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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구글 이름은 오타였다...인터넷 전체를 '저장'하고 싶었던 두 천재의 무모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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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구글의 핀포인트<1>

    구글의 핀포인트
    인터넷의 관문 역할을 하는 검색부터 동영상 서비스, 스마트폰의 운영체제와 자율주행, 인류의 미래가 달린 인공지능(AI)과 우주 연구까지 다방면에 걸쳐 관심을 쏟는 기업이 있다. 정보기술(IT) 백화점이라고 할 만한 이 곳은 세계 최대 IT기업으로 꼽히는 미국의 구글이다. 심지어 공상과학(SF) 영화에나 나올 법한 인간의 뇌 연구와 우주 인터넷 등 상상을 초월하는 분야에도 투자한다. 그래서 전 세계 언론들은 구글을 곧잘 '혁신적인 IT 제국'으로 표현한다. 그만큼 구글의 혁신은 사람들의 삶에 많은 영향을 미쳤다. 과연 구글의 혁신이 어디서 비롯됐는지, 초창기 성공 포인트들을 시리즈로 짚어 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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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공동으로 구글을 세운 세르게이 브린(오른쪽부터)과 래리 페이지가 에릭 슈미트 구글 최고경영자(CEO)와 함께 미국 마운틴뷰 구글 본사 앞에서 개발 중인 자율주행 차량을 소개하고 있다.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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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컴퓨터 전문가 부모 밑에서 자란 창업자들


    구글을 공동 창업한 래리 페이지와 세르게이 브린은 다르면서도 닮은 점이 많다. 우선 성격이 다르다. 래리 페이지가 조용한 편이라면 세르게이 브린은 외향적이고 활달하다. 하지만 성장 환경은 비슷하다. 유대계 혈통의 과학자 집안에서 태어나 몬테소리 교육을 받았고 어려서부터 컴퓨터를 다뤄 미국 스탠퍼드대학의 컴퓨터공학 박사과정을 밟았다.

    1973년생인 래리 페이지는 컴퓨터 전문가였던 부모 밑에서 자랐다. 아버지 칼 페이지는 미시간주립대 컴퓨터공학과 교수로, 컴퓨터공학과 인공지능(AI) 관련 논문을 많이 발표해 세계적 권위를 인정받았다. 유대인이었던 어머니 글로리아 페이지 역시 컴퓨터공학으로 석사 학위를 받고 데이터베이스 전문가로 활동하며 미시간주립대에서 프로그래밍을 가르치는 강사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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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구글의 공동 창업자인 래리 페이지. AP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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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페이지에게 많은 영향을 미친 것은 아버지다. 아들이 교수가 되기를 원한 아버지는 어린 아들과 다양한 주제로 많은 토론을 했다. 훗날 토론을 즐기는 그의 습관은 아버지에게서 비롯됐다. 페이지는 미시간주 오케모스에서 아이 스스로 결정하도록 자율성을 강조한 몬테소리 유치원을 다녔고 어려서부터 컴퓨터를 다뤘다. 아버지는 래리가 초등학교 입학 전 컴퓨터를 사줬다. 덕분에 그는 초등학교 때 컴퓨터로 작성한 숙제를 제출해 컴퓨터를 잘 모르는 교사들을 당황하게 만들었다.

    어머니는 페이지가 8세때 이혼했다. 그 바람에 그는 유대인이라는 정체성에 크게 얽매이지 않았다. 부모의 이혼은 큰 상처였지만 그보다 더 큰 아픔은 대학 1학년 때 겪은 아버지의 죽음이다. 어려서 척수성 소아마비를 앓았던 아버지는 폐렴 합병증 때문에 58세 나이로 세상을 떠났다. 페이지는 한동안 아무것도 못할 만큼 상실감이 컸지만 이겨내고 컴퓨터공학을 전공하는 개발자 동아리 회장으로 활동하며 컴퓨터에 더 깊이 빠져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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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미국 실리콘밸리 구글 본사에 설치된 구글의 스마트 안경 체험 공간에서 구글의 공동 창업자 세르게이 브린이 스마트 안경을 체험하고 있다. 실리콘밸리=이서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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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소련을 탈출한 과학영재


    1973년생으로 래리와 동갑내기인 세르게이 브린은 러시아 모스크바의 유대계 과학자 집안에서 태어났다. 수학 박사였던 할아버지는 모스크바에서 교수로 일했고 할머니는 당시엔 드물게 미국 유학을 떠나 시카고대에서 미생물학을 전공했다. 세르게이 브린의 아버지 마이클 브린 역시 모스크바 국립대학에서 수학을 전공하고 구 소련의 국가계획위원회(고스플란, GOSPLAN)에서 10년간 경제정책을 입안했다. 마이클 브린은 1979년 유대인 박해를 피해 아내와 여섯 살인 세르게이를 데리고 미국으로 넘어가 메릴랜드대학에서 수학 교수로 일했다.

