 것이지만, 지구촌 차원에서 예기치 않은 어두운 그림자를 만들고 있다. 당장 골든 돔의 대상으로 지목된 국가들의 반발이 거세다. 중국과 러시아는 지난 5월 공동성명을 통해 ”골든 돔 계획의 추진은 우주를 전쟁터이자 군비 경쟁의 장으로 만들 위험을 악화시키며 국제 안보 및 군비 통제 체계를 흔들 것“이라고 밝혔다. 북한도 ”우주의 노골적인 군사화 행위“라며 비난했다. 미국의 골든 돔 프로젝트가 실현되면, 중국·러시아도 유사한 방어체계를 갖출 수 있을 뿐 아니라. 인공위성 요격과 같은 ‘우주전쟁’과 이로 인한 핵전쟁까지 벌어질 수 있다는 말이다.
인공위성 요격은 이미 SF가 아니다. 2007년 중국이 쓰촨(四川)성 시창위성발사센터에서 둥펑 미사일을 발사해, 지상 859㎞의 대기권 궤도를 돌고 있던 기상관측위성 펑윈(風雲)1C를 격추했다. 미국과 러시아 역시 앞서 인공위성 요격 실험을 한 바 있다. 상대국의 핵미사일 공격을 막기 위해 골든 돔과 같은 인공위성 방어시스템을 구축할 경우, 그 위성이 먼저 공격 대상이 될 수 있음을 증명한 사례다.
챗GPT가 그려낸 지구 저궤도를 돌고 있는 인공위성과 우주쓰레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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케슬러 신드롬의 현실화
인공위성 요격은 전면적인 우주전쟁까지는 아니더라도, 전 지구적 ‘인류 문명 퇴행’으로까지 이어질 수 있다. 이른바 ‘케슬러 신드롬(Kessler syndrome)'의 현실화다. 케슬러 신드롬은 1978년 미국 항공우주국(NASA) 소속 과학자, 도널드 케슬러 박사가 주장한 우주 재난이다. 그는 지구를 도는 인공위성들이 충돌을 반복해, 토성의 고리처럼 파손된 인공위성 잔해들이 지구를 감싸는 날이 올 것이라고 경고했다. 이렇게 되면 인류가 지구 밖으로 진출하기는커녕, 인공위성을 이용하는 모든 기술이 중지됨으로써 GPS·위성통신 등의 현대 기술 대부분을 쓸 수 없게 돼 인류 문명이 20세기 전반 수준까지 후퇴할 수 있다고 주장했다. 케슬러가 신드롬을 말하던 당시 지구궤도의 인공위성은 1000개 미만에 불과했다. 하지만 그간 국가 간 우주경쟁이 산업으로까지 발전하면서 인공위성의 수는 해가 갈수록 급증하고 있다. 유엔 우주사무국(UNOOSA)에 따르면 현재 운영 중인 인공위성만 1만2000개이며, 10㎝ 이상의 크기로 추적이 가능한 우주 쓰레기가 3만5000개를 넘는다. 우주 쓰레기의 위협은 이미 현실이 됐다. 지난달에는 중국 우주정거장에 연결된 선저우 20호 귀환 캡슐의 유리창 미세균열로 중국 우주인들이 지구로 귀환하지 못하는 사고가 발생했다. 분석 결과 이 균열은 우주 쓰레기의 충돌 때문으로 추정됐다.
최은정 한국천문연구원 우주위험감시센터장은 ”기존의 우주쓰레기만으로도 이미 지구궤도는 위험에 놓여있는데, 골든 돔과 같은 대규모 인공위성 방어시스템 구축 경쟁이 벌어질 경우 단 한 차례의 요격만으로도 연쇄반응이 일어나 케슬러 신드롬이 현실화할 수 있다“고 말했다.
최준호 과학전문기자, 논설위원 joonho@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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