컨텐츠 바로가기

    01.01 (목)

    ‘보험금 10억 받지 않았냐’ 비수를 찌르는 말…삭발한 엄마는 또 눈물을 흘렸다 [무안참사 1년: 멈춰진 시간, 남겨진 사람들]

    댓글 첫 댓글을 작성해보세요
    주소복사가 완료되었습니다

    무안공항에서 만난 무안참사 유족 인터뷰 ②

    “‘보상금 받지 않았냐?’는 말 상처로 남아”

    “아들, 고생시켜서 미안해 그말 꼭 하고싶어”

    헤럴드경제

    ‘12·29 무안공항 제주항공 여객기 참사’로 큰아들 노상훈 씨와 며느리를 잃은 나명례(60) 씨가 참사 진상 규명을 촉구하는 현수막을 바라보고 있다. 이영기 기자.

    <이미지를 클릭하시면 크게 보실 수 있습니다>



    [헤럴드경제(무안)=이영기·정주원 기자] ‘12·29 무안공항 제주항공 여객기 참사(무안참사)’ 유족이 감당해야할 건 슬픔만이 아니었다.

    참사 후 계엄·탄핵 국면과 대선 등이 이어지며 받지 못했던 관심은 이제 무관심이 됐다. ‘참사 수숩이 끝나고 막대한 보상금을 챙긴 것 아니냐’는 반응까지 심심치 않게 접할 때마다 ‘너무 깊은 상처’라고 입을 모아 말했다.

    관심 가져주지 않아 삭발하고 나선 엄마
    “‘보험금 10억원 받지 않았냐’고 말하는 사람도 있어요. 이미 해결된 줄 알더라고요.”

    크리스마스를 앞둔 지난 22일 전남 무안국제공항에서 만난 나명례(60) 씨는 이같이 말하며 얼마 전 삭발한 머리를 쓸어내렸다. ‘12·29 무안공항 제주항공 여객기 참사(무안참사)’로 큰아들 노상훈(당시 35세) 씨와 며느리를 잃은 나씨는 지난 1일 국토부의 일방적인 공청회 진행을 막고자 대통령실 앞에서 머리를 밀었다.

    나씨는 최근 무안참사 유족들이 느끼는 ‘고립’을 강하게 느끼고 있었다. 고립에서 벗어나기 위해 그가 택한 방법은 참사를 적극적으로 알리는 방법이다. 1인 시위도 나서고 있다.

    나씨는 “공항에 오면 아들과 며느리가 있는 거 같더라”며 “마음만이라도 여기 같이 있는 거 같아서 여기서 1년 생활을 했어요”라고 설명했다. 나씨는 공항 텐트촌 자리를 지키기 위해 10년 넘게 다니던 직장도 그만뒀다.

    헤럴드경제

    나씨가 유가족 텐트촌 앞에서 사진 촬영에 응하고 있다. 이영기 기자.

    <이미지를 클릭하시면 크게 보실 수 있습니다>



    이어 나씨는 “근데 계속 여기만 있다 보니 바깥 사정을 전혀 몰랐어요”라며 “무안 사람들도 여기(공항)에 사람이 있는 걸 몰라요. 광주는 더 모르더라고요”라고 말했다. 나씨가 참사를 알리기 위해 동분서주하는 이유다.

    나씨의 큰아들과 며느리는 올해 3월 결혼을 앞두고 있었다. 이제 막 차린 신혼집에서 단 사흘을 보낸 후 태국 여행길에 올랐다. 나씨는 “신혼집이 걸어서 10분 거리인데 가보기 어렵더라”며 “마지막으로 간 게 3개월 전인데, 아마 먼지만 쌓였을 것”이라고 말했다.

    나씨는 상훈 씨가 자상하고 다정한 아들이었다고 회상했다. 나씨는 “여행 가기 전날인 크리스마스 이브에 집에 케이크를 들고 찾아왔다”며 “같이 케이크를 나눠 먹으며 ‘여행 잘 다녀오겠다’고 말했는데, 그게 마지막 인사였다”고 말했다.

    헤럴드경제

    올해 3월 결혼 예정이었던 노상훈씨와 며느리의 웨딩 사진으로 구성한 결혼식 영상. 이영기 기자.

    <이미지를 클릭하시면 크게 보실 수 있습니다>



    참사 소식을 접한 건 당일 오전 10시께였다. 이제 막 속보를 통해 알려지기 시작한 때였다. 그런데도 나씨는 “오전 9시에 생긴 일인데 아침 먹고 남편이랑 대화하느라 1시간 늦게 알았다는 게 너무 미안하다”고 눈시울을 붉혔다.

    나씨 가족은 광주에서 30분 만에 무안공항에 도착했다. 희망도 놓지 않았다. 나씨는 “2명은 구조가 됐다길래 아들이랑 며느리일 수 있다는 희망을 갖고 있었다”며 “곧 승무원이라는 게 알려지자 그렇게 허탈할 수가 없었다”고 회상했다.

