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준범 기업거버넌스포럼 부회장, 지주사 규제 완화에 경고
천준범 한국기업거버넌스포럼 부회장이 지난 16일 서울 여의도의 한 카페에서 경향신문과 인터뷰하고 있다. 정지윤 선임기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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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도체 산업에 한해 금산분리 완화, 증손회사의 금융리스업 허용
견제장치 없이 문어발식 확장 방치…고양이에게 생선 맡기는 격
천준범 한국기업거버넌스포럼 부회장(변호사)은 정부가 SK하이닉스의 반도체 투자 확대 지원을 위해 ‘지주회사 규제 완화’를 추진하는 것에 대해 “‘빌려주는 회사’와 ‘빌려 쓰는 회사’가 모두 SK그룹이라는 점이 가장 큰 문제”라고 지적했다. ‘이해충돌’이 발생할 수 있는 지배구조인데 견제장치가 제대로 마련되지 않아 리스크가 크다는 것이다.
천 부회장은 지난 16일 경향신문 인터뷰에서 “국민 돈이 들어간 국민성장펀드가 최대 투자이익을 얻으려면 하이닉스를 상대로 투자 대상·조건을 치열하게 협상할 수 있어야 한다”며 “지금 구조에서는 빌려주는 쪽과 빌려 쓰는 쪽이 모두 SK그룹이라 SK하이닉스에 유리한 쪽으로 거래 조건이 정해질 가능성이 크다”고 말했다.
정부안은 반도체 산업에 한해 손자회사의 증손회사 지분 보유 요건을 현행 100%에서 50%로 완화하고, 금산분리 규제를 완화해 증손회사의 금융리스업을 허용하는 것이다. 이렇게 되면 지주회사 체제의 손자회사인 SK하이닉스가 50%, 국민성장펀드 등 외부 투자자가 50%씩 참여하는 자회사(합작회사)를 설립할 수 있다. SK하이닉스 자회사가 외부 투자를 받아 반도체 공장을 지으면 SK하이닉스가 이를 빌려 쓰는 구조다.
천 부회장은 SK그룹이 이처럼 복잡한 방식을 추진하는 이유를 지배주주가 지배력을 유지하면서 외부 투자는 받고 싶기 때문이라고 분석했다. 총수 일가가 적은 지분으로 SK하이닉스를 지배하고 있는 상황에서 증자를 통해 외부 투자를 받으면 지분율이 희석된다. 대출의 경우에도 이자 부담이 발생한다.
천 부회장은 투자 실패 시 “국민성장펀드가 큰 리스크를 안게 된다”고 경고했다. 과거 부동산 프로젝트파이낸싱(PF) 부실과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때처럼 위험이 축적되면 한번에 무너질 수 있다는 것이다. 그는 “지금 구조는 이를 견제할 외부 감독 장치가 없다”며 “전문가 검증과 감독 구조가 없으면 구멍이 날 수 있다”고 짚었다.
유사 해외 사례와 비교해도 정부안에 문제가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메타는 올해 사모펀드 ‘블루 아울 캐피털’과 각각 지분 20%, 80%씩을 출자해 데이터센터 설립을 위한 합작회사를 세웠다. 합작회사가 자본을 조달해 데이터센터를 지으면 메타는 임차료를 내고 이를 빌려 쓰기로 했다.
천 부회장은 “메타의 합작회사는 사모펀드 지분이 80%라 실질적인 의사결정을 사모펀드가 한다”며 “빌려주는 사모펀드와 빌리는 메타가 서로 대립 관계가 되고, 사모펀드는 투자금 회수를 위해 최대한 노력하게 된다”고 설명했다. 그는 “반면 하이닉스 합작회사는 5 대 5, 혹은 사실상 하이닉스 우위 구조가 될 가능성이 커 합작회사가 하이닉스에 유리하게 움직일 것”이라고 내다봤다.
천 부회장은 SK하이닉스가 합작회사 지분을 50%만 가져도 되도록 규제를 풀어주더라도 투자 대상·조건에 대한 협상권은 펀드 측(외부 주주)이 확보하는 방안을 대안으로 제시했다. 합작회사의 대표이사 선임이나 이사회 구성에 외부 투자자 측 참여도 필요하다는 게 천 부회장 설명이다.
정부의 규제 완화 추진으로 지배주주가 적은 지분으로도 여러 계열사를 지배하는 ‘문어발식 확장’ 여지도 커졌다. 앞으로는 반도체 등 첨단산업에 한해 지주회사 체제가 ‘지주회사→자회사→손자회사’의 3단계에서 ‘지주회사→자회사→손자회사→증손회사’의 4단계로 늘어날 수 있다.
천 부회장은 “문어발식 확장을 허용한다면 그에 상응하는 감독·견제 구조를 반드시 만들어야 한다”며 “지금은 그런 장치를 만들자는 사회적 논의조차 없어 보인다”고 지적했다.
김윤나영 기자 nayoung@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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