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무튼, 주말]
[정동현의 pick] 참치
서울 강남구 ‘참치21’의 참치회. /이경호 영상미디어 기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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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말 모임을 하며 찾은 곳이 강남역의 ‘참치21’이란 식당이었다. 10년을 다녔다는 단골의 소개였다. 냉동 참치의 기억이란 정체를 알 수 없는 하얀 토막을 참기름에 찍고 조미김을 싸서 먹은 것이 전부였다. 강남역에서 애초에 참치 집 갈 생각을 해본 적이 없었다. 휴대폰 지도의 안내를 따라 신분당선 쪽 출구를 나와 언덕으로 향하는 골목 한편에 ‘참치21’이 나타났다. 얕은 계단을 타고 문을 밀자 바로 널찍한 바 카운터 좌석이 나타났다.
반백의 머리를 말끔하게 빗어 넘기고 공학도처럼 동그란 안경을 쓴 주인장은 큰 목소리로 인사하며 반겼다. 바 테이블은 좁고 길었다. 단골들은 뒤편에 놓인 방을 굳이 마다하고 엉덩이와 어깨를 부딪히며 주인장 바로 앞 좌석을 고집했다. 우리는 높은 의자에 앉아 뒤로 넘어질 듯 흔들거리며 잔을 부딪치고 음식을 받았다. 메뉴판이 있었지만 고를 수 있는 게 많지 않았다. 코스 메뉴는 가격에 따라 참치의 종류와 질이 달라진다고 했다. 어떤 코스든 배가 부르도록 먹인다는 주인장 설명은 저녁 내내 나가는 음식을 살펴본 바 거짓은 아닌 것 같았다.
먼저 은박지 위에 구운 콘버터, 은행, 달걀찜이 주르르 깔렸다. 요즘에 오히려 보기 어려운 은행 구이에 맥주 한잔을 마시니 한겨울밤 정취가 더 사는 듯했다. 반찬은 그게 끝이었다. 주인장이 칼을 휘둘러 큰 참치 토막을 자르기 시작했다. 주인장 설명이 그때그때 사입하는 참치의 출신 성분은 다르지만, 사정이 허락하는 한 가장 거대한 개체를 고른다고 했다. 대략 성체가 300~400㎏에 달하는 녀석을 주로 쓰는데 기름기가 더 많이 끼고 맛 또한 작은 것보다 낫다는 설명이었다. 어종마다 ‘큰 것이 낫다’ ‘작은 것이 낫다’ 논쟁이 벌어지지만 참치는 확연히, 큰 쪽이 좋다. 처음 받아 든 참치 중간 뱃살을 먹자마자 그 생각은 확신이 됐다. 소금만 살짝 찍어 와사비를 듬뿍 올린 중간 뱃살은 입에 넣자 눈처럼 서걱거리며 고소한 기름기를 복숭아처럼 쭉쭉 뱉어냈다. 흔히 마블링이라고도 부르는 확연한 기름기 덕분에 와사비를 지나치다 싶을 만큼 올려도 매운맛이 돌지 않았다. 그보다는 느끼할 수 있는 맛을 잡아줘 여러 점 집어 먹어도 박하사탕을 문 것처럼 입 안이 깔끔했다. 참치의 빨간 등살은 간장에 적셨고 부채처럼 무늬가 찍힌 배꼽살은 기름장에 찍었다. 부위별로 썰고 먹는 방법이 엇박자와 변박으로 비슷한 듯 달랐다.
그 박자는 조금씩 고양되더니 어느 순간 주인장 손 위에 뱃살 초밥이 몇 덩이 올라 있었다. 주인장은 하얗게 기름이 낀 참치 뱃살 초밥 위에 바질 페스토를 점처럼 찍어 올렸다. 수박처럼 향긋한 뱃살이 레몬을 닮은 바질을 만나 들숨과 날숨 사이에 몸속으로 시원한 바람이 부는 듯했다.
옆자리에 앉은 나이 든 남자는 큰 딸 둘을 옆에 나란히 앉히고 우리와 같은 음식을 먹었다. 카운터를 사이에 둔 남자는 기름기가 뚝뚝 떨어지는 참치 뱃살을 어린 두 딸의 접시 위에 올려주며 한껏 뿌듯한 표정으로 서로를 바라봤다.
강남은 또 바뀌고 달라져 사람도 빌딩도 같은 것은 하나도 남지 않을 것이다. 그러나 이 집은 달라지지 않으리라. 주인장과 함께, 그의 앞에 앉은 객들과 함께 나이 들 것이다. 주인장은 커다란 칼로 참치를 썰어낼 것이고 객들은 나이가 들어 큰 물고기의 부드러운 살점마저 벅찰 때 뒤이은 아들과 딸에게 자리를 물려주리라. 그 모습을 바라보며 나는 안온한 평화를 느꼈다. 그들의 마음에 깃든 작은 자긍심도 굳건해 변하지도 달라지지도 않음을 알았기 때문이다.
#참치21: 참치회 보통 4만4000원, 특 5만7000원, 스페셜 7만8000원, 하이스페셜 12만원, 02-556-0067.
[정동현 음식 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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