    며느리는 온전한 모습으로 일찍 발견됐지만 상훈씨 시신은 비교적 시간이 걸렸다. 나씨는 “상훈이가 운동을 많이 해서 몸이 튼튼하거든요”라며 “아마 충격 당시에 며느리를 안아서 보호한 거 같아요”라고 설명했다.

    온전치 못했던 아들의 마지막 모습을 나씨는 결국 보지 못했다. 주변에서 극구 만류했기 때문이다. 나씨는 “어떻게든 볼 걸 그랬어요”라며 “그게 마지막 모습인데 못 본 게 지금도 너무 후회돼요”라고 다시 눈물을 흘렸다.

    나씨는 아들과 며느리에게 전하고 싶은 말이 있냐고 묻자 “열심히 살다 보니까 애들한테 사랑한다, 고맙다는 말을 못 했어요. 엄마가 좀 나은 생활이었으면 너희들 더 좀 챙겨줬을 건데 못 해줘서 미안해”라며 “‘아들 고생시켜서 미안하다’는 그 말을 꼭 하고 싶었어요”라고 답했다.

    “아빠가 할 수 있는 일은 공항 지키는 일”
    “‘해결되지 않았냐, 보상금 받지 않냐’는 말 들으면 너무 상처죠”

    헤럴드경제

    지난 23일 전남 무안국제공항에서 만난 손주택(67) 씨. 손씨는 ‘12·29 무안공항 제주항공 여객기 참사’로 아들 창국씨를 잃었다. 참사 직후 슬픔으로 살이 많이 빠졌다는 손씨는 한눈에도 야윈 모습이었다. 이영기 기자.

    <이미지를 클릭하시면 크게 보실 수 있습니다>



    참사로 아들 손창국 씨를 잃은 손주택(67) 씨는 “무관심을 접할 때마다 받는 상처는 적응이 안된다”며 말을 시작했다.

    손씨는 “참사가 계엄 정국에서 일어났잖아요. 참사에 대한 관심이 다 파묻혀 버린 거예요”라며 “대선까지 있었으니 참사 이후에 대한 언론 보도는 거의 없었죠”라고 한탄했다.

    이어 “참사 초기에만 관심이 모아졌지 장례 끝나고 49제 끝나니깐 완전히 조용했어요”라며 “그러니깐 광주나 전남에 계신 분들도 다 해결된 줄 알아요”라고 말했다.

    무관심이 상처로 다가올 때도 있다. 손씨는 “그럴 때마다 ‘해결 아직 안 됐다’고 설명해준다. 또 말하기 좋아하는 사람은 ‘보상으로 수억원을 받았다’고 말하고 다니는데 그때마다 상처 받는다”고 토로했다.

    손씨는 세상의 무관심뿐 아니라 아들 창국씨에 대한 여전한 그리움도 감당하고 있다. 손씨는 무안국제공항 1층에 마련된 분향소에 지금도 아들을 향한 편지를 남기고 있다. 그래서 아들 창국씨의 자리에는 각종 메모지가 빼곡하게 붙어있다. 손씨가 남긴 메모 ‘아빠가 할 수 있는 일은 공항을 지키는 일’이라는 내용처럼 손씨는 1년째 공항 텐트촌에서 생활하고 있다.

    헤럴드경제

    지난 23일 전남 무안국제공항에서 만난 손주택(67) 씨. 이영기 기자.

    <이미지를 클릭하시면 크게 보실 수 있습니다>



    아들 창국씨는 태국 여행을 떠나기 전날까지 부모님을 찾아뵙던 살가운 아들이었다. 손씨는 “25일 여행 출발을 앞두고 24일 저녁에 ‘여행 가기 전에 인사드리고 간다’고 아들이 집에 찾아왔다”며 “그게 마지막 모습이었다. ‘잘 다녀올게요’가 마지막 대화였다”고 회상했다.

    손씨는 창국씨를 금지옥엽처럼 키워넀다. 취업 준비를 할 때까지도 시험장, 3시간 거리의 면접장은 물론, 멀리 떨어진 면접학원까지 데려다줬다. 그렇게 창국씨는 수천명의 지원자를 제치고 코레일에 입사해 손씨의 자랑이기도 했다.

    손씨는 아들에게 ‘사랑한다’고 전하고 싶다고 했다. 손씨는“가깝게 지냈지만 사랑한다고는 해본 적이 없어요”라며 “살아있었으면 이제라도 사랑한다고 많이 할 거 같아요”라고 말하는 손씨의 눈에는 눈물이 가득 차있었다.



    재난 희생자들의 명복을 빕니다. 확인되지 않은 정보 유포나 피해자에 대한 비난을 삼가주세요. 재난을 겪은 뒤 심리적인 어려움이 있는 경우 ☎02-2204-0001(국가트라우마센터) 또는 1577-0199(정신건강위기 상담전화)로 연락하시면 전문가의 상담을 받을 수 있습니다.

    ※ 이 기사는 재난보도준칙을 준수하였습니다.




    기사가 속한 카테고리는 언론사가 분류합니다.
    언론사는 한 기사를 두 개 이상의 카테고리로 분류할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