컨텐츠 바로가기

    12.22 (월)

    [詩想과 세상]모험

    댓글 첫 댓글을 작성해보세요
    주소복사가 완료되었습니다
    경향신문

    <이미지를 클릭하시면 크게 보실 수 있습니다>


    언젠가 나는 아무도 살지 않는 별장 마을을 방문한 적이 있다. 모든 집은 장식처럼 하얗고, 초록 덧문은 단단히 닫혀 있었다. 별장 마을의 중앙에는 풀로 덮인 초록 광장이 있었고, 그 광장 한가운데에는 아주 오래된 첨탑의 교회가 서 있었다. 높은 종탑이 딸려 있었고, 큰 시계는 작동했지만 종은 울리지 않았다. 그 종탑 아래에는 배가 몹시 불룩한 붉은 암소 한 마리가 서 있었다. 소는 움직이지 않았고, 졸린 듯 되새김질을 하고 있었다. 시계의 분침이 15분, 30분, 혹은 정각을 가리킬 때마다 소는 이렇게 울부짖었다. “어이! 그렇게 겁먹지 마!” 그리고는 다시 되새김질을 시작했다.

    -바실리 칸딘스키(1866~1944)

    추상화의 거장 칸딘스키가 시를 썼다는 사실을 얼마 전에 알았다. 1909년부터 1911년까지 썼다는 38편의 산문시와 56점의 목판화로 구성된 시집 <울림들>에는 그의 실험적인 예술 이론이 녹아 있다.

    이 시는 그가 언젠가 방문한 적이 있는 “아무도 살지 않는 별장 마을”에서 만난 소 이야기다. “별장 마을의 중앙”에는 광장이 있고, “아주 오래된 첨탑의 교회”가 있다. “높은 종탑”의 “큰 시계는 작동했지만 종은 울리지 않았다”. 그의 시는 다양한 색깔이 있어 만지면 손에 묻어날 것만 같다.

    소는 “시계의 분침이 15분, 30분, 혹은 정각을 가리킬 때마다” 칸딘스키를 보며 이렇게 울부짖었다. “어이! 그렇게 겁먹지 마!”라고. “15분, 30분” 시계의 반복적 리듬은 버려진 별장의 멈춘 시간과 대비를 보여주면서 묘한 긴장감을 일으키고 있다.

    이 시에서 칸딘스키는 “종탑 아래” 있는 소를 보고 있다. 아니다. 겁먹은 칸딘스키를 소가 보고 있다. 그가 시도했던 예술적 모험처럼, 사실은 소가 모험을 하고 있는 것인지도 모른다. 우리에게 시간의 의미를 다르게 보여주면서.

    이설야 시인

    ▶ 매일 라이브 경향티비, 재밌고 효과빠른 시사 소화제!
    ▶ 더보기|이 뉴스, 여기서 끝나지 않습니다 → 점선면

    ©경향신문(www.khan.co.kr),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기사가 속한 카테고리는 언론사가 분류합니다.
    언론사는 한 기사를 두 개 이상의 카테고리로 분류할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