컨텐츠 바로가기

    12.31 (수)

    전쟁 불씨 그대로 두고… 태국·캄보디아, 올해 두 번째 휴전

    댓글 첫 댓글을 작성해보세요
    주소복사가 완료되었습니다

    [News&Why] 20일 간 국경 전쟁 일단 포성 멈췄지만…

    조선일보

    27일 오후 태국 찬타부리주 프룸-반팍카드 국경검문소에서 낫타폰 낙파니트(오른쪽) 태국 국방 장관과 티아 세하 캄보디아 부총리 겸 국방 장관이 양국 간 휴전 합의 후 악수하고 있다. 양국은 이날 낮 12시를 기해 지난 7일부터 이어진 전쟁을 멈추기로 합의했다./AFP 연합뉴스

    <이미지를 클릭하시면 크게 보실 수 있습니다>


    태국과 캄보디아가 20일간의 국경 전쟁을 끝내고 27일 낮 12시(현지시각)를 기해 휴전에 합의했다. 3주만에 101명이 목숨을 잃고 50만명이 넘는 피난민이 발생한 뒤다. 양국은 이날 국방 장관들이 찬타부리주 프룸–반팍카드 국경검문소에서 만나 적대 행위 중단 문서에 서명했다. 지난 7월에도 전쟁을 벌였다가 미국의 중재로 휴전했던 두 나라는 올해에만 두번의 전쟁을 반복했다.

    양국 간 전쟁은 지난 5월 국경 사원 프레아 비헤아르 인근에서 캄보디아 군인 1명이 교전으로 사망하면서 시작됐다. 긴장이 고조되면서 7월 하순, 닷새 동안 48명이 숨지고 30만명이 피난하는 전면전을 겪었다. 당시 도널드 트럼프 미 대통령이 개입해 7월 휴전에 합의했고, 10월 쿠알라룸푸르에서 서명했다. 하지만 12월 초 다시 포성이 울렸고, 이번엔 피해 규모가 두 배로 커졌다.

    조선일보

    /그래픽=양진경


    반복되는 전쟁의 뿌리에는 817㎞에 달하는 ‘확정되지 않은 국경선’이 있다. 양국 국경 곳곳에는 100년 넘게 주인이 정해지지 않은 땅이 남아 있다. 이번 전쟁의 불씨가 된 프레아 비헤아르 사원이 대표적이다. 20세기 초, 캄보디아를 지배하던 프랑스 식민 당국은 독립국 지위를 원하는 당시 시암(태국)으로부터 영토를 일부 넘겨 받고, 국경을 명확히 하는 조약을 맺었다. 하지만 지도에는 조약과 다르게 표기하면서 문제가 발생했다. 조약에는 ‘당렉 산맥의 분수령을 경계로 한다”고 돼있지만, 지도에 분수령이 실제와 다르게 표기되면서 프레아 비헤아르 사원이 캄보디아 영토로 그려졌다. 1962년 국제사법재판소(ICJ)는 “시암이 당시 이의 제기를 하지 않았다”며 캄보디아 손을 들어줬다. 하지만 진입로와 주변 땅 4.6㎢에 대해서는 명확한 결론을 내리지 않았다. 태국은 이 땅이 자국 영토라고 주장하고, 캄보디아는 사원과 한 몸이라고 맞서고 있다.

    지난 6월 태국 패통탄 친나왓(탁신 전 총리의 딸) 당시 총리와 캄보디아 실권자 훈 센 상원 의장의 통화 녹취가 유출된 사건은 양국이 강경 모드로 돌입한 결정적 계기가 됐다. 당시 패통탄이 훈 센과 통화에서 국경 문제에 유화적인 태도를 보이며 자국 군을 비판한 사실이 드러나면서 군을 비롯한 태국 보수층은 폭발했고, 8월 태국 헌재는 “적국과 소통했다”며 패통탄을 파면했다. 이후 11월 태국 시사켓 지역에서 지뢰가 터져 태국군 4명이 부상하자 양국 감정은 극에 달했다. 결국 지난 8일 태국 공군이 폭격을 감행하며 두번째 전면전이 시작된 것이다.

