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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2.31 (수)

    [기자의 시각] 대입 4년 예고, 몰랐나 교육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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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조선일보

    정근식 서울시 교육감이 10일 서울 종로구 서울특별시교육청에서 열린 '미래형 대입 제도 제안' 기자회견에서 발언하고 있다./뉴스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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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서울시교육청이 최근 기자회견을 열고 ‘미래형 대입 제도 제안’을 발표하며 학교 교육 정상화와 사교육비 감축을 역설했다. 정근식 교육감은 현행 고등학교 내신 및 수능 평가 방식에 변화가 필요하며, 교육청이 제안하는 대입 개선안이 이를 가능하게 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특히 “1년 동안 대입 전문가들과 회의하고, 대학 입학 담당자들의 적합성 검토를 거쳐 만들었다”며 강한 자신감을 드러냈다.

    하지만 교육청이 제안한 개선안엔 고민이 부족했음을 드러내는 내용이 포함돼 있었다. 바로 “(고교학점제) ‘진로·융합 선택과목’의 상대평가 병기를 ‘즉각’ 폐기해야 한다”는 대목이다. 정 교육감의 기자회견이 끝나고, 중3 자녀를 둔 한 학부모는 기자와의 통화에서 격앙된 반응을 보였다. “내신 상대평가를 고려해 1등급 받기 어려운 자사고 대신 일반고에 입학 원서를 냈는데, 갑자기 교육청이 상대평가를 없애자고 하니 우리 아이는 어떻게 되나? 너무 불안하고 억울하다.”

    교육청 제안대로 당장 내년부터 고교학점제 진로·융합 선택과목의 내신 산출 방식을 상대평가 병기에서 절대평가로 바꿀 수 있을까? 현실적으로 불가능에 가깝다. 고등교육법이 명시한 ‘대입 4년 예고제’ 때문이다. 내신 산출 방식이나 수능 교과목 등 대입 정책에 중요한 변화가 있을 경우, 이를 적용받는 학생들이 대학에 입학하기 4년 전에 정부가 내용을 확정 발표해야 한다. 학생과 학부모가 충분히 이해하고 고교 선택 및 대입 준비를 할 수 있게 하는 제도다.

    대입에 영향을 미치는 모든 요소는 이 대입 4년 예고제를 지켜야 한다. 교육부는 이미 올해 고1에 적용되는 2028학년도 대입 개편안을 2023년 12월 말에 확정 발표했다. 여기서 고교학점제 선택과목(일반·진로·융합)의 내신은 일부 과목을 빼곤 상대평가와 절대평가를 모두 산출하기로 정했다. 올해 중3 학생도 이 대입 개편안을 적용받는다.

    고1과 중3 학생들에게 혼란만 일으킬 뿐, 실현이 불가능한 제안을 서울시교육청이 내놓은 이유가 무엇인지 의문이다. 담당자에게 묻자 “내신 산출 방식을 바꾸는 건 대입 4년 예고제에 해당하지 않기에, 충분히 할 수 있는 제안”이라는 황당한 답변이 돌아왔다. 이후 기자가 재차 질문하자 그때는 “내신이 대입 예고제에 해당하는지 아닌지는 교육청이 단정해 말할 수 없다”며 답변을 회피했다. 모르겠다는 설명이나 다름없었다.

    고교생들은 내신 등급을 자기 목숨처럼 소중히 여긴다. 그런데 교육청은 이렇게 핵심적인 사안에 대해 제대로 된 이해 없이 무책임한 주장을 펼치고, 대입 영향조차 모른다니 교육 전문가로서 자질이 의심스럽다. 오랜 기간 고민해 만든 제안이라고 소개한 교육감 또한 이런 허점을 인지하지 못했다. 정근식 교육감과 서울시교육청은 자신들로 인해 불안에 떠는 학생과 학부모에게 명확하게 설명하고, 혼란을 유발한 데 대해 사과해야 한다.

    [오주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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