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가 벤처 세컨더리 시장 활성화를 본격 추진하며, 세컨더리펀드 내 액셀러레이터(AC) 투자분 구주 매입 비율을 20%로 설정하는 제도 개선을 발표했다. 이는 단순한 비율 조정이 아니다. 그동안 제도권 세컨더리 시장에서 구조적으로 배제돼 있던 초기투자 영역을 공식적으로 인정한 첫 신호이자, 초기투자와 후속투자를 하나의 흐름으로 연결하겠다는 정책적 선언에 가깝다.
그동안 AC는 창업 3년 미만 극초기 스타트업에 집중 투자하며, 가장 앞단에서 가장 큰 리스크를 감내해 왔다. 하지만 회수 구조는 불균형했다. 세컨더리펀드는 주로 VC 투자 영역을 중심으로 설계돼 있었고, AC가 본계정이나 개인투자조합을 통해 보유한 지분은 제도적으로 접근하기 어려웠다. 이로 인해 AC들은 비공식적인 구주거래에 의존하거나, 장기간 회수를 기다릴 수밖에 없는 구조에 놓여 있었다.
이번 'AC 구주매입 20% 설정'은 이러한 구조적 단절을 완화할 수 있는 현실적인 해법이다. 중요한 점은 이 제도가 AC만을 위한 장치가 아니라는 사실이다. 이 제도는 AC와 VC가 각자의 역할을 존중하면서 협업할 수 있는 제도적 접점을 만들어준다.
AC 입장에서는 일정 수준의 조기 회수를 통해 투자금 유동성을 확보할 수 있다. 이는 단기 차익을 위한 회수가 아니라, 다시 초기 스타트업에 재투자하기 위한 재원 마련이라는 점에서 의미가 크다. 초기투자는 속도가 생명이고, 자금이 묶이면 다음 투자가 멈춘다. 세컨더리를 통한 부분적 회수는 AC가 초기투자 역할을 지속하기 위한 최소한의 안전판이다.
VC 입장에서도 이 제도는 긍정적이다. AC가 선별하고 검증한 기업의 지분을 세컨더리로 인수하는 구조는 정보 비대칭을 줄이고, 초기 리스크를 일정 부분 해소한 상태에서 투자 포트폴리오를 구성할 수 있게 해준다. 다시 말해, AC는 검증자, VC는 확장자라는 분업 구조가 보다 명확해진다.
중요한 것은 이 제도를 어떻게 '활용'하느냐다. 세컨더리펀드 내 AC 구주매입 20%를 단순한 의무 비율로 접근한다면, 제도의 효과는 제한적일 수밖에 없다. 반대로 AC와 VC가 사전에 협업 구조를 설계하고, 기업 성장 단계에 맞춰 구주 매입 시점과 범위를 조율한다면, 세컨더리는 단순한 회수 수단을 넘어 성장 전략의 일부가 될 수 있다.
예컨대, AC는 일정 단계까지 기업을 밀착 보육하고, VC는 세컨더리를 통해 초기 지분 일부를 인수하며 본격적인 스케일업 투자로 연결하는 구조를 만들 수 있다. 이는 창업가에게도 긍정적이다. 급격한 지분 희석 없이 안정적으로 투자 주체가 전환되고, 장기 성장에 필요한 파트너를 단계적으로 만날 수 있기 때문이다.
이번 제도 개선은 '누가 더 가져가느냐' 문제가 아니다. 초기투자와 후속투자가 단절되지 않고 이어질 수 있는 생태계 설계 문제다. AC가 있어야 씨앗이 뿌려지고, VC가 있어야 나무가 자란다. 그리고 세컨더리는 그 사이를 잇는 다리다.
이제는 묻는 대신 활용해야 할 시점이다. AC와 VC가 각자 위치에서 이 제도를 전략적으로 사용한다면, 이번 세컨더리 활성화 정책은 단기적인 회수 정책을 넘어, 한국 스타트업 생태계의 구조를 한 단계 끌어올리는 전환점이 될 수 있다. 중요한 것은 제도가 아니라, 그 제도를 움직이는 협업의 방식이다.
전화성 초기투자AC협회장·씨엔티테크 대표이사 glory@cntt.co.kr
[Copyright © 전자신문. 무단전재-재배포금지]
이 기사의 카테고리는 언론사의 분류를 따릅니다.
기사가 속한 카테고리는 언론사가 분류합니다.
언론사는 한 기사를 두 개 이상의 카테고리로 분류할 수 있습니다.
언론사는 한 기사를 두 개 이상의 카테고리로 분류할 수 있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