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영 스님 청룡암 주지 |
2025년 12월 31일. 치열했던 한 해를 보내는 마지막 날과 마주한다. 1년 중 열한 달 동안 대중을 이끌며 어른의 시간을 보냈지만, 마지막 한 달만큼은 아이의 시간을 보내고 싶은 나는 여전히 사바세계에 사는 철부지 출가자이다. 올해도 바쁘신지 산타 할아버지의 선물이 내게까지 전해지지 않아 조금은 아쉬웠지만, 대신 내가 직접 산타 할머니가 되어 많은 이들에게 기쁨과 축복을 전하고자 애썼던 크리스마스였다.
아무튼 뚝 떨어진 기온 탓에 바깥일 보고 종종걸음으로 절에 들어오니, 법당에서 울려 퍼지는 목탁 소리가 고른 심박처럼 차분하게 들렸다. 세상의 모든 소음까지도 멈추게 만드는 힘이 깃든 음률이랄까. 종종거리는 나를 일깨우기라도 하려는 것처럼 맑고 정갈한 가르침이 목탁과 풍경 소리에 담긴 듯했다. 많은 일을 하느라 자신을 놓치고 사는 것은 아니냐고, 급하게 뛰어다니느라 마음에 평정심을 잃고 사는 것은 아니냐고 묻는 것처럼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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뜻밖의 글 쓸 기회 외면 않고
최선 다한다는 마음으로 임해
자기 가치는 스스로 정하는 법
김지윤 기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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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일 저일 많은 일을 하며 돌아다니고, 또 남보다 빨리 달리는 게 익숙하다. 그런데, 언제부터인지 쉬고 싶어도 계속해서 뭔가를 지속해야만 하는 상황이 찾아와 나를 번거롭게 했다. 그것이 힘겨웠는지 몸이 받쳐주질 못했다. 그래서 이제는 남에게도 좋고 나에게도 좋은 생활 방식을 찾아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하여 선택한 것이 몇 가지 일들에 대한 마침표 찍기이다. 그리고 이 글이 내가 찍는 마침표 중의 하나이다.
중앙SUNDAY의 ‘삶과 믿음’부터 시작하여 중앙일보의 ‘마음 읽기’에 이르기까지 10년 넘게 이 지면에 칼럼을 연재해 왔다. 사실 내가 글을 쓰게 된 계기는 뜻밖의 인연으로 비롯되었다. 시골 초등학교 시절, 여름 방학이 끝날 무렵으로 기억한다. 하루는 서울에서 가까운 친척이 놀러 왔다. 한 살 터울인 우리는 함께 강가든 산이든 나가서 놀기로 했는데, 방학 내내 놀다가 개학을 코앞에 둔 나는 숙제가 잔뜩 밀려서 도저히 같이 놀 수가 없었다. 한꺼번에 몰아서 숙제하기에 여념 없는 나를 위해 그는 도와주겠다고 했고, 다급한 나는 글짓기 한편을 부탁했다.
그렇게 여름이 지나고 가을이 왔다. 학교에선 백일장에 나갈 학생을 뽑고 있었고, 갑자기 내 이름이 호명되었다. 여름 방학에 제출한 글이 좋았다는 이유에서였다. 매우 당황한 나는 사실대로 말씀드렸으나, 선생님은 빙그레 웃으며 이름도 이미 제출했으니 그냥 나가보라고 했다. 별수 없이 천근만근 짓누르는 마음으로 백일장에 나갔다. 여러 학교에서 대표로 온 학생들이 열심히 글을 썼다. 그때도 포기가 빨랐는지 ‘어차피 상 받을 일은 없을 테고, 얼른 쓰고 놀아야지’ 생각한 나는 떠오르는 대로 글 한 편을 써내고 나무 그늘에서 놀다가 터벅터벅 집으로 돌아왔던 기억이 난다. 그리고 한 달쯤 지나 백일장에서 글이 뽑혔으니 상 받으러 가라는 얘기를 들었다. 그렇게 해서 나는 졸지에 글 좀 쓰는 아이가 되어버렸다.
어렸을 때 이런 사건이 없었더라면, 이토록 오랜 기간 글을 쓸 수 있는 근육이 생기지 않았을 것이다. 중앙에 칼럼을 쓰기 전, 불교 언론사에도 칼럼을 썼고 지금도 쓰고 있으니 꽤 오랫동안 글을 쓴 셈이다. 생각해 보면 나는 재기발랄한 편은 아니지만 하나를 꾸준히 해온 것은 맞다. ‘부족하지만 마음을 다잡고 최선을 다해보지 뭐’라는 생각이 크고 작은 장애를 넘어갈 수 있게 이끌어 준 것 같다. 자신의 가치를 스스로 정할 수 있다는 걸 내면에서는 알고 있었나 보다.
특별히 잘하는 것도 없지만, 그렇다고 딱히 못 하는 것도 별로 없는 나다. 그런데 이런 뜻밖의 기회가 내 생에는 자주 찾아왔던 것 같다. 남이 잘해서 더불어 내게 기회가 온 적도 있었고, 남이 잘못해서 대신 내게 기회가 온 적도 있었다. 그렇다고 다 잘해낸 것도 아니다. 그때마다 처음에는 ‘내가 그걸 과연 할 수 있을까’라고 의문을 제기하지만 결국에는 ‘그래도 한번 해보지 뭐’로 결론을 맺곤 했다. 못한다고 선을 긋다가도, 해봐야 잘할지 못할지 알 것 아니겠는가 싶었다. 그렇게 하나하나 내게 닥친 일들을 처리해 나가다 보니 어느덧 타인의 눈에는 재능이 많은 사람처럼 보인 것이다.
이 글이 마지막 원고라고 생각하니 유년의 기억 서랍이 스르르 열려 주저리주저리 꺼내 보았다. 언젠가 기회가 찾아오면 다시 한번 시작할지도 모르지만 지금은 우선 멈추고 나 자신의 무너진 균형을 되찾고 싶다. 가능하다면 외부 일을 점차로 줄여서 수행에만 전념하며 그냥 옆에 있어 주기만 해도 든든한 사람으로 남고 싶은 것이 바람이다.
자, 이제 쉼표 같은 마침표를 찍습니다. 그동안 저의 부족한 글을 읽어주신 독자 여러분께 진심으로 감사의 마음을 전합니다. 늘 지혜와 자비로 충만하소서.
원영 두 손 모음.
원영 스님 청룡암 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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