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모 잃은 친구의 울음섞인 전화
‘부재중’이란 낯섦엔 적응이 필요
이틀 전 입대한 아들이 눈에 밟혀
모두, 돌아올 집 있단 걸 잊지 말길
“어머니 잘 모셨어?” 뒤늦게 묻는다. 그 말이 꼭지를 땄는지 친구가 소리 내어 운다. 쉰 넘은 사내가 짐승처럼 울부짖는다. 나는 전화기를 가만히 들고 그냥 있을 수밖에 없다. 간간이 “어째야 쓰까” 하고 고향 사투리로 우는데 어쩔 도리가 없다. 가까이에 산다면 그를 붙들고 술집에 앉았을 것이다.
전성태 소설가 국립순천대 교수 |
어미 잃은 자식이 서러운 건 인지상정이지만 무엇이 그리 사무치는가. 친구는 장례 치르고 돌아와 직장 동료들과 한잔하고 귀가하는 길인지 모른다. 정신없이 어머니를 보내고 허전한 마음 주체할 길 없어 허름한 친구 하나를 붙들었으리라. 나도 고향에서 그의 어머니가 차려주는 밥을 얻어먹은 적이 있다. 몸피가 작고 안경을 쓴 그 어머니가 떠오른다.
십여 년 전 이맘때 나 역시 어머니를 잃었다. 조문객을 받고 장례 치르는 동안 나는 제대로 울지 못했다. 돌아보면 형제들과 누이가 있고, 아내와 아이가 있는 든든한 상주였다. 승화원 뜨거운 불구덩이에 어머니를 모시고 홀로 뜰로 나와 담배를 물었다. 사흘째 눈이 날리고 있었고, 나는 앙상하게 벗은 겨울 산을 앞에 두고 울음이 터졌다. 목 놓아 울었다. 호곡장(號哭場)이라고, 울기 좋은 곳이 있다는데 내게는 그 호젓한 뜰이 그런 데였던 듯싶다. 아이처럼 어머니를 외쳐 부르며 후련하게 울어버렸다.
이제 친구가 울음을 거두고 잠잠해졌다. 그가 아내나 자식들 앞에서는 차마 보일 수 없는 일을 해냈다고 생각한다. 친구에게 어디인지 묻는다. 그는 코를 삼키며 집으로 가는 길이라고 대답한다. 불 밝힌 제 아파트가 보이는 지척에 그가 서 있을 거라고 짐작한다. 그에게는 아직 돌봐야 할 딸이 둘 있다. 그런데도 그는 이제 어떻게 살아야 할지 모르겠다고 푸념한다. 나는 인생에 이런 고비를 한두 번 넘겼는가, 별소리를 다 한다고 위로한다. 그가 노년의 어머니 얘기를 들려준다. 형과 누나가 사는 객지로 옮겨 살다가 가셨다고 한다. 고향이 있는 우리 같은 처지에는 부모가 객지에서 돌아가시는 일 역시 가슴 아프다.
“참 곱다.” 친구가 난데없는 소리를 한다. 무슨 소리인가 싶어 귀를 기울인다. “나뭇가지에 맺힌 빗방울이 곱다”고 친구는 말한다. 거기에도 겨울비가 내리나 보다. 나도 그와 더불어 가로수 밑에 서서 하늘을 우러르고 있는 듯싶다. 마음이 놓인다. “어서 집으로 가야지. 가족들이 걱정하겠다.” 친구는 미안했다고 말한다. 나도 그에게 하소연하고 싶은 게 있는데 그만 통화를 끝낸다. “고맙다. 크리스마스 잘 보내.”
나는 아들에게 쓰다 만 문자를 들여다본다. 이틀 전에 아이를 입대시키고 왔다. 신병교육대 정문에서 아이는 씩씩하게 인사를 하고 들어갔는데 뒷모습이 눈에 밟힌다. 아들은 돌아보지 않고 죽 걸어갔고 시야에서 사라졌다. 자라는 아들을 보면서 군에 보내야 할 일이 안쓰러웠다. 그날이 왔고 아내와 나는 객지에서 하룻밤을 함께 보내며 머리로 그린 듯 아들을 군대로 보냈다. 돌아오는 길에 식당에서 저녁을 먹는데 아내는 아이에게 미안하다고 숟가락을 일찍 놓았다.
아이는 군영에서 첫 밤을 어떻게 보냈을까. 삼십여 년 전 낯선 막사에서 눈을 떴을 때 나는 목에서 신물이 올라오는 증세를 겪었다. 내 아들이니 그도 그럴 것이다. 아이도 나도 부재중이라는 낯선 감정에 적응할 시간이 필요하겠지. ‘마음이 한없이 춥겠지만 옷을 든든히 입고 따뜻하게 지내라’고 나는 아들에게 쓴다. 돌아갈 집이 있다는 걸 아이가 잊지 않았으면 한다.
전성태 소설가 국립순천대 교수
ⓒ 세상을 보는 눈, 세계일보
이 기사의 카테고리는 언론사의 분류를 따릅니다.
기사가 속한 카테고리는 언론사가 분류합니다.
언론사는 한 기사를 두 개 이상의 카테고리로 분류할 수 있습니다.
언론사는 한 기사를 두 개 이상의 카테고리로 분류할 수 있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