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보다 200년 앞선 1405년 명나라 정화의 보선(寶船) 함대가 해상 원정에 나섰다. 기록에 따르면 기함인 보선은 길이 137m, 너비 56m의 초대형 함선이었다. 신대륙을 발견한 콜럼버스의 배보다 4배 이상 컸다. 지금 우리 해군 구축함 광개토대왕함과 길이는 비슷하고, 폭은 4배 가까이 넓다. 정화의 함대는 아프리카까지 진출해 명나라의 국력을 과시하고 조공을 받았다.
▶산업혁명으로 거함·거포의 시대가 열렸다. 해군 전략 사상의 아버지로 불리는 미 해군 제독 앨프리드 머핸은 1890년 해양력의 중요성을 밝힌 책을 냈다. 시어도어 루스벨트 대통령이 이 책에 영감을 받아 대백색 함대(Great White Fleet)를 만들었다. 선체를 흰색으로 도색한 최신예 대형 전함 16척과 구축함·보조함이 대함대를 이뤄 1907년 출항했다. 2년 동안 전 세계를 순항하며 국력을 과시했다. 이에 자극받은 일본이 만든 것이 한때 태평양과 인도양을 호령한 연합함대다. 연합함대는 진주만 습격을 통해 항공모함 함재기로 적 함대를 격멸할 수 있다는 사실을 세계 최초로 입증했다.
▶태평양전쟁에서 거포를 가진 거함들이 항공기 공격에 맥없이 침몰하자 전함은 작아지는 추세로 바뀌었다. 현재 세계 최강인 미 이지스함은 사상 최대 전함 일본 야마토의 8분의 1 크기에 불과하지만 전투력은 비교 불가로 강하다. 이제 진짜 함대는 미국의 항모 전단밖에 없다. 하지만 항공모함조차 최근엔 극초음속 미사일의 위협에 직면했다. AI가 탑재된 무인 유령 함대가 다음 세대의 함대가 될 것으로 전망되고 있다.
▶그런데 트럼프가 ‘황금 함대(Golden Fleet)’ 구상을 발표했다. 2차 대전 때와 같은 크기의 대형 전함에 레이저 무기 등 최신 장비를 탑재하고, 이를 무인·소형 호위함으로 둘러싼다는 것이다. 해군의 변화 추세와 거꾸로 가는 이 구상은 100여 년 전 대백색 함대의 재연 같다. 그 장래는 미지수이지만 한국 조선업에 도움이 되길 바랄 뿐이다.
일러스트=이철원 |
[양승식 논설위원]
- Copyrights ⓒ 조선일보 & chosun.com,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
이 기사의 카테고리는 언론사의 분류를 따릅니다.
기사가 속한 카테고리는 언론사가 분류합니다.
언론사는 한 기사를 두 개 이상의 카테고리로 분류할 수 있습니다.
언론사는 한 기사를 두 개 이상의 카테고리로 분류할 수 있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