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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2.23 (화)

    [36.5˚C] 예견된 역효과, 멈출 수 있는 용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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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편집자주

    36.5℃는 한국일보 중견 기자들이 너무 뜨겁지도 너무 차갑지도 않게, 사람의 온기로 써 내려가는 세상 이야기입니다.


    한국일보

    서울고등법원(고법)에서 내란전담재판부 설치와 관련해 대법원이 내놓은 대안의 실행 방안을 논의하기 위한 전체 판사회의가 예정된 22일 서울고법이 위치한 서울 서초구 서울법원종합청사. 뉴시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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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04년 가을, 정치권에는 헌법재판소를 향한 분노가 번졌다. 헌재가 '관습헌법'이라는 낯선 논리로 행정수도 이전 법안을 위헌 판단한 직후였다. 당시 노무현 대통령이 비공개로 "헌재에 의한 쿠데타"라고 표현했을 정도라니, 동요의 진폭을 짐작할 수 있다. "국회에 도전한" 헌재와 정면 법투(法鬪)를 벌이자는 주장도 분출했다. 여당 열린우리당은 다수였고 명분도 있었다.

    하지만 시간이 흐를수록 논의는 "더디 가도 제대로 가야 한다"로 수렴했다. 여당이 법투에 몰두하면 헌정 질서가 소모전에 빠질 수 있다는 인식 때문이었다. 우회 방안을 논의하며 시간을 벌었고 혼란은 행정중심복합도시 구상으로 봉합됐다. 헌재를 적으로 돌리고, 판결을 둘러싼 질서 자체를 흔들 때 남을 상처를 알아서다. 당시 판단이 옳았냐는 책임론은 오로지 헌재를 향하고 있다.

    그에 비하면 최근 여당 더불어민주당은 훨씬 공세적이다. 검찰·사법부 등 '개혁 대상'을 단호하게 상대한다. 좋게 보면 결연하고 민첩하다. 냉정히 보면 위험과 파장을 다소 얕본다. 입법 행보가 '응징'으로 읽히고, 개혁 찬성 측이나 진영 내부에서조차 "현장 혼란을 초래한다"는 지적이 자주 나오는 이유다.

    '강한 여당'의 내란전담재판부 논의는 두 분노에서 시작했다. "재판이 너무 느리다"와 "조희대와 지귀연을 믿을 수 없다"는 것. 속도 지적엔 모두 공감했지만, 경기 중 심판을 바꾸려 한 법안은 위헌 논란 속에 여러 차례 손질됐다. 그 결과 최종 법안은 사법부 내부 계획과 상당히 겹치는 모습이 됐다. 배당 방식 차이는 남았지만 추천 방식을 고수하면 위헌 논란이 남고, 서울고법에 맡기면 법안이 굳이 필요하지 않다.

    하지만 강행 기조는 유지되고 있다. 멈출 수 없어 달리는 정치 관성과 매몰 비용 정서를 이해 못할 바는 아니지만, 멈춘다고 노력이 다 무위가 되는 건 아니다. 국회의 행보는 일종의 재촉이 돼 사법부가 '신속한 집중 심리' 조치에 나서게 했고 그 자체로 일정한 효과를 남겼다.

    남은 건 법안이 가져올 파장이다. '입법부가 법률로 재판부 구성에 관여했다'는 논란은 피고인 측에 절차적 다툼의 빌미를 줄 여지가 크다. 위헌법률심판 제청 가능성이 거듭 지적됐다. 헌재가 국회의 손을 들어준다 한들, 그 과정에서 항소심 일정이 지연되면 최초 명분이었던 '신속한 재판'은 흔들린다.

    '사법 불신'은 꼭 해결해야 할 난제다. 여당이 앞장서 해법을 모색한다는 건 박수 칠 일이다. 하지만 목적이 정의롭다는 도덕적 확신만으로 강행하기에는 '예견된 역효과'가 큰 일들이 있다. 결국 항소심이 지연된 뒤에 "이 상황을 조희대가, 지귀연이, 사법부가 자초했다"고 외친다 한들, 그 화살은 정말 사법부만을 향하게 될까. 책임 전가로 넘어서기에는 '내란 단죄'라는 사안의 무게가 너무 크다.

    김혜영 기자 shine@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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