    태국의 경우 70석 안팎의 제3당 품짜이타이당 수장으로 지난 8월 연립 정부 총리에 오른 아누틴 찬비라쿨이 ‘친군부, 친왕실’ 노선으로 돌아선 것도 한 이유다. 소수 정당 출신이라는 한계와 홍수 대응 실패, 부패 스캔들로 지지율이 바닥을 치던 아누틴은 전쟁을 통해 보수층을 결집시키는데 성공했다는 평가가 나온다. 올해 초 3%에 불과했던 품짜이타이당 지지율은 전쟁 직후 10%대로 치솟았다. 그는 전쟁중이던 지난 12일, 의회를 해산하고 내년 2월 8일 조기 총선을 치르겠다고 승부수를 던졌다.

    캄보디아의 훈 센도 정치적 계산이 분명하다. 올해 72세로 아들 훈 마넷에게 총리직을 물려준 그는, 장기 독재와 경제난, “태국에 너무 유약하다”는 등의 문제로 공격을 받자 “누가 더 애국자인지 보여주겠다”며 강경 태도로 전환했다. 평소 가족처럼 지내왔던 패통탄과의 통화를 유출하며 탁신 가문을 비판했고, 이번 전쟁에선 군복을 입고 작전 지도 앞에 앉은 사진을 SNS에 올렸다.

    전쟁은 태국이 압도적 우위였다. 태국 국방 예산은 캄보디아의 7배가 넘는데다, 태국은 F-16, 그리펜 등 전투기 72대를 보유해 제공권을 장악한 반면, 캄보디아는 전투기 없이 싸웠다. 캄보디아군은 중국제 BM-21 로켓으로 대응했으나 공중 지원이 없어 역부족이었다. 태국은 캄보디아 내 보이스피싱 단지도 집중 타격했다.

    이번 전쟁에는 한국산 무기도 등장했다. 태국 유력 매체 타이라트 등은 “태국 공군이 24일 T-50TH 골든이글을 캄보디아 깊숙한 바탐방주(州)까지 투입해 첫 실전 임무를 수행했다”고 보도했다. 한국항공우주산업(KAI)이 만든 T-50TH가 실전에서 정밀 폭격 능력을 입증했다는 것이다. 지난 7월 교전 당시엔 태국 F-16 전투기가 한국형 GPS 유도폭탄(KGGB)을 장착해 캄보디아 지휘소와 탄약고를 정확히 타격하기도 했다.

    트럼프의 중재가 효과를 잃고 전쟁이 재발하자, 이번엔 중국이 양국을 압박해 두번째 휴전을 이끌어냈다. 중국 왕이 외교부장은 28일 태국과 캄보디아 외교장관을 윈난성으로 초청해 이틀 일정의 회담을 시작했다. 중국은 휴전을 공고히 하면서, 민간인 무력 사용 금지 등을 조율하며 영향력을 과시할 것으로 보인다.

    전문가들은 이번 합의 역시 ‘미봉책’에 불과하다고 우려한다. 싱가포르 ISEAS 유소프이샥연구소는 “아누틴 총리가 선거 승리를 위해 강경 노선을 택한 이상 휴전은 언제든 깨질 수 있다”고 지적했다. 더디플로맷 역시 “한 번 점화된 민족주의 불길은 쉽게 잡히지 않는다”고 경고했다. 캄보디아계인 소팔 이어 미 애리조나주립대 교수는 “국내 정치 셈법이 바뀌지 않는 한 진정한 평화는 어렵다”고 지적했다.

    조선일보 국제부가 픽한 글로벌 이슈!

    원샷 국제뉴스 더보기

    [안준현 기자]

    - Copyrights ⓒ 조선일보 & chosun.com,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
    기사가 속한 카테고리는 언론사가 분류합니다.
    언론사는 한 기사를 두 개 이상의 카테고리로 분류할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