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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2.23 (화)

    [세상 읽기]국정철학은 공유하되 전문성은 검증돼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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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대통령실이 부처 업무보고를 역대 정부 가운데 처음으로 생중계하면서 이전 정부에서 임명된 공공기관장 인사의 한계가 고스란히 드러났다. 인천국제공항공사 업무보고에서 공사 사장이 핵심 현안과 공항 운영에 대한 기본적 이해를 제대로 설명하지 못하자 대통령의 질책이 이어졌다. 업무보고 이후 노조는 이 사례가 사장에게 요구되는 최소한의 전문성과 책임의식이 결여돼 있음을 보여준다고 지적했다. 개인의 역량을 넘어, 공공기관 인사 기준이 어디까지 무너져 있는지를 드러낸 장면이었다.

    이 문제가 특정 정부만의 일은 아니다. 다만 윤석열 정부 시기에서는 전문성과 무관하다는 비판을 받은 인사와 임기 말까지 이어진 이른바 알박기식 임명이 반복되면서 공공기관 인사 구조의 취약성이 더욱 선명하게 드러났다. 그 결과 상당수 공공기관장과 상임감사가 임기 만료를 앞둔 지금, 새 정부로서는 더 이상 미룰 수 없는 인사 개편 과제가 눈앞의 현실로 다가왔다.

    최근 불거진 김남국 전 대통령실 디지털소통비서관 논란 역시 같은 문제의 연장선에 있다. 보도에 따르면 문진석 더불어민주당 원내수석부대표와 김 전 비서관은 문자메시지를 통해 민간 협회장 인사와 관련한 청탁을 주고받았다고 한다. 대통령실이 그의 사직서를 곧바로 수리한 과정은, 인사 개입에 대한 사회적 경계가 왜 필요한지를 단적으로 보여준다. 민간 영역조차 연고에 따른 인사 개입 논란에서 자유롭지 못한 현실에서, 공공기관 인사가 공정성과 전문성의 원칙하에 이뤄지고 있다고 말하기는 어렵다. 공공기관 임원 자리가 선거캠프 출신이나 여당 인사들에게 논공행상처럼 배분된다는 지적이 나온 이유다.

    문재인 정부 시절에도 공공기관 임원 공모에 지원했던 A씨가 최종 면접을 앞두고 “내정자가 있다”는 메시지를 받았다는 보도가 있었다. 공모는 진행됐지만 결과는 이미 정해져 있었다는 뜻이다. 형식만 남은 공모 제도가 인사에 대한 불신을 키워온 구조적 이유다. 문제의 핵심은 사람이 아니라 구조에 있다. 공공기관 임원 선임에는 임원추천위원회와 공공기관운영위원회라는 제도가 존재하지만, 이 장치들은 권력으로부터 충분히 독립돼 있지 않다는 의혹이 반복된다.

    이 구조를 바꾸지 않으면 같은 문제는 되풀이될 수밖에 없다. 임원추천위원회에는 직원 대표나 외부 추천 인사를 참여시키고, 공공기관운영위원회는 민간위원이 실질적 다수를 차지하도록 재편해야 한다. 기관 설립 목적과 직결된 최소한의 전문성 기준 역시 법과 내부 규정에 명확히 명시할 필요가 있다. 비공식 청탁이나 인사 개입이 확인될 경우에는 실질적인 제재가 뒤따라야 한다. 직원 채용 과정에서 적용되는 이해충돌 검증과 참관 제도가 정작 기관 책임자 인사에서는 예외로 남아 있는 현실부터 바로잡아야 한다.

    공공기관 임원은 대통령과 정권의 국정철학을 공유해야 한다. 그러나 철학의 공유가 전문성 결여를 정당화할 수는 없다. 공공기관장은 학습의 대상이 아니라, 이미 검증된 책임자여야 한다. 김대중 전 대통령이 즐겨 인용한 네 글자가 있다. 맹자가 제시한 인사 원칙인 ‘입현무방(立賢無方)’이다. 인재를 등용할 때 출신이나 연고가 아니라, 능력과 책임을 기준으로 삼아야 한다는 뜻이다.

    윤석열 정부에서 임명된 공공기관장과 상임감사의 임기가 마무리되는 지금, 이재명 정부의 인사 원칙은 선언이 아니라 결과로 평가받게 된다. 철학을 공유하되 전문성에는 타협하지 않는 기준을 세울 수 있는지, 공정한 절차가 실제로 작동하는지를 국민은 지켜볼 것이다. 업무보고 생중계가 우리 사회에 던진 메시지는 분명하다. 공공기관 인사는 더 이상 관행의 문제가 아니라, 실력과 책임으로 증명돼야 할 공적 기준의 영역이다.

    경향신문

    이지문 내부제보실천운동 상임고문


    이지문 내부제보실천운동 상임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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