점(사실들): 흔들리는 멜론, 급성장 유튜브 뮤직
선(맥락들): 탑100 차트보단 알고리즘의 시대
면(관점들): 알고리즘·해외플랫폼, 환영해야 할까
스포티파이(왼쪽)와 유튜브 뮤직(오른쪽)의 연말 음악 리캡(요약). 사회관계망서비스(SNS) 갈무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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멜론이 안 보입니다. 한 해를 마무리하는 12월, 사회관계망서비스(SNS)상에서는 각종 음원 스트리밍 플랫폼에서 제공하는 ‘리캡’(요약) 서비스로 자신이 1년 동안 어떤 음악을 들었는지 인증하는 것이 유행인데요. 유튜브 뮤직·스포티파이 등 각종 해외 플랫폼들 사이, 어쩐지 멜론 등 한국 플랫폼의 리캡은 보이지 않습니다.
한때 한국 가수의 인기를 판단하는 척도로 막강한 존재감을 자랑하던 멜론이 어디로 간 걸까요? 이용자들이 음악을 듣는 방식이 바뀌고 있는 걸까요? 오늘 점선면은 변화의 중대 기로에 선 한국 음원 플랫폼들의 상황과 한국 음악의 미래를 짚어보겠습니다.
점(사실들): 흔들리는 멜론과 급성장한 유튜브 뮤직
불과 5년 전인 2020년까지만 해도 멜론은 한국 음원 스트리밍 시장의 독보적 강자였습니다. 데이터 분석 기업 와이즈앱·리테일의 조사에 따르면 2020년 10월(안드로이드 기준) 멜론의 이용자 수는 505만명으로, 2위 지니뮤직(229만명)과 3위 유튜브 뮤직(195만명) 이용자 수를 합친 것보다 많았습니다. 그러나 멜론 이용자 수는 점차 감소해 2년 만인 2022년 유튜브 뮤직에 1위 자리를 내줬습니다.
멜론만의 이야기는 아닙니다. 한국 토종 플랫폼인 지니뮤직과 플로 역시 고전을 면치 못하고 있는데요. 또다른 해외 플랫폼인 스포티파이가 지난 8월(안드로이드+iOS 기준) 424만명의 이용자 수로 3위 플랫폼에 올라선 겁니다. 지니뮤직(257만명)과 플로(176만명)는 4위, 5위에 머무르고 있습니다.
음악 스트리밍 앱 월간 이용자 추이(안드로이드+iOS 기준). 와이즈앱·리테일 갈무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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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맥락들): 탑100보단 알고리즘의 시대
처음 한국 음원 시장은 해외에서 진입하기 어려운 곳으로 여겨졌습니다. 2000년대 초중반 이동통신사들이 휴대용 기기에 음원 서비스를 결합하며 성장했기 때문인데요. 요금제에 몇천원을 더하는 식의 음원 서비스는 이용자들을 단단히 묶어두는 역할을 했습니다.
특히 SK텔레콤이 개시한 멜론은 한국 디지털 음원 서비스의 선두 주자로서 방대한 음원 수와 편리한 서비스를 선보이며 입지를 다졌습니다. 이용자가 많아지면서 멜론 차트(순위표)는 공신력을 더해갔고, 가수들에게는 성공의 기준으로 여겨질 만큼 한국 대중음악 트렌드의 절대적인 지표가 됐습니다.
역설적으로 멜론의 발목을 잡은 것도 ‘차트’였습니다. 멜론의 메인 차트인 실시간 차트는 아이돌 팬덤이 순위 경쟁을 벌이는 스트리밍 전쟁터로 변질됐고, 대중의 체감 인기와 순위 사이의 괴리는 점점 커졌습니다. 2010년대 후반에 들어서 반복된 음원 사재기 논란은 멜론의 신뢰도를 더욱 떨어뜨렸습니다. 이에 멜론은 실시간 차트를 폐지하고 24시간 이용량을 반영한 탑100(상위 100곡) 차트로 개편했지만, 이미 이용자들의 피로감은 누적된 뒤였습니다.
그 사이 해외 플랫폼들은 개인화된 알고리즘 추천을 앞세워 틈을 파고들었습니다. 이용자의 취향을 분석해 음악을 선별하고, 해외·비공식 음원까지 폭넓게 제공하는 방식으로 신선함을 선사했는데요. 일부 플랫폼에선 영상 콘텐츠까지 음원으로 서비스해 선택지가 더욱 넓어졌습니다.
