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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2.23 (화)

    땜질식 처방·단속 일단 멈추고, 이주정책 근본부터 재설계하자 [왜냐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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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겨레

    지난달 16일 저녁 뚜안씨가 추락사한 대구시 달서구 성서공단 공장 정문 앞에 고인의 영정과 종이 국화가 놓였다. 금속노조 성서공단지회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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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겨레

    송은정 | 이주민센터 ‘친구’ 센터장



    “불법을 내버려 두라는 사람들이 세상에 다 있네?”



    정부의 ‘미등록 이주민 2차 합동단속’ 기간이었던 지난 10월28일 스물다섯 청년노동자 뚜안씨가 사망했다. 서울출입국사무소 앞에서 그 죽음의 책임을 묻는 피켓을 들고 있을 때였다. 지나가던 정장을 입은 사람들 몇몇이 비웃듯 이런 말을 던졌다. 조롱이 스쳐 지나간 자리에는 한 청년의 생명이 이미 사라져 있었다.



    뚜안씨는 사실 미등록 체류자가 아니었다. 그는 올해 3월 계명대를 졸업하고 구직 활동을 위해 체류를 허용받는 구직 비자(D-10)를 갖고 있었다. 그러나 한국의 지나치게 세분화된 체류 제도 아래에서는, 합법적 체류 자격을 가진 사람조차 허용된 활동을 조금만 벗어나면 곧바로 ‘불법’이 된다. 유학생, 구직자처럼 취업이 제한된 비자 종류는 허용 업종이 따로 정해져 있고, 그 범위를 벗어나 일하면 단번에 단속 대상이 된다. 누가 ‘불법’이 되는지 정확히 아는 것도 쉽지 않다.



    많은 이주민들은 복잡한 제도 사이에서 자신을 지키기 어려운 채 ‘불법’이라는 낙인 속으로 밀려난다. 취업 자격이 있는 이주민도 마찬가지다. 고용허가제 노동자는 임금이 체불되더라도, 산업재해를 당해도, 폭행을 당해도 사업장 변경을 하지 못한 채 피해를 회복하기 위한 방안으로 결국 미등록 체류를 선택하기도 한다.



    뚜안씨의 사망은 이재명 대통령이 여러차례 강조해 온 ‘외국인 노동자에 대한 인권 보호’라는 메시지와 현실 사이의 간극을 적나라하게 드러냈다. 이 사건은 단순히 단속반이 떠난 다음에 발생한 사건이라고 치부할 문제가 아니다. 이재명 정부가 어떤 철학과 방향으로 이주 정책을 설계할 것인지에 대한 근본적인 질문을 우리 앞에 던지고 있다.



    지난 7월 이재명 대통령의 “외국인 노동자의 인권을 침해하는 행위에 철저하게 대응해야 한다”는 발언 이후에 여러 부처가 대책 마련에 나서는 듯 보인다. 이전 정부와 달리 법무부 공무원들도 국회 토론회에 빠짐없이 참석하고, 현장에서 바꿀 수 있는 규정이나 법 조항을 찾느라 분주해 보인다. 그러나 이러한 노력만으로 근본적인 변화에 닿기 어렵다. 이주민 정책은 오랫동안 산업계 요구, 교육 제도, 단속 정책 등이 따로 움직이며 단편적으로 누적되어 왔다. 지금 체계는 이미 상호 충돌을 일으키고 있다. 지역 소멸에 대응한다며 지역 특화 비자까지 신설해 유학생과 숙련 외국인을 유치하고, 취업 인력 쿼터(할당량)는 계속 늘리면서 한편에선 단속과 추방이 일상적으로 이뤄지고 있는 식이다.



    뚜안씨가 단속을 피해 세시간 동안 공포에 떨다 추락해 사망한 것은 어떤 법이 미비해서가 아니었다. 실제로 한국의 체류 제도는 노동력 수요와 규제 방식 사이의 구조적 모순을 안고 있다. 이주·인권 단체들은 “사회 대개혁”을 외친 지난 대선 때부터 이주·인권 정책의 전면적이고 근본적인 변화가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지금은 사업장 변경 제한이든, 임금 체불이든, 산업재해든, 불법 파견이든, 폭행이든 특정 이슈가 불거질 때마다 해오던 땜질식 처방으로는 어떤 개선도 기대하기 어려운 지경이 됐기 때문이다. 기존의 저임금 외국인력 도입 정책에서 벗어나 모든 체류 자격에서 노동하는 이주민 전체를 아우르는 통합적 이주노동 정책이 필요하다.



    하지만 정부 부처 간 칸막이도 구조적 문제를 키운다. 고용허가제 노동자가 아니면 고용노동부는 책임이 없다 하고, 한국에서 대학을 졸업했는데도 교육부는 관여할 일이 아니라고 한다. 동일한 사람을 두고 서로 다른 목표가 작동하는 사이, 제도 간 틈새로 이주민의 생명과 권리가 추락한다. 지금 한국에서 이주민 정책을 통합적으로 책임질 곳은 어디인가 묻게 되는 이유다.



    갈 길을 모를 땐 멈춰야 한다. 구조적 개선을 이야기한다면, 정부가 먼저 이주민의 인권을 침해하는 방식의 정책 집행을 중단해야 한다. 특히 미등록 체류자를 대상으로 한 단속은 지금 체계에서 가장 큰 인권 침해 위험성을 안고 있다. 단속 중단은 혼란의 시작이 아니라 한국 사회가 이 문제를 다시 설계하기 위한 첫번째 발걸음이다.



    이주민 정책은 이제 임시 처방이 아니라 근본적 전환이 필요하다. 단속 중심의 행정에서 벗어나, 체류 안정성과 노동권을 보장하는 방향으로 나아갈 때 비로소 우리는 뚜안씨의 죽음 앞에서 최소한의 책임을 다했다고 말할 수 있을 것이다.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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