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4일 오전 서울 성북구 안암동 영철버거 앞에 이영철 씨를 추모하는 꽃이 놓여 있다. 뉴스1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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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0년대 이후 고려대를 다닌 이들이라면 누구나 한 번쯤 떠올리는 햄버거집이 있습니다. 주머니가 가벼운 대학생의 ‘든든한 1000원 한 끼’가 됐던 영철버거입니다. 영철버거를 만든 이영철 영철버거 대표가 13일 향년 58세로 세상을 떠났습니다.
이 대표는 가난했던 집안 형편 때문에 초등학교도 마치지 못했습니다. 11세에 서울로 올라와 공장 노동자, 가스 배달, 중식당, 포장마차, 건설 현장 등 안 해본 일이 없을 만큼 여러 직업을 전전하며 살았습니다. 그러다 2000년 서울 성북구 고려대 앞에서 리어카를 세우고 햄버거를 팔기 시작했습니다.
돼지고기와 양배추, 양파를 볶아 핫도그 빵에 가득 넣은 버거는 단돈 1000원이었고 콜라는 무제한이었습니다. 순식간에 영철버거는 고려대 앞 명물이 됐습니다. 이 대표는 해마다 고려대에 장학금을 기부했고 고려대와 연세대가 맞붙는 고연전 때마다 무료로 버거를 나눠줬습니다. 그 보답으로 고려대는 2010년 졸업식과 입학식에 영철버거 1만 개를 주문했습니다. 정식 매장을 열고 전국 가맹점까지 둔 이 대표에게는 ‘대학가 성공 신화’라는 이름도 따라붙었습니다.
하지만 정이 많았던 그는 때로 손해를 봤습니다. 가맹점주가 울면서 찾아오면 집을 담보로 돈을 빌려 도와줬고, 손해가 발생해도 감수하는 쪽을 택했습니다. 그런 선택은 결국 적자로 돌아왔습니다. 어쩌면 프랜차이즈라는 방식 자체가 그의 삶과 맞지 않았는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이 대표가 베푼 마음은 헛되지 않았습니다. 2015년 적자를 견디지 못해 가게 문을 닫았을 때 학생들이 나섰습니다. 수천 명의 학생과 동문이 자발적으로 영철버거 살리기 크라우드펀딩에 참여해 이 대표는 가게를 다시 열 수 있었습니다.
이 대표가 삶을 대하는 태도는 누구보다 진지했습니다. 그는 적자를 감수하면서도 학생 주머니 사정을 살펴 끝내 가격을 올리지 않았습니다. 매년 장학금을 기탁하고 동아리와 농구대회, 축제를 후원했습니다. 그의 고집으로 1000원짜리 버거는 하나의 상징이 됐던 겁니다.
이 대표는 생전 큰 부를 쌓지는 못했습니다. 그러나 빈소를 채운 꽃과 손 편지, 이어진 추모의 말들은 어떤 삶이 진짜 성공이었는지를 조용히 말해주고 있습니다.
이의진 도선고 교사 roserain9999@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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