일러스트 | 생성형AI 제미나이 ‘나노바나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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면(관점들): 알고리즘·해외 플랫폼, 좋기만 한 걸까
최근 5년 경쟁의 양상이 달라진 건 ‘차트보다 취향을 중시하는 흐름’ 때문이라는 분석이 나옵니다. 권현석 한양대 음악연구소 연구원은 점선면과 통화에서 “탑100 차트를 보면 어떤 음악들이 자주 소비되는지 알 수 있는데 그러면 그 유행에서 벗어나려는 반작용도 생긴다”고 말했습니다. 탑100이 기준이 되다 보니 일종의 인기 공식이 생기고, 차별화된 음악을 찾게 된다는 겁니다. 해외 플랫폼을 통해 다양한 감성을 충족할 수 있는 기술과 조건까지 뒷받침되니 이용자들은 취향을 좀 더 적극적으로 발굴할 수 있게 됐고요.
뮤지션들에게 새로운 기회가 열린다는 점도 해외 플랫폼이 주목받는 이유 중 하나입니다. 차우진 음악평론가는 통화에서 “해외 시장에 진입하는 비용을 정말 압도적으로 낮춰주기 때문에 훨씬 기회가 많아졌다”며 특히 자본이 부족한 인디 뮤지션들에게 긍정적일 것이라고 평가했습니다. 그는 2021년 카카오엔터테인먼트가 멜론을 합병하며 음원 제작부터 유통에 이르기까지 시장을 장악했을 때 “인디 뮤지션 쪽에서 문제 의식이 컸다”고 말했습니다. 멜론 차트에 진입해야 생존이 가능한데 마케팅 등에서 공정한 경쟁이 이뤄지지 않았다는 겁니다.
그런데 해외 플랫폼의 진출, 정말 환영하기만 할 일일까요? 이제는 도리어 해외 플랫폼 독과점에 대한 우려가 나오기 시작했습니다. 공정거래위원회는 2023년부터 구글의 유튜브 뮤직 끼워팔기 혐의를 조사했습니다. 광고 없이 영상을 시청할 수 있는 유튜브 프리미엄 요금제에 유튜브 뮤직을 필수로 넣어 공정한 시장 질서를 해치는 건 아닌지 살펴보겠다는 것이었는데요. 공정위 조사에 구글은 자진시정 차원에서 지난달 유튜브 뮤직을 뺀 대체 요금제를 출시하기로 했습니다.
밴드 콤아겐즈가 2023년 2월 서울 마포구 상수동 제비다방에서 공연하고 있다. 이준헌 기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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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종 플랫폼과 해외 플랫폼의 공정한 경쟁을 위해 정부가 개입할 필요가 있다는 목소리도 나옵니다. 차우진 음악평론가는 한국 영화 산업이 발전할 수 있었던 배경에 ‘스크린 쿼터제’가 있었다며, 음악 산업 역시 최소한의 규칙이 필요하다고 말합니다. 그는 “결국에는 돈이 (기업에) 들어갔다가 다시 어디로 재투자가 되느냐의 문제”라며 “한국의 사업자들에겐 한국 뮤지션, 창작자 혹은 팬들에게 재투자해서 시장이 커지는 게 어찌 됐든 중요하지 않겠나”라고 말했습니다.
음악을 제대로 즐기려면 플랫폼에서 잠시 벗어나야 한다는 의견도 있습니다. 배순탁 음악작가는 통화에서 음원 플랫폼의 추천 알고리즘에 의존하다 보면 “취향이 양적으로 늘어날 뿐 질적으로는 결국 비슷하다”고 지적했는데요. 취향은 낯선 것에 대한 호기심에서 비롯하는데 알고리즘은 오히려 이를 차단하기 때문입니다. 배 작가는 “가끔씩은 (플랫폼에서) 로그아웃해서 나와 완전히 다른 취향의 음악을 들어보자”고 제안합니다.
지난 20여년간 한국 대중음악사에서 멜론을 떼놓고 이야기할 순 없습니다. 멜론을 비롯한 한국 음원 스트리밍 플랫폼은, 시대의 마감일지 또 다른 전환일지 가늠하기 어려운 갈림길에 서 있는데요. 급속도로 성장하는 해외 플랫폼과 새로운 음악을 갈망하는 이용자들 사이에서, 건강한 한국 음악 생태계를 만들기 위해서는 정부·기업·소비자 모두의 고민이 필요해 보입니다. 연말을 맞아 각종 차트와 알고리즘 추천이 쏟아지는 지금, 우리는 어떤 방식으로 음악을 듣고 있는지 한 번쯤 돌아보면 어떨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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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희승 인턴기자 yojosonew@kyunghyang.com, 문광호 기자 moonlit@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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