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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01.01 (목)

    "막노동하며 주경야독"…범죄 피해자에서 경찰 된 청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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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편집자주

    36.5℃는 한국일보 중견 기자들이 너무 뜨겁지도 너무 차갑지도 않게, 사람의 온기로 써 내려가는 세상 이야기입니다.


    한국일보

    한 택배 배송기사가 6월 4일 서울 강남구 지역에서 택배를 배송하고 있다. 남동균 인턴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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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왜 힘든 일은 항상 열심히 사는 사람들에게만 일어나는 걸까. 취재하며 유독 더 마음이 쓰이는 사건은 어려운 환경에 처한 이들이 그저 뭐 좀 힘내서 해보려다 당한 일들이다. 힘든 일도 마다 않겠다며 다졌을 각오가 귀하고, 가졌을 희망이 눈에 선해서.

    2022년 취재했던 택배기사 취업 사기가 그랬다. 대학생이었던 건우씨는 방학을 앞두고 택배기사 채용 면접을 보고 근로계약서를 썼다. 두 달만 열심히 하면 등록금을 해결하고 부모님께 생활비도 조금이나마 보태드릴 수 있을 것 같아서였다.

    하지만 건우씨가 쓴 것은 근로계약서가 아닌 중고차 매매계약서였다. 시세보다 터무니없이 비싼 가격에 고금리 할부로 화물차를 구입하는 조건이었다. 인사담당자는 그저 열심히 하겠다는 자세로 면접을 보러 온 건우씨에게 '절차상 필요한 것일 뿐'이라며 서명을 유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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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www.hankookilbo.com/News/Read/A2022042016550002476)

    건우씨는 중고차 할부금 독촉장을 받은 후에야 자신이 사기를 당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건우씨가 가장 목멘 목소리로 털어놨던 것은 건설현장에서 일하다 추락해 영구장해를 입었던 아버지가, 아들의 빚을 갚겠다며 무리해 다시 현장으로 출근하고 있다는 이야기였다. 보도 후, 사건이 검찰에 송치됐고 건우씨의 마지막 연락은 '꼭 좋은 소식을 갖고 연락드리겠다'는 것이었다.

    그에게 다시 연락이 온 것은 3년이 흐른 지난 12일이었다. "기자님 저 기억하시는지요. 약속을 지키고 싶어서 조심스럽게 연락드려요." 그는 경찰 공무원 시험 합격증 사진을 보내왔다. 1심 판결조차 나지 않아, 매달 할부금을 내야 했고 반도체 공장 공사현장에서 막노동(배관 조공) 일을 하며 공부하느라 시간이 조금 더 걸렸다는 이야기도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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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5년 제2차 경찰공무원(순경) 공개경쟁채용시험에 합격한 김건우(26)씨가 공사현장에서 일하며 착용했던 작업복과 작업화, 3년간 공부했던 책, 합격증. 김씨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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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어떻게 그 시간을 견뎌냈을까. 그는 자신이 각오를 다지게 했던 순간으로 수사기관에 자신이 당한 범죄 피해를 증명해야 했던 때를 꼽았다. "제가 사기 피해자가 되어보니, 피해자가 모든 증거를 찾아서 수사기관에 제출해야 하더라고요. 피해자들의 어려움에 공감하며, 발로 뛰는 경찰이 되고 싶습니다."

    세상을 바꿔내는 이들은 어느 유명한 정치인이 아닌 이토록 이타적인 생존자들인지도 모르겠다. 그의 이야기를 들으며 부산 돌려차기 사건 피해자 김진주(필명) 작가가 떠올랐다. 김진주 작가는 범죄피해 생존자로서 자신이 사법체계에서 겪어야 했던 부당한 일들을 공론화하며, 제도 개선을 이끌어냈다. '다른 사람들은 이런 어려움을 겪지 않았으면 한다'는 이유였다. 덕분에 이제는 범죄피해자들이 가해자에게 집주소가 노출될까 봐, 자신이 모르는 새 출소했을까 봐 두려워하지 않아도 된다.

    건우씨는 내년 3월 새내기 경찰관으로 첫발을 딛기 위해 중앙경찰학교에 입교한다. 그가 맡게 될 사건 범죄 피해자의 회복과, 건우씨의 앞날을 진심으로 응원한다.

    원다라 기자 dara@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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