    세르게이 브린의 어머니 유지니어 브린도 모스크바국립대에서 수학을 전공한 뒤 미국으로 건너가 우주항공국(나사, NASA) 고다드 우주비행센터에서 로켓 발사 조건을 연구한 과학자로 활동했다. 그런데 어머니 유지니어는 퇴행성 뇌 질환인 파킨슨병을 앓았고 세르게이 브린 역시 이 병을 유발하는 유전자 돌연변이를 보유하고 있다. 어머니의 영향으로 브린은 난치병 치료를 위해 수억 달러를 기부하는 등 디지털 건강관리 사업에 관심을 갖게 됐다.

    브린 역시 미국 메릴랜드주 애델파이에서 몬테소리 유치원을 다녔다. 훗날 그는 "몬테소리 교육이 일생에 큰 영향을 미쳤다"며 "스스로 문제 해결 방법을 찾으려고 노력하게 됐다"고 회고했다. 페이지처럼 어려서부터 개인용 컴퓨터 '코모도어64s'를 사용한 그는 학문적 재능을 타고난 덕분에 19세때 대학 학사 과정을 마쳤다.

    결점에서 혁신의 물꼬를 찾은 '래리세르게이'


    메릴랜드대에서 컴퓨터공학과 수학 학사 과정을 마친 브린은 전미과학재단의 장학금을 받고 스탠퍼드 대학원에 진학했다. 그곳에서 그는 1995년에 페이지를 만났다. 일찍 대학을 마친 브린은 페이지의 대학원 2년 선배로서 신입생 환영회 때 페이지에게 학교를 안내했다. 어려서부터 토론을 즐긴 문화 덕분에 두 사람은 온갖 일을 토론하며 쉽게 친해졌다. 그들은 너무 붙어 다녀서 학교내 별명이 '래리세르게이'였다. 두 사람의 이름을 하나로 합쳐 부를만큼 한 몸이나 다름없다는 뜻이다.

    이들이 인터넷 검색에 관심을 가진 것은 당시 검색 서비스들의 조악한 품질 때문이었다. 대학원에서 인터넷 자료를 뒤져 분석하는 데이터 마이닝을 연구하던 브린은 자주 검색 서비스를 사용했는데 형편없는 검색 결과에 실망이 컸다. 훗날 브린은 외신과 가진 인터뷰에서 "어떤 인터넷 검색서비스는 자신들의 홈페이지조차 보여주지 못했다"고 회고했다.

    그들은 기존 서비스의 문제점을 혁신의 출발선으로 삼았다. 부족한 검색 결과를 다른 사람들은 어쩔수 없는 일로 받아들였지만 두 사람은 자신들이 해결해야 할 과제로 여겼다.

    어떻게 하면 만족할 만한 검색결과를 얻을 수 있을까. 이 문제를 고민하며 숱하게 토론한 브린과 페이지는 인터넷 검색 결과가 좋으려면 자료(데이터베이스)가 많아야 한다고 봤다. 그래서 두 사람은 무모할 정도로 황당한 결심을 했다. '인터넷 전체를 통으로 저장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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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https://www.hankookilbo.com/News/Read/A20251225172000047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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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① 네이버의 성공과 도전
      1. • 삼성도 “성공 못할 것”이라던 네이버... 큰 기대 안했던 서비스가 회사 살렸다
        (www.hankookilbo.com/News/Read/A2025090515150005276)
      2. • 삼성전자보다 시가총액 높았던 회사와 합병 발표…그러나 한 달 뒤 취소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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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3. • “절대 못 이긴다”던 글로벌 기업과의 검색광고 전쟁...네이버는 어떻게 살아남았나
        (www.hankookilbo.com/News/Read/A2025101617360005992)
      4. • 야후 엠파스 라이코스...경쟁자 차례로 쓰러뜨린 네이버의 무기는 지식인과 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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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5. • “독도는 한국땅”이라 답변 못하는 인공지능…네이버가 AI주권을 외치는 이유
        (www.hankookilbo.com/News/Read/A2025110919520000863)
    2. ② TSMC의 히든카드
      1. • ‘보이지 않는 검은손’ TSMC “경쟁자들을 절망하게 만드는 것이 전략”
        (www.hankookilbo.com/News/Read/A2025112613440000662)
      2. • 삼성에 한방 맞은 TSMC...24시간 풀가동 '나이트호크 프로젝트'로 1위 지켰다
        (www.hankookilbo.com/News/Read/A2025111716550003236)
      3. • 미국이 비웃은 아이디어, 대만이 세계 1위 만들었다...TSMC 성공 스토리
        (www.hankookilbo.com/News/Read/A2025111217170003105)
      4. • 후계자 선정과 소송 전쟁…TSMC가 지킨 원칙은 “인재 유출을 막아라”
        (www.hankookilbo.com/News/Read/A2025120409450001360)
      5. • “우리와 손잡자”는 이건희 삼성 회장의 제안 거부...TSMC 메모리 사업의 결과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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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6. • “우리가 중국 기업이라고?” 세계 1위 TSMC가 일본과 손잡은 속사정
        (www.hankookilbo.com/News/Read/A202512181712000217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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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최연진 IT전문기자 wolfpack@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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