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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01.04 (일)

    [일사일언] “올해도 행복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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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연말이다. 평소라면 공연장에 앉아 있겠지만, 이맘때는 송년회 자리에 있을 때가 종종 있다. 올해는 유난히 그런 자리가 많았는데, 최근 한 모임에서 ‘올해 가장 행복했던 순간은 언제였나’라는 이야기가 오갔다. 막상 그 질문을 받으니 선뜻 떠오르는 장면이 없었다.

    집에 돌아오는 길, 오래전에 써두었던 글 하나가 생각났다.

    새로 자른 머리가 마음에 들 때. 손을 씻다 맑은 물이 구정물로 변할 때. 버리지 못하고 쌓아둔 쓰레기를 한꺼번에 내다 버릴 때. 책을 읽다 스르륵 잠들었을 때. 일어나니 새벽일 때. 어스름한 새벽에 첫차 탈 때. 새벽 기차 탈 때. 승강장에 들어서는데 마침 지하철이 들어오고 있을 때. 지하철에서 내 앞에 앉아 있던 사람이 일어날 때. 운전하는데 내가 선택한 길이 뻥 뚫려 있을 때. 밤늦게 귀가하는데 주차할 자리가 남아 있을 때. 라디오에서 좋아하는 노래가 흘러나올 때, 기분에 맞는 노래가 배경음악처럼 흘러나올 때. 그 노래가 예전의 어떤 기억을 불러일으킬 때. 휴일 아침에 여유롭게 운동할 때. 운동 후 옷이 땀으로 흠뻑 젖었을 때. 수영장에서 레인 하나를 나 혼자 쓸 때. 조조영화 볼 때, 관객이 나 혼자일 때. 내 이야기 같은 연극을 만났을 때. 아무도 주목하지 않은 풍경을 발견할 때. 남다른 구도의 사진을 찍었을 때. 성당에 앉아 손을 잡고 ‘주의 기도’를 부를 때, 진실한 눈으로 전하는 평화의 인사를 받을 때.

    그날 술자리가 파하기 전에 이 글이 떠올랐다면, 과연 말했을까. 아마도 아니었을 것이다. 그 시절의 행복은 혼자일 때만 가능했던 종류의 행복이었다. 여유롭게 홀로 있음, 지금은 조금 달라졌다. 또래 중에 사춘기 친구도 제법 있는 아들이 ‘아직은’ 입술 뽀뽀를 해주는 게, 아빠가 만든 짜장라면이 세상에서 제일 맛있다고 말해주는 게, 조금 헐렁하지만 내 옷을 입고 서 있는 아들의 모습을 보는 게 요즘 내 행복이다.

    아직 새해까지 며칠이 남아 있다. 한 해를 돌아보며 ‘가장 행복했던 순간’을 하나쯤 떠올려 보면 어떨까. 어쩌면 생각보다 따뜻한 해였다는 걸 알게 될지도 모르겠다.

    [김일송 책공장 이안재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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